추억은 추억으로 둬야 아름답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확신의 전자‘다. 돼지라면 머리에서 발끝, 내장부터 껍질까지 부위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회식 때 처음 꽃등심을 먹고 난 후 쇠고기란 게 원래 퍽퍽하고 질긴 것만 있는 게 아니구나 알았을 정도다. 삼겹살을 향한 나의 지독한 짝사랑은 가정 내 식생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두 사람의 영향이 크다. 예민한 미각을 가졌지만 삼겹살만큼은 편애를 했던 아빠, 그리고 쇠고기는 국거리용 밖에 구입하지 않았던 얇은 지갑을 가진 엄마 덕분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만 해도, 천 원짜리 몇 장이면 여섯 식구가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의 삼겹살을 살 수 있었다. 황사가 심한 날이나 가족들에게 힘든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던 날이면 엄마는 내게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며 정육점에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엄마가 준 돈을 손에 꼭 쥐고 동네 입구의 정육점으로 향했던 어린 날의 나. 꼬깃꼬깃한 돈을 건네고 신문지에 둘둘 만 차가운 냉동 삼겹살을 품에 안고 돌아오곤 했다. 그날 저녁에는 소금과 후추를 뿌려 프라이팬에 볶은 냉동 삼겹살이 상에 오르곤 했다.
당시만 해도 입이 짧아 밥 반 공기를 매일 울면서 먹었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예외였다. 그간 눌러뒀던 식욕이 폭발하는 날이다. 우리 가족은 쌈장보다는 고추장을 곁들이는 걸 좋아했다. 끝이 자주색인 꽃상추 위에 밥, 그리고 삼겹살을 올린 후 연지곤지를 찍듯 고추장으로 마무리를 하면 완벽한 '삼겹살 쌈'이 완성된다. 고물고물 작은 한 입을 벌려 입 안 가득 삼겹살 쌈을 넣고 우걱우걱 씹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았던 우리 가족에게 삼겹살은 집에서 외식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삼겹살, 그리고 돼지고기에 길들여진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 국내외를 여행할 때면 그 고장의 유명하다는 삼겹살 및 돼지고기 전문점에 가서 맛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요 몇 년 사이 유행처럼 번진 냉삼(냉동 삼겹살) 열풍 역시 삼겹살 덕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방송국 놈들의 까탈스러운 입맛을 저격하기 위해 피 튀기는 전쟁이 펼쳐지는 요식업의 무덤, 상암동. 그 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프리미엄 고깃집에서 21세기로 귀환한 냉삼을 다시 만났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가벼운 주머니를 가진 학생들에게 지방과 단백질을 가득 안겨 주었던 대패 삼겹살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였다.
냉삼... 너 좀 낯설다?
프. 리. 미. 엄. 고깃집이라 그랬을까? 굽기 부심 충만해 손님은 집게에 손도 못 대게 하는 직원의 현란한 손길이 몇 번 닿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알맞게 익었다며 먹어도 좋다는 신호가 떨어졌다. 기억도 안 나는 이름의 고급 소금과 후추가 적당히 뿌려 구워진 냉동 삼겹살. 직원의 안내대로 처음에는 그냥 냉삼 본연의 맛을 즐겼고, 다음엔 산지에서 직송했다는 生고추냉이, 이어서 특제 소스에 버무렸다는 파절이, 마지막엔 구운 김치 & 콩나물 무침을 곁들여 먹는 코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먹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떠다녔다. 굳이... 냉동 삼겹살을... 왜 이렇게 고급지고 복잡하게 먹어야 하지? 입생로랑 재킷을 입고, 구찌 백을 손에 들고, 샤넬 넘버 파이브 향수 냄새를 폴폴 풍기며 갸륵한 표정을 짓는 돼지 한 마리가 떠올랐다. 21세기 냉삼은 내가 알던 촌스럽지만 정겨웠던 그 맛과 모습은 아니었다. 신분상승 제대로 한 냉삼은 모셔야 할 존재가 됐다.
얇디얇은 냉삼을 겨우 인원수대로 시켜 먹었으면 분명 배가 차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추가 주문은 하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내 카드로 계산했으면 돈이 아까워 상암동 한복판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포효할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법카의 힘을 빌렸기에 닥치고 2차 장소로 향했다.
그 고오급 식당만의 문제일까 싶어 냉삼 열풍이 시작되기 전부터 십수 년째 냉삼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해 온 식당에도 가봤다. 하지만 내 입에 냉삼은 그냥 냉삼일 뿐. 냉삼에서 대단한 깊은 맛이나, 육질과 육향을 논하는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냉삼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린 채 뉴트로 무드라는 탈을 쓰고 어중간한 포지션을 하고 있는 게 2020년 냉삼의 현실이다. 추억으로 먹기엔 가격은 지극히 21세기였고, 맛으로 먹기엔 냉동 고기 특유의 잡내를 참기 어려웠다. 서민음식도 고급화를 지향하는 외식업계의 분위기가 이런 끔찍한 혼종을 탄생시켰는지 모르겠다.
신문지에 둘둘 만 냉삼이 최고인 줄 알았던 소녀는 어느새 훌쩍 자랐다. 단순히 국내산과 수입산을 넘어 제주산과 스페인산의 맛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삼겹살 맛’에 대한 두터운 데이터 베이스를 가진 어른이 되었다. 납득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라면 지갑을 여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게 삼겹살 부분에서는 추억이란 이름의 프리미엄이 적용되지 않는다.
추억은 추억 그 자체로 기억될 때 가장 아름답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풋풋한 첫사랑 오빠를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고 싶진 않다. 내 기억 속에 하늘색 카디건이 참 잘 어울리던 열여섯 살 그 오빠... 마흔이 훌쩍 넘어 구찌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하늘색 카디건을 입고 나타난다고 해도 난 모른 척 지나치고 싶다. 추억 속에서 아름답게 남겨져 있는 존재를 굳이 현실로 소환해 환상을 깨고 싶진 않다. 추억은 추억이라서 아름다운 것이다. 첫사랑도 냉삼도.
+ 커버 사진은 본 내용과 전혀 무관한 제주의 흑돼지 특수부위 전문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냉삼은 기록용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였나 봅니다.
냉삼은 제게 그런 존재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