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08. 2020

김밥을 싸다가 문득  

김밥처럼 질리지 않고 맛있는 인생을 위하여


지금까지 내가 먹어 온 김밥은 몇 줄이나 될까? 소풍 가던 날, 엄마가 아침부터 싸주던 집 김밥. 아침도 못 챙겨 먹고 나온 출근길, 지하철 출구 앞에서 사서 사무실까지 영혼 없이 걸어가며 목구멍으로 밀어 넣은 1000원짜리 김밥. 끼니때를 놓쳐 먼지 폴폴 날리는 현장 구석에서 꾸역꾸역 씹어 넘기던 김밥. 한라산 꼭대기에서 까마귀와 눈치싸움을 하며 허겁지겁 삼킨 김밥. 모래가 으적으적 씹혀도 한식이라 좋기만 했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끄트머리에서 먹던 김밥 등등 지금껏 셀 수도 없이 많은 김밥을 먹어 왔다. 늘 누군가가 싸주던 김밥을 먹던 내가 어느새 손수 김밥을 마는 날이 왔다.


난생처음 김밥 말았을 때를 기억한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김밥이 몇 줄인데... 김밥쯤이야 쉽지?‘ 이런 오만한 마음으로 ’ 김밥 말기‘ 대장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김밥은 그리 호락호락한 음식이 아니었다. 김이 스르륵 풀려 벌어진 밥 사이로 속 재료들이 헤벌레 속살을 보여줬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음 김밥을 말 때는 처음보다 더 힘을 줘 꽉꽉 말았다. 힘이 과했는지 이번엔 김밥 옆구리가 터졌다. 긴 방황 끝에 제법 모양을 갖췄다고 생각해 잘라 보면 속재료가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엉망진창 그 자체. 재료 준비가 번거로울 줄만 알았지 제대로 된 김밥을 완성하는 게 이토록 까다로운 줄 몰랐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첫 김밥을 철근처럼 씹으며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 김밥 잘 마는 법 ]을 넣었다. 인터넷 세상 안에는 친절한 김밥의 고수들이 넘쳐났다. 설욕을 다짐하듯 다음번 김밥을 말 때, 그들이 안겨준 꿀팁을 하나하나 시도했다. 김 위에 밥을 펼 때 전체를 꽉 채우지 말고 아래위 약간 여유를 주라고 했다. 그 여유가 김과 김을 붙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얇게 편 밥 위에 자른 김밥 반장을 깔아 말았다. 속 재료들이 흩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김밥 김의 끄트머리에 짓이긴 밥알 또는 물을 발라 말았다. 밥풀과 물은 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김발로 감싸 꽉꽉 힘을 줘 말았다. 김밥을 말고 끝부분이 아래로 가도록 잠시 두라고 했다. 김밥 자체의 무게로 자연스럽게 눌리면서 끝이 붙는다고 했다.


김밥을 말다가 문득 생각했다. 김밥을 마는 거나, 사람 사는 거나 다 똑같구나. 욕심 내서 안에 필요 이상 많은 걸 넣으려고 하면 분명 터진다. 김밥은 옆구리가 터지고, 사람은 머리가 터지고 속이 터진다. 끝을 잘 마무리하지 않으면 내용물이 바깥으로 나온다. 김밥은 속 재료가 나오고, 사람은 정신이 나간다. 떨어지지 않고 붙게 하려면 뭔가 있어야 한다. 김밥의 김은 물이나 밥풀이 있어야 붙고, 사람 사이 관계는 ‘애정’이 있어야 붙는다. 온전한 모양을 갖추려면 ‘발’이 있어야 한다. 김밥에게는 모양을 잡아주는 ‘김발‘이, 사람에게는 내가 나로 서게 바른 모양을 잡아 주는 ’ 말발‘과 ’ 글발‘이 있어야 한다.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들어가는 김밥처럼, 질리지 않고 맛있는 인생이 되려면 손이 많이 가는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각 재료의 간도 적당해야 하고, 색깔도 조화로워야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김밥이 완성된다. 김밥을 말 때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텐션’이 중요하다. 김밥을 썰 때도 주의해야 한다. 힘만으로 칼을 욱여넣으면 김밥은 쉽게 뭉개거나 터진다. 살살 김밥을 달래 가며 칼을 조심스럽게 앞뒤로 움직여 썰어야 한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결판을 내려는 듯 어깨에 힘을 팍! 주고 과한 텐션을 더하면 인생은 망가진다. 지금은 비록 손이 많이 가는 인생이라도 지쳐 포기하지 말자. 그 노력들이 쌓이면 분명 머지않아 김밥처럼 예쁘고, 맛있는 인생이 펼쳐질 테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