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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09. 2020

어른의 맛, 콩국수

여의도 <진주집> 방문기

프로젝트에 따라 짐을 싸고 푸는 21세기 보따리장수, 프리랜서로 1N년을 살고 있다.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프리랜서의 태생적 불안함을 안고 평생 살아왔다. 프리랜서로 1N년 넘게 살았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변수와 마주할 때마다 나는 늘 당황한다. 언제 변수가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을 지우는 나만의 지우개가 있다. 바로 매일을 사무실 근처의 이름난 음식점들을 순례하는 기쁨으로 채우는 것. 보통 마감에 쫓길 때는 사무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도 못하고 배달음식으로 연명한다. 그런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법카를 쥔 부장님들의 발길로 문턱이 닳았던 오래된 음식점들이 주요 타깃이다.   
   

여의도에서 일할 때는 여의도 백화점 지하의 노포(?) <진주집>을 가는 재미로 살았다. 닭칼국수, 비빔국수 등 이름난 메뉴가 여럿이지만 난 매번 콩국수를 택한다. 내게 있어 서울에서 콩국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진주집>이다. 보통 다른 음식점에서 콩국수는 여름 한정 계절 메뉴지만 최근에는 한겨울에 가도 콩국수를 맛볼 수 있다. 100% 콩물의 순수함보다는 땅콩이 섞인 듯 고소하고 진한 콩물은 마치 마시는 크림처럼 진하고 부드럽다. 콩국수가 테이블 위에 서빙되면 국물에 면을 풀어헤치기 전, 먼저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입안으로 들어간 콩물 한 스푼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큰소리로 외친다.  
    

나 찐! 콩이야아아아!!      

바로 이 순간의 즐거움 때문에 콩국수가 생각나면 여의도 백화점 지하의 그 텁텁한 공기부터 떠올린다. 진한 콩물을 머금은 쫄깃한 면발을 기분 좋게 씹으며 생각했다.      


"이제 콩국수도 찾아 먹는 걸 보니 나도 어른 입맛 다 됐구나?"

      

성인이 된 지 이미 오래지만 난 여전히 콩을 싫어한다. 대외적으로 어른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콩밥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특유의 설컹설컹한 식감과 묘한 콩 냄새가 영 거슬린다. 아무리 넘기려 해도 목에서 턱 걸린다. 불편한 자리라면 알약을 먹듯 대충 씹어 물과 함께 꿀꺽 삼켜 버린다. 이런 콩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콩국수는 내게 먼 음식이었다. 하지만 <진주집>의 콩국수를 한 번 맛보고 그간 콩국수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깼다.     


평양냉면과 함께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참맛을 느끼게 된다는 메뉴, 콩국수. 밍밍한 그 맛에 빠져 버리면 다시 진한 맛의 세계로 돌아가긴 힘들다. 생각해 보면 피가 뜨거웠던 때는 자극적인 맛을 찾아다녔다. 고추 짬뽕, 불닭, 매운 닭발, 엽떡 불족발 등등 보기만 해도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음식들을 입에 쑤셔 넣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땀과 함께 속을 시끄럽게 했던 마음속 노폐물들이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소화기관의 노화로 서서히 먹는 횟수가 줄어들어서일까? 예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을 라면에서조차 매운맛이 느껴진다. 혀가 따끔해 다음번에는 잊지 않고 아예 수프의 양을 2/3로 줄여 넣는다.       


한때는 죽고 못 살던 매운맛과 점점 거리감이 생겼다. 아마 사는 것도 이미 자극투성이인데 입과 위장까지 자극적인 것으로 채우기 지쳐서 그런 건 아닐까? 입이 즐거운 음식보다 속이 편한 음식을 찾는다. 대부분 속이 편한 음식들은 단순하다. 간이 세지도 않고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재료 자체의 맛을 최대한 끌어올린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으며 좋은 점 중 하나가 사는 게 단순해진다는 거다. 자극적인 음식과 거리를 두게 된 입맛처럼 일상 속에서도 슴슴하고 덤덤한 것들이 좋아진다. 만나는 사람도 심플해지고, 속 시끄럽게 하는 것들과는 일정 거리를 둔다. 사람이건 생각이건 내 취향이 아닌 것까지 끌어안으려 애쓰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을 챙기고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프랑스의 사법관이자 문인, 그리고 미식가였던 장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은 말했다.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     


지금 내가 어떤 걸 먹고 있느냐는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게 뭔지 보여준다. 별 양념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충분한 콩국수처럼 살고 싶다. 뽀얗고, 진하고, 쫄깃하고, 슴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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