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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27. 2021

땅을 딛지 않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없지

 자학 모드 스위치를 내리고 싶을 때 소환하는 기억


  

1년에 비행기 3번 이상 타기

2021년 다이어리를 개시하며 맨 앞장에 써 둔 <To Do List>중 허리쯤에 있는 내용이다. 올해도 이제 약 두 달이 남은 시점, 이 목표는 얼마나 달성했을까? 시국이 시국이라 해외 가는 비행기는 무리였다. 그저 제주 두 번, 그리고 내륙의 도시 한 번으로 목표를 일찌감치 달성했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이 될) 네 번째 비행기 탑승 역시 제주행이었다. 비행시간이 짧으니 가격에 맞춰 출발 시각을 정했다. 싼 항공편을 택해서일까? 탑승구에서 수속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 다시 버스를 타고 간 후에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에 실린 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활주로를 달리며 생각했다.   

   

’이렇게 승객들을 버스에 태워 옮기는 걸 보니

비행기에 탄 채로 또 한참 땅 위를 이동하겠군.’       


평일 낮인데도 적지 않은 사람으로 비행기 안은 북적였다. 좁은 통로를 헤집고 들어가 의자에 앉은 후 안전띠부터 채웠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돌린 후 미리 꺼내 둔 책에 눈을 박았다. 출발 시간이 되자 덜컥하고 바퀴가 움직이는 진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창 밖을 확인했다. 형광 조끼를 입은 공항 요원들의 수신호에 따라 거대한 철 덩어리가 조그마한 바퀴를 발 삼아 뒤뚱뒤뚱 이동했다. 육중한 쇳덩어리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다. 하늘에서였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을 거리를 느릿한 달팽이처럼, 여유로운 거북이처럼, 낮잠에서 막 깬 나무늘보처럼 움직였다.      


예상대로 한참 활주로에서 방황(?)한 끝에 바퀴가 멈췄다. 숨을 한 번 고르듯 본격 이륙 준비를 할 타이밍이다. 엔진이 세차게 돌아가는지 격한 소음과 진동이 비행기를 감쌌다. 전과 달리 힘 있게 구르기 시작한 바퀴는 활주로를 달려 마침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올라가는 통에 몸통도 덩달아 자연스레 뒤로 젖혀졌다. 목표한 위치에 다다르자 비행기는 수평 상태가 됐고, 내 척추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창 밖을 내다보니 새하얀 구름 틈 사이로 티끌처럼 보이던 지상 위의 건물들이 있었다. 우유 속에 가라앉은 듯 창밖으로 계속 똑같은 흰구름만 이어지자 창을 닫으며 생각했다.       


'맞아.

활주로에서 뒤뚱거리며

볼품없이 움직이지 않고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없지.'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하늘이 자기 집 안방인 듯 편안하게 천상계를 휘젓고 다닌다. 난 땅에 발이 박힌 채 그들의 비행을 넋 놓고 보게 된다. 그러다 뒤쪽 목덜미가 뻐근해져 온다. 통증을 풀기 위해 고개를 숙여 내 꼴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흙바닥에서 넘어지고, 구르느라 꼴이 말이 아니다. 먼지를 뒤집어쓴 엉망진창인 내가 밉고 한심해 몸서리가 쳐진다. 할 수 있는 게 남을 부러워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원망하는 것뿐인 인생인 것 같아 다시 또 자학 모드 스위치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그런 조짐이 보이면 이제 비행기를 떠올린다. 자그마한 바퀴로 묵직한 쇳덩이를 짊어진 채 한참 활주로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모습을 머릿속에 재생시킨다. 하늘로 날아오를 최적의 위치에 자리를 잡기까지 지상에서 바퀴를 움직여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바쁘게 몸체를 움직인다. 도약 없이 날아오르는 존재는 없다. 발 없는 새처럼 평생 공중을 날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지금은 좀 구질구질하고 멋없어 보여도 안전한 비행을 위해 마땅히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무섭게 올라갔던 자학 모드 스위치는 자동으로 내려간다. 두 발은 여전히 흙먼지 구덩이 속에 박혀 있지만 상상해 본다.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는 나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머지않아 현실이 될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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