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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Jul 08. 2021

양계장에도 독수리가 살아주면 좋겠다

학교, 안전제일주의의 덫

우리의 학교 건축이 바뀌고 나서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유튜브에서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의 저서들을 통해  '건축'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길을 지나다 보면 어느샌가 건물들을 부수고 있고 어느샌가 다 지어버리는 기술력에 감탄하기만 했지 건축이란 게 이렇게 전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예술인지 그동안 몰랐었다. 나는 책들을 통해 저자의 통찰력배웠고, 일종의 전문서적이지만 문체가 쉽고 우리 생활에 관련된 얘기라 접근이 용이다.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챕터는 내 삶의 터전을 주제로 하고 있어 더 눈이 반짝였다. 핵심은, 건축의 구조나 시스템에 있어 학교는 교도소와 다를 바가 없으며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워줘야 할 공간이 오히려 사고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고 해결책으로, 건물을 저층으로 분절화시키고 천장을 높게 할 것을 권한다. 건물이 낮아야 운동장으로의 접근과 구성원 간 상호작용이 더 활발해질 수 있고,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3미터 이상 높이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30년을 그런 공간 체계에서 지내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저자의 시각에 매우 공감다. 의 구상처럼 정말 스머프 마을 같은 학교 있다면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자연과 어우러진 꿈의 공간! 만약 그런 곳이 실재한다면, 나지긋지긋해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학창 시절을 다시 겪어볼 의향이 있다. 그런데 학교가 '직장'이고 역할과 책임이 분명한 프로의 입장에서  때 그런 학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고, 어쩜 미래가 될수록 더 불가능해질 것 같다. 혁신이고 누구나 바랄만한 일이며 우리가 추구할 긍정적 방향임이 확실한데 실현 가능성이 요원해 보이는 걸까.


4층에 있는 아이들과 1층에 있는 아이들 중 누가 운동장 접근력이 좋겠냐는 저자의 논리에 나는 속으로 답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희 학교는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내 근무지에선 코로나와 상관없이 원래부터 학생들만의 운동장 출입을 금다. 학생들이 운동장을 밟기 위해선 반드시 교사가 동행해야 하며, 웬만하면 그것도 지양한다. 밖에 못 나가게 하냐는 학생들의 원망은 그대로 담임에게 돌아오지만 별수 있나, 최윗선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결론적으로, 오직 각 반별 체육시간에만 나갈 수 있다. 운동장은 좁고 반은 많으니 반별 운동장 사용시간표가 있는데, 각 반은 그 시간에만 운동장을 이용해야 한다. 


학교에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안전사고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애들끼리 나가서 축구하다 다쳐도 '그때 담임/학교는 뭐 하고 있었냐'라고 하면 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여기엔 사각지대에서의 학교폭력도 포함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교실에 모두 붙잡아두고 사고 위험이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편을 택한 것이다. 동장에 모두 다 데리고 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교실에 있기 원하는 학생들이 더 많으니 주로 소수가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냉정하게 보면 (책에서 말하는 교도소 비유가 맞다) '감시'다. 사고 나면 피차 곤란해진다. 집에서 하루 종일 애를 보는 엄마들도 찰나의 순간에 애가 다치면 억울한 것처럼, 직장에서도 꼭 그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교사들은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친다'라고 욕을 하지만 글쎄, 웬만한 초등교사라면 점심시간이 결코 쉬는 시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교사의 책임하에 있다. 이와 관련해, 세상이 변하고 학교의 보육기능이 강화될수록 (불행하게도) 학생들의 자유는 더 억제될 것 같다. 지금의 안전제일주의는 내가 학생이었을 때보다 더 강화된 게 사실이고, 앞으로 안전은 학교의 1순위 가치로서 그 지위를 더 견고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은 학교마다 다를 것이니 당사자들이 깨어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는 부분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왜 그리 패기가 없냐'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저자가 만났다는 교육부 담당자들의 정책 아래, 단위 학교의 관리자 아래 대민업무를 하는 최말단의 입장에서 나 같은 당사자들 역시 이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알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비록 양계장같은 환경일지라도 독수리같이 비상하는 어린이들이 나와주길 욕심부려본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으로 학교는 건설적 변화가 필요하다. 교사들은 힘이 없다. 그러나 그들마저 방관하면 답도 없다. 지금 우리는 답없는 사회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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