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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Nov 26. 2023

동료에게

남산에서 옛 동료를 우연히 보았다.

고개를 들었는데 멀리 그녀가 앉아있었다.

나는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연락을 한 지는 오래됐지만 다행히 번호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는 과정과 '여보세요'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앞을 내려다봐봐요"

나는 계속 다급한 채 손을 흔들며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애썼다.

마침내 눈이 마주쳤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와 나는 예전 그대로인데 시간은 6년을 떠나와 있었다.

우리는 둘 다 편한 가방과 편한 청바지에 편한 운동화를 신은 상태였고

무작정 남산타워까지 숨을 헐떡이며 수많은 계단을 올랐다.

거칠 것 없는 편함이란 이런 것 아닐까.

어딜 갈까 뭘 할까 생각할 필요도 겨를도 없이

갑자기 만나도 본격적인 얘길 꺼낼 수 있는 사이.

우린 둘 다 목소리도 크고 말이 빨라 대화의 템포가 맞았다.

말을 못 해 안달 난 사람처럼 서로의 말끝을 잡아먹는 화법을 쓰면서도

그게 오히려 재밌었다.

그만큼 반가웠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고 우린 각자 6살을 먹고 만났는데

서로 더 비슷해진 것 같았다.

그때도 그랬는데 몰랐던 것이었을까.

시간은 그저 흐르는 줄만 알았는데 인연을 물어다 주기도 하는구나.

나는 강단 있고 순수한 친구가 있음에 감사했다.

웬만해선 웃는 사람이라 그녀의 얼굴엔 웃음 주름이 가득했다.

예뻤다.

  

"F죠?"

나는 그날 확실히 알았다.

내가 F라는 걸.

그녀가 전형적인 T였기 때문.

그녀는 제 일처럼 내 일에 조언과 격려를 해주며

남산을 내려오는 길에 위로의 씨앗호떡을 사주었다.  


두 시간은 단 20분 같았다.

각자의 스케줄로 헤어졌지만 우린 진심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행복하였다.

세상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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