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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Feb 20. 2021

[내 생애 첫 오페라/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코지 판 투테 /  Come Scoglio>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고양이를 버리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잡문집> 등의 에세이를 쓰기도 했지만 소설가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할 텐데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던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해 <해변의 카프카>, <1Q84>, <기사단장 죽이기> 그리고 최근 <일인칭 단수>까지......한국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있어요. ‘이게...... 소설이야? 에세이야?’ 소설이라 함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된 등장인물이 허구적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에게 작가 자신의 현실을 입힌 설정이 꽤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나온 단편 <일인칭 단수>에서는 주인공이 작가인데요 음악을 좋아하고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에 있어 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실제로 하루키는 클래식, 재즈 마니아이죠. 본인이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하루키의 작품을 몇 편 읽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 그의 문장 흐름이나 이야기 전개 또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음악에서 ‘하루키의 작품’ 임을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작가 본인의 생각이나 의식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로렌조 다 폰테’라는 대본 작가가 있습니다. 오페라 애호가들에게는 귀에 있은 이름일 테죠.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이 세 작품은 대본 작가 다 폰테와 작곡가 모차르트가 함께 만들어낸 ‘다 폰테 3부작’이라고 불리는데요. 물론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는 널리 알려진 원작을 오페라로 각색한 것이고 <코지 판 투테>는 다 폰테가 직접 썼다는 차이는 있지만,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바람기! 성직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다 폰테는 스물네 살에 신부가 되었지만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대요. 술과 도박, 여자를 좋아했던 다 폰테는 베니스에서 추방당하고 맙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결혼한 백작의 바람기나 이제껏 만난 여자가 천 명도 넘는다는 돈 조반니의 바람기 그리고 두 자매의 바람기를 테스트해보는 내용의 <코지 판 투테>를 연결 지어본다면, 극작가의 성향이 스며있겠죠?


나폴리의 어느 카페입니다. 굴리엘모와 페르난도는 아침부터 서로의 애인을 자랑하느라 바빠요. 이보다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며, 절대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옆에서 이 대화를 듣던 나이 든 철학자 알폰소는 ‘여자란 돈과 유혹에 약한 존재’라며 코웃음 치죠. 연인을 철썩 같이 믿는 두 젊은이는 발끈하며 서로 내기를 합니다. 그녀들이 24시간 안에 낯선 남자의 유혹에 과연 넘어가는지 안 넘어가는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기가 있나요. anyway 장면이 바뀌고 두 자매의 방에서도 역시 서로의 연인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때 알폰소가 찾아옵니다. 알폰소는 굴리엘모와 페르난도, 두 장교가 갑작스러운 황제의 명령으로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고 곧이어 두 장교가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떠난 두 자매는 절망에 빠지죠. 이제부터 본격적인 연극이 시작됩니다. 변장을 해 알아볼 수 없는 굴리엘모와 페르난도는 두 자매에게  좋다, 사랑한다, 구애의 말을 던지는데요. 아직 떠난 연인 생각에 슬퍼하던 언니 피오르딜리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노래합니다.



Come scoglio

Come scoglio immoto resta

Contro i venti e la tempesta

Cosìognor quest'alma èforte

Nella fede e nell’amor

Con noi nacque quella face

Che ci piace, e ci consola

E potràla morte sola

Far che cangi affetto il cor

Rispettate, anime ingrate

Quest'esempio di costanza

E una barbara speranza

Non vi renda audaci ancor!


바위처럼 우리 마음은 움직이지 않아요

바람이 불어도 폭풍우가 몰아쳐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에요

내 마음속의 불길,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위로하는 죽음만이

나에게서 사랑을 뺏을 수 있어요

변함없는 우리의 마음 성실의 표본이니

나쁘게 생각 말아요

반복해서 말하지 않겠어요.

우리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두 자매가 화를 내며 나가 버지자 두 장교는 우리가 이겼으니 돈을 달라하고, 알폰소는 아직 테스트가 더 남았다고 하죠. 이제는 더 강력하고 세진 알폰소의 작전 2탄이 펼쳐집니다. 변장한 두 장교가 자매의 집으로 찾아가 사랑의 고통 때문에 독약을 마시고 죽어버리겠다며 가짜 독약을 마시는 겁니다. 자매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요. 알폰소가 변장시킨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인 의사가 나타나 독약을 마신 장교들을 치료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자매들과 두 남자의 스킨십을 유도합니다.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 두 자매는 자신들을 사랑해 죽음까지 각오한 이 매력적인 남자들에게 마음이 흔들려요. ‘그래, 고독감에 죽는 것보다 차라리 약간의 바람을 피우는 게 낫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기로 하는데 여기서 재밌는 건 언니는 동생의 남자를 그리고 동생은 언니의 남자를 선택했다는 사실!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은 '처음 보는 여자'라는 말처럼 이 자매들의 이상형도 '낯선 남자'였던 걸까요?  마음이 이미 넘어간 언니는 애인 굴리엘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노래합니다.



Per pietà, ben mio

Per pietà, ben mio, perdona

All'error di un'alma amante

Fra quest'ombre e queste piante

Sempre ascoso, oh Dio, sarà!

Sveneràquest'empia voglia

L'ardir mio, la mia costanza

Perderàla rimembranza

Che vergogna e orror mi fa

A chi mai mancòdi fede

Questo vano ingrato cor!

Si dovea miglior mercede

Caro bene, al tuo candor.


내 님이여 용서해 주오

정도를 넘어선 내 사랑을

여기 그늘과 나무들 사이에서

그것은 영원히 감춰질 거야. 오 신이여

나의 열정과 나의 지조는

나의 저주받을 열망에 지고 마는구나

그것은 추억마저 지우고 대신 치욕과

공포만을 주는구나. 내 님이여 용서해 주오

내가 뺏은 그의 믿음

나의 배은망덕한 배신을

당신은 나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야만 하오, 나의 사랑, 순수한 사람



재미난 설정의 이야기지요? 하지만 알폰소의 승리도, 두 장교의 승리도 아니에요. 알폰소는 이 여자들을 버리고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고 해도 똑같을 거라며 ‘여자는 원래 다 그래’라고 하는데요. Cosi Fan Tutte, 바로 이 작품의 제목 ‘여자는 다 그래’입니다.


사랑을 믿고 있는 두 남자가 재미 삼아 연인들의 바람기를 시험해보는, 결국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발칙한 이 오페라의 결론은 다급히 마무리되죠. 마치 시청자들에게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내는 아침 막장 드라마 같은 오페라지만 모차르트의 작품답게 음악을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직도 오페라가 어렵고 고상한 장르라고 생각하는 분이시라면 막장 드라마의 원조 격인 <Cosi Fan Tutte(여자는 다 그래)>를 추천해요.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 이야기가 당시 유럽의 궁정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연인 간의 정절 시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anyway, 정말 ‘여자는 다 그럴까요?’ 아니 여자들‘만’ 다 그런 걸까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사랑이란 게 원래 다 변하는 것이겠으나 사랑을 장난 삼아 테스트해보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진실인 거야

한 사람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나 좋다고 말해놓고 그냥 가면 나는 어쩌나

나 없이 못 산다고 말해놓고서

거짓이었나 나한테 한 말이 거짓이었나

                    -(태진아,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오페라 #아리아 #모차르트 #다 폰테 #코지 판 투테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클래식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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