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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Apr 11. 2021

[내 생에 첫 오페라/쉼표]

<음악은 일상의 먼지를 영혼으로부터 씻어낸다>

공연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느 공연장에서 어떤 공연이 있는지, 어떤 팀이 어떤 캐스팅으로 공연을 올리는지, 그러다 관심 가는 공연이 있으면 예매도 하고 그 날짜를 기다립니다. 가끔은 잘 알고 지내는 성악가들이 출연해서 더 반가울 때도 있고요. 그날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이 있었어. 같이 가기로 한 친구들과 공연장 근처의 맛집을 검색하고 시간을 계산해 약속을 잡았어요. 일주일 전부터 설렜습니다. 이틀 전, 예전에 같이 일하던 PD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어요. 급히 촬영할 일이 생겼는데 한 번만 도와달라고. 시간상으로는 가능할 것도 같았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그날의 스케줄이 짜여 있어서 무척 곤란했지만 어쩌겠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급한 불을 꺼주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라디오 생방송을 마치고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촬영을 시작했어요.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 인터뷰는 몇 번이고 다시 해야만 했고 현장에서 수정해야 할 것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결국 제 분량을 다 마쳤을 때는 저녁 약속은커녕, 바로 출발해야 겨우 공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바로 출발했어요. 아차!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느라 이미 허기진 상태였는데 운전하는 동안 먹을 간식을 하나도 챙기지 못한 거예요. 게다가 금요일 저녁, 남부순환도로에는 차가 어찌나 많은지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긴 여정이었어요. 다행히 공연 시작 5분 전에 도착해 친구들을 만났지만 저는 이미 지쳐있었습니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연주자들이 등장했어요. 저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눈을 붙이자’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그런데! 현악 4중주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잠들어 있던, 허기졌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뭐랄까, 찌릿찌릿한 짜릿짜릿한 소름을 느꼈죠. 아직도 그날의 놀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음악은 그런 거였어요. 하루의 피로감을 모두 씻어낼 수 있는 청량감과 앞으로의 수고로움을 모두 충전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가진 것.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연주를 들었던 그날에도 나는 그 첫 곡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연주자에게 물어 곡목을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음악의 진정한 가치는 곡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느낌이라 믿기 때문에 한 번도 그 곡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다만 어디선가 주워 들었던 명언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짜릿한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Music washes away from the soul the dust of everyday life.

음악은 일상의 먼지를 영혼으로부터 씻어낸다.

-Red Auer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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