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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 세상에서 비둘기들이 다 사라진다면?

작가가들려주는그림책이야기

by 행복한독서

같이 삽시다 쫌!

하수정 글·그림 / 64쪽 / 20,000원 / 길벗어린이


2020년 봄, 사람들이 코로나19 공포로 밖에 나오지 않자 숨어 지내던 야생동물들이 도시 곳곳을 활보하고 다닌다는 기사를 본 적 있으신가요? 당시 제가 사는 도시 산책로에도 사람 대신 동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종종 보였어요. 다람쥐와 청설모, 오리, 고양이, 그리고 비둘기까지 수많은 동물과 산책길에서 마주쳤어요. 그러던 어느 날 뒤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바닥에 있던 비둘기 떼가 우르르 날기 시작한 거죠. 그러자 옆을 지나던 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온갖 혐오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왜 저렇게 욕을 할까 싶었죠. 많은 사람이 비둘기가 다가오면 슬금슬금 피하거나 욕을 하거나 돌을 던져 쫓아냈어요. 지하철역 앞 광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던 비둘기에게 꽁초를 던지며 비둘기들을 조롱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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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아버지가 까만 비닐봉지에 쌀을 담아와 공원 비둘기들에게 뿌려주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기도 했어요.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쌀을 뿌려주고 계셨고요. 다음 날 가니 할아버지가 빈손으로 비둘기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앉아 계시더라고요. 그 옆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습니다. 이렇듯 외로운 노인들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감정적 유대감을 채운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비둘기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도 인간의 문제였던 거죠.


사실 비둘기가 예전에는 ‘평화의 상징’이었거든요. 19세기 유럽 상류층의 반려동물로 인기를 끌다 희소가치가 떨어지자 여기저기에 유기된 비둘기들이 도시에 모여 살게 된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88올림픽 성화 점화에 사용하기 위해 수입해온 비둘기들 이후에 개체 수가 늘어났다고 하죠. 포털사이트에 ‘비둘기’를 검색하면 비둘기 퇴치 업체가 가장 먼저 뜹니다. 그만큼 비둘기에게 피해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비둘기 분변이 건물이나 시설물을 부식시키는 등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피해를 끼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도시로 강제 이주당한 비둘기는 그저 환경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일 텐데 도시의 골칫거리 취급을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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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비둘기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피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비둘기를 혐오할 자격이 있을까요?

비둘기들이 다 사라진다면? 그럼 또 다른 만만한 대상을 찾아 혐오하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풀어서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둘기 사진을 찍다 보니 무늬도 생김새도 정말 다양하고 예쁘더라고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만큼 귀엽게 그려주자 생각했어요. 자료 수집과 드로잉을 하면서 ‘비둘기가 사라진다면?’ ‘그다음은?’에 대해 생각을 펼쳐나갔죠. 잠깐 깨끗하고 편해지겠지만 누군가는 얘네들 어디 갔지? 하고 저 같은 사람이 비둘기 행방을 찾아 헤맬 것 같았어요. ‘비둘기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인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와 섞여 돌아다니고 있을지 몰라.’ 이런 아이디어들이 팡팡 터져 나왔어요.


책의 물리적 구조를 이용해 주제를 전달하는 시도도 해보았는데요. 비둘기들이 사라질 때 책의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죠. 대자연의 신 같은 존재인 책이 인간에게 핍박받는 생명을 거두어 특별한 존재로 재탄생시켜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겁니다. 책을 통과하면서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거죠. 책을 통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은 원래 책을 읽어 지식을 얻고 사유를 통해 지혜로워지는데요. 비둘기를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 앞에 나타나 생명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일침을 날리는 입체 구조로 설계했어요. 이렇게 책의 구조가 강하게 주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림책에서 비둘기가 사라지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 다시 나타난 모습을 왜 여성의 모습으로 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먼저 그 특별한 존재의 이름은 ‘조구둘’ 씨입니다. 조구둘 씨가 여성의 형상인 이유는 일단 이 이야기의 주체인 작가가 여성이라서입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볼 때 여성인 저를 투사하면서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형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여성 혐오 이야기를 하는 거냐? 난민 이야기를 하려는 거냐?’라는 질문도 있었네요. 비둘기에 대한 고정관념과 시각에 변화를 주기 위해 만든 책이지만, 보는 독자에 따라서 여러 시각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독자의 경험과 지식에 녹여 감상은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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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다 함께 춤추는 장면에서는 ‘복닥복닥한 우리네 인생. 이렇게 노래하며 춤추며 살면 다 뭐 잘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후반부에 계속 “구구구구” 하고 반복되는 부분은 노래처럼, 랩처럼 읽어주시면 됩니다. 각자의 목소리로 모두 다른 멜로디와 박자로 불러주면 재밌을 것 같아요. ‘혐오를 잠시 멈추고 노래하고 춤도 추면서 일단 자연스레 섞여보자. 그러면서 우리 같이 생각해보자.’ 이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같이 삽시다~ 쫌!



하수정 작가는 『파도는 나에게』 『울음소리』 『답답이와 도깨비』 등의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조용하고 투명한 우주에서 조용히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끔 삐끗할 때도 있지요. 그럴 때마다 재밌는 그림책을 한 권씩 만듭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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