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말라는 말 대신 그리라는 말

by 행복한독서

도봉이 그리기

이초혜 글·그림 / 32쪽 / 15,000원 / 이야기꽃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안다.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에게 턱 아래로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고, 손가락으로 털을 쓰다듬는다. 양손으로 두 볼을 감싸 쓸어내리다 보면 손길은 자연스럽게 귀 옆을 지나 등을 길게 따라간다. 그 순간 강아지는 귀를 한껏 뒤로 젖히고, 세상에 그보다 더 믿을 수는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어떤 날에는 반가움이 넘쳐 배를 보이며 누워 아기처럼 매끈하고 부드러운 배를 내어주며 애타게 만져달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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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하니까 이름은 ‘그림이’로 하자!” 나는 그림이의 양 눈 사이, 이마의 털을 엄지손가락으로 톡톡 쓰다듬으며 그윽한 눈빛을 마주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눈곱이 낀 눈물을 닦아낼 때 맡게 되는 시큼한 냄새도, 말랑말랑한 젤리 발바닥에 코를 대면 느껴지는 누룽지 냄새도 모두 좋았다. 목욕할 때 물기를 털어내며 짓던 민망한 표정도, 햇빛이 드는 나른한 오후 자다 깨어 고개를 들면 납작하게 눌린 털의 사각진 얼굴도 참 귀여웠다. 그림이는 가족들보다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기척이 느껴질 때쯤 침대에 올라와 아침 인사를 했다. 축축한 침을 묻히며 할짝할짝 핥는 인사를 내가 싫어한다는 걸 아는지, 그 행동은 하지 않는 눈치 빠른 아이였다.


함께 사는 사람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눈빛으로 보내던 시간들이 참 행복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길, 오래 아프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뿐만 아니라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생소원은 아마 같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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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그림처럼 예쁜 강아지 그림이는 그렇게 우리 가족으로 지내다 일곱 번째 생일을 앞두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많은 사람들은 말했다. 그림이는 강아지별에서 친구들을 만나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고, 먼저 간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다 다시 만날 거라고. 그러니 이제 그만 울어도 된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그렇게 단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살아온 시간과 나눠온 사랑이 커서 어떻게 보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도 그 이별은 갑작스럽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보고 싶다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문득문득 눈물이 난다.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일

이초혜 작가의 『도봉이 그리기』는 그런 나에게 ‘이제 더 이상 울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 그림책은 말한다.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충분히 슬퍼해도 된다고, 그리고 마음껏 그리워하라고.

이초혜 작가는 ‘도봉이’를 그릴 때마다 도봉이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번 덧그은 선들은 털 하나하나를 쓰다듬는 손길처럼 다정하다. 반짝이는 눈빛의 사랑스러운 도봉이를 그리며 웃기도 했을 것이고, 기다림과 아픈 시간들을 떠올리며 미안함과 속상함이 뒤섞인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도봉이를 그릴 때마다 하나씩 더 생겨나는 도봉이를 만나는 일이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561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 장 한 장 그려나가는 동안 슬픔과 그리움은 조금씩 고마움으로 바뀐다. 떠나가는 도봉이의 뒷모습을 보며 “도봉아~”라며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붙잡는 대신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살아내는 방식이 바로 ‘그리기’였을 것이다. 『도봉이 그리기』는 그렇게 상실을 견디는 한 사람의 아주 사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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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그림책은 나에게도 조용히 위안의 말을 건넨다. 그리운 그림이를 그려보라고.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고, 사진처럼 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선이 떨려도, 자꾸 눈물이 흘러도 괜찮다고 말한다. 슬픔을 서둘러 정리하지 말고 애도의 시간을 건너뛰지 말라고 한다.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건네며,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를 천천히 바라보고 기억하자고. ‘같이 그리자’고 손을 내밀며 등을 토닥여준다.


울지 말라는 말은 때로는 마음을 더 외롭게 만든다. 반면 그리라는 말은 슬픔을 붙잡아 둘 자리를 내어준다. 그리기는 잊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도봉이 그리기』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은 이렇게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울고 그리고 그리워하는 일은 떠나보내는 대신 계속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전선영_전주그림책이음 대표,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조직위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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