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니나 Feb 10. 2021

초짜의 흥정은 통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에서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sh)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채 억누르지 못한 불안 탓인지, 고동치는 심장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모로코 남단, 사하라사막과 맞닿아 있는 작은 마을인 므하미드 엘 기즐렌(M'Hamid El Ghizlane)의 현지인 집에서 일정량의 노동을 제공하는 대신, 그가 소유한 흙집에 무료로 머물기로 했다. 적어도 이곳에 머무는 기간만큼은 숙박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입국 심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항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택시기사들에게 발길을 묶였다. 자신의 차로 손님을 데려가기 위해 아우성을 치던 기사들은 무거운 배낭을 멘 내 모습을 보더니 살가운 미소를 띠며 접근해 왔다. 미리 모로코의 택시비 시세를 알아보고 갔으나, 공항 근처에서 일하는 기사들이 담합을 한 모양인지 흥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디 가시나? 시내까지 200디르함(한화 약 2만 4천 원)에 태워다 드리지.”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20디르함이면 가는 거리 아닌가요?”

“허, 이 아가씨 보게. 어디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지? 장난하나?”


200디르함을 내고는 도저히 탈 수가 없어 기사들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다들 코웃음만 칠 뿐, 절대 가격을 깎아줄 수 없다며 눈을 부릅떴다. 유럽 지역보다 물가가 싼 편이기 때문에 바가지요금이라고 해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돈으로 여행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최소한으로 소비해야 했다. 게다가 저가 항공사의 탑승권 값과 맞먹는 금액을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시내까지 이동하는 데 쓸 순 없었다. 그 돈이면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긴 이미 버스가 끊긴 밤의 공항. 협상이라도 할라치면 기사들이 기를 쓰며 박박 우겨대는 바람에, 잔뜩 풀이 죽은 채 50디르함을 낮춰 부른 기사의 차로 향했다.



마라케시의 공항
모로코의 화폐 '디르함'



시내 부근에 다다랐을 땐 이미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있었다. 한 청년이 다가와 호스텔까지 데려다준다고 하기에 “나한테 돈을 받으려고 그래? 나 돈 없어”라고 말하니 지나가던 취객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예약해둔 호스텔이 있었지만, 거리의 구조가 복잡하여 좀처럼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결국 현지인 청년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호스텔 입구에 다다르자 그는 예상대로 “20디르함은 네게 큰돈이 아니잖아. 내가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작은 선물은 줘야지?”라고 말하며 집요하게 돈을 요구했다. 급작스레 피곤함이 몰려와 대충 돈을 꺼내준 후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언짢아진 기분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으나, 돈을 쥐어주고서라도 안내를 받지 않았으면 이토록 외진 골목에 있는 숙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을지.



마침내 도착한 호스텔



숙박 앱을 통해 최저가로 예약한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맥이 풀렸다. 홀 전체에 은은하게 깔린 붉은빛 조명에 의존해 주위를 둘러보니, 모로코 특유의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프랑스 친구에게 모로코에 도착하자마자 눈 뜨고 코 베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이곳 모로코는 흥정의 나라”라며 미소짓는다. 물건을 사든 택시를 타든 간에 대부분의 모로코 사람들이 원래 시세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리 알아간 시세를 바탕으로 값을 깎는 흥정이 필수라고 했다. “너도 이곳에 5일만 있으면 흥정을 잘할 수 있게 될 거야.” 도착한 첫날부터 모로코가 ‘만만치 않은 나라’라는 인식이 생겨 버렸다.



모로코에 도착한 날 묵었던 호스텔의 전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