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는?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제가 여기 온 건 모르고요. 앞으로도 모르게 하고 싶습니다.
동민과 남자는 카페에 마주 앉았다.
-유나랑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습니다.
-그래?
남자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동민은 불쾌했다.
-제 여자친구가 일하는 곳의 사장님이신데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축하는 안 해주시네요?
동민은 '사장'에 힘을 실어 얘기했다.
-사장님. 앞으로도 우리 유나 잘 부탁드릴게요. 일은 오래 시키지 않으려고요. 결혼하면 쉬게 해야죠.
-결혼?
남자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결혼 생각하고 고백했습니다. 친형은 아직 일에 미쳐있는지라 제가 먼저 하려고요.
-그 말 하려고 일부러 찾아왔다는 건가?
-걱정도 되고요. 유나가 보통이어야죠. 자식 있는 유부남이라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한테 눈이 안 가겠어요?
-무슨 뜻이지?
-알아들으신 거 같은데요. 오늘은 선배님 대우해 드립니다만 선 넘지 마세요.
남자는 어금니를 맞닿았다. 자신의 반지를 억지로 뺏으려는 거면 주먹이라도 날릴 텐데, 비눗물에 스륵 빠져 그대로 하수구로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었다.
-후배님. 유나가 왜 그쪽을 만나는 것 같아? 좋아서?
유부남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동민은 더욱 눈에 힘을 줬다.
-유나도 저에게 분명 호감이 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날 여자가 아닌 거 아실 텐데요.
-유나에 대해 얼마나 알아? 이제 한 달 되었나?
-고등학교 때부터 봤죠.
-유나 말로는 이번에 알게 됐다던데. 난 거의 15년이야. 후배, 상처받지 말고 마음 접어. 유나는 어른스러운 사람 만나야 해. 나 같은 남자.
가게에 오며 각오한 동민이지만 남자의 뻔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사랑하는 게 왜 부끄러운 일이지? 다만, 실패를 돌이킬 시간이 필요할뿐이야. 그 시간 동안 유나랑 잠시 놀아줄 친구쯤으로는 봐줄게.
-혼자 이상한 상상하지 마시고요. 아무 죄 없는 제 여자친구까지 흙탕물 튀게 하지 마세요. 부탁 아니고 경고입니다.
-하하하 경고라.
힘 있는 눈빛이 남자를 꽤 흔들고 있었다. 동민은 자신이 그를 자극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름을 더 부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오늘 저희가 만난 건 유나가 모르는 게 좋을 겁니다. 가게는 당장 그만둘 거니 사람 구하세요.
와인 바에 올려 두고 자리를 비웠던 유나, 그 타이밍에 도착한 메시지가 동민의 눈에 읽혔다.
'보고 싶다'
자신이 그걸 본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알아서 잘하는 그녀지만 이젠 동민이 지켜야 할 사람이었다. 홧김에 유나가 그만둘 거라고 했는데 그녀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동민은 밤새 눈을 감지 못했다.
다음날.
스튜디오에는 두 형제가 있었다.
-왜 그래? 잠 못 잤네
-커피를 좀 늦게 마셔서.
-뭐야. 맨날 마시는 커피에 새삼스럽게. 그런 거 상관없잖아?
-이제 상관이 있네. 늙었나? 그래서 말인데 형, 나 빨리 결혼해야겠어.
-뭐래. 미친놈. 이따 선우 만날건데 오랜만에 얼굴 볼래?
-선우 형? 당연히 봐야지.
동민은 충혈된 눈에 생기가 돌며 휴대폰을 들었다.
1층 | 맞춤 수제화
[ 유나야 이따 퇴근 맞춰 데리러 갈게~ 그리고 괜찮으면 우리 형이랑 같이 볼래? 아직 그건 부담스럽겠지? ]
[ 아니야 좋아~~ 옷 좀 신경 쓰고 올걸~ ]
[ 꽃바지 입어도 잡지 모델이야 ^^ ]
[ ㅋㅋㅋ 고맙... 습니다! ]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아 깜짝이야!!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는 유나에게 남자가 가까이 속삭였다.
-뭐야. 놀라긴.
남자는 유나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오빠, 할 말 있어.
유나는 어제의 결심이 선명할 때 전하기로 했다.
-이상하게 안 듣고 싶은데?
-직원 구해줘. 안 구해도 9월까지만 할게. 더 빠르면 좋고
-남자친구가 먹여 살리겠데?
-무슨 소리야?
-왜 그만두려는 건데.
-모두를 위해서. 어제 언니 만난 거 알지? 마음속으로 짓는 죄도 커.
-무슨 죄를 지었는데? 다들 왜 그러지?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게 잘못이야? 내가 너 두고 결혼한 게 잘못이지.
-이런 대화도 그만하고 싶어. 불편해.
-당신은 죄책감 같은 거 가지지 마. 그런 생각 안 들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쓰는데.
-애쓰지 마. 오빠도 힘들잖아. 착한 아내랑 아이 잘 지켜야지. 나도 내 남자친구랑 잘 만날게.
-둘이서는 어제 처음 만난 거라며?
-응.
-그래, 알았어. 유나 원하는 대로 하자. 어디서 만나는데? 데려다줄게.
-아니야. 가게 앞으로 오기로 했어.
유나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남자는 곤란하게 굴지 않았다. 가게만 그만두면 그와는 이제 볼일 없을 것이었다. 어제보다 자신 있게 동민을 만날 수 있음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 유나야 나 출발~~ ^^ ]
가게에 거의 다 도착하도록 유나에게선 답장이 없었다.
[ 바빠요?10분 후면 도착~ 주차장에 있을게^^ ]
동민은 유나와 30분 전까지 메시지를 나눴었다. 가게 마감 시간이 지났기에 전화를 걸었으나 꺼져 있었다.
[ 유나야. 왜 연락이 안 돼... 배터리가 없나? 메시지 보면 바로 전화 줘 ]
동민은 차를 아무렇게나 세우고 뛰었지만, 이미 가게는 어두웠고 문은 잠겨 있었다.
-하동민 침착해....
그녀의 전화는 똑같은 음성 메시지만 반복됐다.
계속-
매주 화, 수요일 밤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