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공감
매년 대학 입시 시즌이 오면 많은 가정에서 자녀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놓고 고민한다. 그 선택의 고민은 본인이 가고자 하는 대학이나 학과가 성적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을 때 더욱 깊어진다.
학벌을 중시하던 과거 베이비 부머 세대를 뒤돌아 보면 그때는 대학을 합격한 것 자체로서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었고 대학생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제는 학생 수가 대학 정원보다 부족한 상황이어서 얼마나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지 학생 의지만 있다면 성적 때문에 대학을 못 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날에 가족 친지가 모이면 누가 "어느 대학에 갔는가?"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다. 아직까지는 "어느 학과를 선택했는가?"는 대학에 묻혀서 중요한 대접을 못 받는 것이 현실 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입학 시즌이 되어 학부모들과 상담 중 자녀의 대학 선택과 관련한 의사를 물어보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아이의 선택에 맡기 겠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좋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무책임하며, 위험스러운 말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는 자녀에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로 부모의 책임을 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확고해서 일찍 인생 목표가 정해져 있는 친구도 있지만, 많은 학생들은 뚜렷한 목표를 정하지 못했거나,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의 특기적성에 확신이 없는 상황에 있을 수 있다.
이런 학생에게 "네가 원하는 선택을 하라"라고 하면 "아무 데나 가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실, 청소년기 학생의 제한적인 지식으로 사회의 직업과 대학의 학과들 사이에 연관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면접 시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지원한 학과가 본인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면 의외로 많은 학생들은 학과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대답을 한다.
"대학에서 홍보 오신 분의 말을 듣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권유로, 친구를 따라서, 성적에 맞추어 지원했다."라고 대답하는 부류가 "내가 원하는 꿈과 이상을 이루는 데 있어 이 학과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내게 중요하다"라고 그 필요성을 대답하는 친구들보다 훨씬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자녀의 의견보다 부모의 의견이 앞서서 일방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졸업 후 취직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도록 부모가 자녀를 설득하는 경우다. 혹은 성적에 맞는 지원을 하고 보니 평판 있는 대학의 원치 않은 학과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대학의 유망학과 사이에서 부모와 학생의 의견이 서로 상충해서 다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고민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사회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다.
요즘 세계적인 기업들의 인재 채용 요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창의성", "능력", "경험"을 검증하는 것으로 함축 가능하다. 대학의 졸업 여부와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에서 맡게 될 직무의 능력을 검증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는지와, 어떤 경험들을 해왔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최근 발표한 구글의 Google Career Certificate 시행이 대표적이다. 좋은 대학의 학위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훨씬 중요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여 1, 2학년의 기초전공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선택한 학과가 본인에게 적합한지 여부를 깨닫는다.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을 2년이 지나서 느끼고 후회한다면 이 시기가 인생에서 얼마나 큰 손실이 될지는 잘 알 것이다.
장차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학과를 택하는 것과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선택하려는 현실의 문제 사이에 정답은 없다고 본다. 설령 내가 음악에 흥미를 느낀다고 방탄소년단과 같이 되는 것에 모든 인생을 걸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의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과 취미나 특기를 살리는 것이 꼭 같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2017년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전공을 살려 일하는 직장인은 45%에 그친다고 한다.
또한 같은 해 고등교육 통계를 보면 전공선택을 후회하는 대학생은 절반이 넘는 50.3%이고, 현 전공을 유지하고 싶다고 응답한 대상자는 32%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학의 전공을 선택한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전공을 후회하고 다시 사회 직장인의 절반 이하만이 전공분야에서 일한다는 현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다.
이들 통계지표는 대학 입학 시즌에 학과의 선택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과의 선택이 대학의 선택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교육 통계서비스(kess.dedi.re.kr)에 따르면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에 개설된 학과는 약 12,576개로 알려져 있다. 이중 가장 많은 공학계열의 학과는 무려 2994개 이고, 교육계열 803개 학과, 사회계열 2939개 , 예체능계열 1843개, 의학계열 653개, 인문계열 1679개, 자연계열 1665개의 학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 학과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폭이 너무 넓어서 혼란스러울 수 있다. 가령, 컴퓨터에 흥미를 가진 학생이 전국에 설치된 282개의 컴퓨터 관련학과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만만치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안전문가나 프로그래머를 육성하는 것이 중심인 학과부터 게임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학과까지 이 분야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졸업 후 진로도 다양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알고 있는 피상적인 지식만으로 적합한 학과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좋은 선택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임무는 자녀와의 소통이다. 소통을 통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정확히 하고, 자녀가 추구하는데 미래를 냉정하게 그려 볼 필요가 있다. 자녀의 이상이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의 여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성적이 문제가 된다면,
내신이나 수학능력 시험 성적은 명문대학을 가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 원하는 학과에서 배움을 추구하는 데 있어 보다 좋은 학습여건을 갖춘 대학을 선택하기 위한 우선권으로 활용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더불어, 자녀가 진학하고 싶은 학과의 교수님들과 면담을 통해 충분히 대화하며 해당 분야의 교육환경과, 취업률, 미래 비전 등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학생 유치가 우선인 대학들은 홍보에 있어 다소 과장된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점과 취업률은 대학평가의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대부분 질보다 양을 홍보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함께 고려하면 좋겠다.
물론, 학생 스스로도 좋은 선택을 위해 해당 전공분야에 대한 지식을 구하는 일에 소홀해서도 안된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넘치고 넘치는 대학의 전공 관련 자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당 분야에서는 어떤 것을 배우게 되며, 이러한 배움은 사회의 어떤 부분에 쓰이게 될지, 이 분야의 사회적 트렌트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내가 살고 싶은 미래와 부합할지를 따져보는 것에 나태해서는 안 된다.
또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03년에 인문사회계열의 남녀 평균 고용률은 73.2%, 공학계열 70.5% 였지만, 10년 뒤 2014년 조사에서 인문사회계열 69.6%, 공학계열 75% 로 현격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산업수요는 보통 5년을 주기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지금의 인기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졸업 후에도 인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통계청의 산업인력 수요 변화 예측에 대한 자료들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진학을 앞둔 학생들 모두가 후회 없는 학과를 선택하여 유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선택이 우연히 내게 오지는 않는다."는 말을 더하고 싶다.
자녀가 대학을 결정하는 데 있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옵션 1) 인지도가 조금 낮지만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대학
옵션 2) 인지도가 집 주변 대학보다는 높은 원거리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