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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J Jun 21. 2024

오랜 슬픔과 마주하는 일

세상을 떠난 아빠를 추억하며

언젠가 맞닥뜨리기 힘든 슬픔에 대해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둔 감정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보자기에 싸서 열어보지 않은 감정.

아빠의 죽음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덤덤히 말할 수 있는 거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만 추억 것.

감정을 직면하고 마주 보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었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밑도 끝도 없이 울다 잠에서 깨고는 했다. 그 시작이 무슨 꿈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런 날이 가끔 있는 것이다.

치매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몹시 힘들고 슬픈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가 알던 아빠와 다른 아빠를 마주할 때마다 낯선 감정이 들었다.

아빠가 편안함에 이르렀을 때 슬픔과 안도가 함께 밀려들었던 건 이제 아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삶의 중반쯤에 들었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부모의 그늘 아래 살다 성인이 되어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내가 자식의 보호자가 되고, 그 아이들이 다 자랄 때쯤 나이 든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순리.

나는 부모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지 못했다.

자식을 더 사랑했고, 아낌없이 주었으며, 부모가 늙어가는 것을 당연스럽게 지나쳤다.

치매를 진단받은 아빠는 3년을 살지 못했고 딸의 이름을 불러보지도 알아보지도 못한 채  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5개월 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을 조심스레 서랍에서 꺼내어 용기 내어 보자기를 풀어본다. 그리움과 슬픔을 꺼내 한참을 울다 이제 한없이 딸바보였던 아빠를 가슴속에 묻다.


아빠, 나는 늘 생각해.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 꽃처럼 예뻤던 미소,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 했던 따뜻한 마음.
우리가 함께 보냈던 행복한 시간들을 말이야.
그리고 아빠가 기억을 헤매고 다녔던 아픈 그 시간들은 이제 그만 잊어버릴게. 소중한 시간들만 다시 포장해 둘래.
아빠딸로 태어나서 사는 내내 좋았어. 아빠의 바람처럼 행복하게 즐기면서 살다 만나러 갈게.
우리 또 만나자!
사랑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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