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발이 준 선물
"야 재랑 놀지 마"
왜?
"재 좀 이상한 것 같아"
친구들이 이유도 모르고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학교에 입학하여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는 몸이 불편해도 내 몸이 크게 장애로 느껴지지 않았고 욕심도 꿈도 많아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나의 생각이었을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활한 나는 학교 선생님의 학부모 면담요청으로 엄마가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학기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내 방에 들어가 펑펑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저도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너무 외로워요~
하지만 나의 왕따 생활은 계속 이여졌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학교도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처음에는 잘 적응한 듯 보였으나 역시나 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면 말을 건네며 수학여행 때 외톨이된 나와한 친구를 살펴준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금방 전학을 갔지만 내 초등학교 때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었다.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던 나는 실기시험 보는 활동은 맨 꼴찌이거나 제외 대상이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멀치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했다. 그나마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은 피구활동 중 공에 맞지 않기 위해 피하는 것이었다. 피하는 피구활동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옷에 맞지 않은 듯 금방 나의 자리로 돌아왔고 나에게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든 활동은 벽과도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없구나..
그렇게 정상적인 친구들과 함께 했던 나의 학창 시절의 추억은 초라했고 외로웠다. 그래서 친구 많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어렸을 때 눈에 뜨지 않았던 나의 신체적 장애는 자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조기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또 다치는 일이 많았고 다리가 점점 굳어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손도 눈에 띄게 오그라들고 굳기 시작해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
재 병신 아니야?
남자친구들에게 들은 소리였다. 두 남자아이 중 한 친구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나를 보고 쏙닥 거리는 소리였다. 그렇게 나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고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왕따 생활도 익숙해졌는지 눈물도 없어지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조용하게 홀로 있는 한 여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3년 동안 함께 하며 겨우 왕따 생활을 면했다. 그 친구라도 있었던 것이 나에게 고등학교 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마음처럼 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 넌 틀렸어.. 넌 할 수 없어.. '네가 뭘 할 수 있겠니'라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 자신을 점점 죽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