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발이 준 선물
"여보. 지은이 오른쪽 손이 이상한 것 같아..
왼쪽 손과 발만 움직이네 …
갓돌도 안된 내가 물속에서 있는 몸의 반응과 행동을 살펴보며 엄마는 이상함을 감지한 것이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다음날 동네병원을 가보았고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가벼운 질병은 아닌 것 같다고 하였고 그 얘기를 듣고 난 후 부랴부랴 어머니는 나를 큰 대학병원에 데려가 정밀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검사를 마친 후 부모님에게 들려온 소식은 뇌손상으로 마비가 왔다는 의사 선생님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난 뇌성마비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병원에 다니며 갓난아이 때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은 없지만 엄마는 내 질병을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시며 병원치료뿐만 아니라 기공치료,열치료 등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좋아지기는 커녕 똑같은 내 상태와 치료받을 때 느끼는 통증들을 생각하면 그 시간이 곤욕스러웠다. 지금은 많은 정보들을 통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지만 그 당시 의료 발전이나 정보들이 지금보다는 부족했기에 도움 되지 않은 치료를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절실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치료시켰을까?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낫기 위해 온갖 좋아질 수 있다는 정보들을 통해 온 힘을 쏟았고 통원치료를 하며 병원에 다니는 일상을 보내었다. 그 당시 가까운 병원이 없었기에 한번 대학병원에 갔다 오게 되면 그날 하루 해는 저물어 저녁때가 되어야 집에 돌아왔고 일 년 이년 삼 년이 지나면서 내가 너무 지쳐가게 되었다.
“ 엄마.. 치료받으면 너무 아파. 계속치료받아야 돼?
엄마에게 나는 치료받는 게 힘들다며 투정 부렸었다. 나는 낫지도 않은 운동을 왜 자꾸 하라고 하는지 어린 나이에 이해가 되지 않았고 부모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엄마는 교회 가서 나를 위해 기도하며 늘 눈물을 흘리시고 속상해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지은아.. 엄마가 미안해
흑-흑-흑
" 엄마가 뭐가 미안해.
“괜찮아…. 엄마 나 아무렇지도 않아.
" 아주 무더운 여름날 엄마가 널 그네 태워 네가 놀래서 이렇게 된 것 같아..
“그때 그네 태우지 않았으면 네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지나간 날의 아쉬움을 토로하며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와 후회스러움을 표현하시곤 하였다. 그때는 엄마가 왜 그렇게 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슬퍼했는지 어린 마음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할 때는 해맑은 얼굴로 엄마를 위로하였다. 만드시는 거에 재주 있으신 아버지께서는 내 머릿속 기억에 목공소에 가서 손수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직접 재활운동기구를 만들어 주셔서 내가 집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집에는 나를 위한 특수한 기구들이 있었다. 병원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일상에서도 손을 계속 사용해서 발달하고 있을 때 계속 재활을 해주어야 더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내가 알지 못했다.
" 지은아.. 손운동 해야 돼 자꾸 써야 한다고…
부모님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는 애기는 잔소리로 들렸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 주셨던 운동기구는 수고와 노력에 비해 그 운동기구는 마치 놀이기구를 하듯 내키는 대로 했었고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내 장애가 나의 인생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냥 신나는 어린아이였었다. 그런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은 큰 장벽이라는 걸 느끼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인생의 거친 파도가 나에게 밀려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