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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Oct 08. 2021

평범해도 내 삶이다.

운수 안 좋은 날?

지난주 2박 3일 간 친정에서 고구마를 캤다. 캐기 전 비 온 후라 땅이 질퍽했고, 비가 또 온다고 해서 손에 휴식을 줄 수 없을 만큼 이틀 내내 고구마를 캐야 했다. 나야 뭐. 친정 일이라서 상관없는데, 남편은 긴 휴일을 밭에서 보내야 하니 얼굴에 짠내가 솔솔 풍겼다. 

    

오죽이야. 결혼 전, 친정이 농사를 지어서 일 년에 고추 심을 때, 고출 딸 때, 고구마 심을 때, 고구마 캘 때 가야 한다고 사정을 밝혔었다. 해본 적 없던 농사일도 척척해낼 테니 결혼하자고 한 남편이다. 결혼 9년 차가 되어가니 굳센 패기는 어디 가고, 일을 할 때면 쉴 타임을 찾아서 눈을 번뜩거리고 있다. 그래도 군말 없이 이틀간 고구마를 캤으니 남편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폭풍 칭찬을 했고, 휴일은 끝났지만 여전히 칭찬은 진행중이다.


립서비스 실력이 딸리는 나도 그 기술이 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건가? 화요일, 수요일에는 남편이 휴가를 내어 아들, 남편, 나 이렇게 자연휴양림에 놀러 갔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어서인지 아들은 신났더랬다. 남편과 나는 고구마 노동으로 인해 어깨도 쑤시고, 허리도 쑤신 상태였다. 다행히도 차로 한 시간 거리의 휴양림을 예약한 게 그나마 신의 한 수였다.  

     

이렇듯 지난주 토요일을 기점으로 수요일까지 일하고, 움직이고, 운전하고, 놀고 했더니 몸도 피곤, 마음도 피곤해서 정신이 반몽롱 상태를 유지했다. 미지근한 물을 틀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찬물이 흘러 넘처도 인지 못할 정도로 피곤이 쌓이고 쌍인 상태였다.     


목요일 새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비가 들어올까 봐 서둘러 아이방, 거실, 부엌 창을 닫기 시작했다. 마지막 베란가 딸린 신랑 방의 바깥쪽 창의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밀었다. 순간 ‘퍽’‘쨍그랑’ 소리가 요란한 게 베란다에 울려 퍼졌다.    

  

남편이 애지중지하던 화분이 박살이 나버려서 베란다에는 화분 조각과 함께 흙이 한바탕 질펀하게 퍼져있었다. 올해 초 식물원에 가서 사와서 꽃 한번 보고, 남편이 꽃 몇 번 더 보겠다고 분갈이도 한 그 애정이 닮긴 그 화분이 깨진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창문을 닫았는데 전날 밤 남편이 창틀에 화분을 올려놓았었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창문을 닫은 거다. 가끔 내가 이렇다. 몸이 피곤해서 정신도 피곤하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야 할 일 이외에는 신경을 1도 쓰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계속 지속되면 며칠간 집안에 깨지고, 부서지는 일이 자꾸 생긴다. 물건이야 버려지면 그만이지만 자칭 반몽롱 상태의 지속은 나의 몸에도 이런저런 상처를 입힌다.     


다행히 꽃을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썼던 흰색 플라스틱 화분이 남아있어서 얼른 떨어진 흙을 주어 담아서 또다시 분갈이를 해주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부주의한 객으로 인해 다시 비좁은 화분으로 들어갈 꽃을 생각하니 미안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아침에 일어난 신랑은 나의 부수기 기간이 시작된 걸 알고 화분보다는 내 걱정을 먼저 했다. 가끔 우리 남편. 사랑꾼 면을 가지고 있지만, 표현력이 딸려서 그 면이 돋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내 실수 앞에서 나를 걱정할 때면 ‘우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조심, 또 조심’을 언급하며 출근하는 신랑. 무사히 목요일 오전과 오후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 반전이 있어야 인생의 맛이다.      


추워서 창문과 방문을 꼭꼭 잠그고 잤는데 비가 와서 습한 공기로 8시에 잤는데 11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방안에 서늘한 공기를 몰고 오기 위해 어둠을 헤치며 방문을 살짝 열었다. 안경도 안 쓰고, 잠이 덜깬 나는 미친 짓을 하고 말았다. 정말 평소에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침대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생각에 다이빙대에 올라간 선수처럼 두 발을 모으고 두 발로 점프에서 침대로 떨어졌다. 침대로 떨어지긴 했지만 하필 어둠 속에서 거리 조절을 못한 나는 침대 매트리스 앞으로 나온 원목 침대 프레임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퍽’‘으악’ 내 체중이 실린 힘이 고스란히 무릎으로 전해졌다. 너무 아파서 무릎을 부여잡았다. 웃긴 것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프다, 아프다’하면서 잠이 든 거다.     


5시 눈을 뜨니 무릎에서 잊고 있던 통증이 느껴졌다. 잠은 참 좋고 편하다. 잊고 싶은 걸 손쉽게 잊게 해 주니 말이다.     


무릎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검지 손가락 만하게 까져서 살갗이 벗겨진 상태였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제야 육체와 정신의 피곤함에서 벗어난 느낌이 든다. 역시 충격이 커야 더 작은 것들이 잊히는 건가?     


당연히 나의 불명예스러운 상처를 보고 남편이 한마디 했다. 입고리를 올리며 신랑이 웃는다. 어이가 없다나. 생전 안 하는 짓을 하는 걸 보니 며칠은 꼭 조심하라고 한다. 아 작은 불행의 사건은 더 큰 사건의 전조현상 같은데, 하필 오늘 오전 10시 치과에 가야 한다. 치료를 받기도 전인데 몸이 떨려온다. 별일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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