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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Nov 27. 2023

주거의 조건

역시 첫 번째는 도세권이지!

둘째 아이가 스무 살이 되는 해에 독립을 선언했다.

원래 큰 아이가 성인이 되고 둘째가 고등학교에 졸업하는 올해가 내가 애초에 선언한 독립일이었으나, 

섬세와 예민과 지랄 맞음의 총합체인 오빠의 그늘에 가려 사춘기조차 숨죽여 보낸 딸의 응석을 조금 더 받아 주고 싶어 한 달에 열흘 정도 여행을 가는 반독립 상태로 완전독립을 미루었다.

올해의 독립이 미루어졌기에 저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듯 가족들은 나의 독립선언에 시큰둥하다.

어쨌든 나의 독립 결심은 확고하다.

독립의 첫 번째 스텝은 뭐니 뭐니 해도 주거의 독립이다.

우리나라에 살 것이란 것 외에 어느 지역으로 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가능하면 2년 동안 곳곳을 다니며 조금 긴 체류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을 생각이다.

지역이 정해졌다면, 그다음 주거의 조건은?

망설일 것도 없이 도서관이다.

일단 도서관이라면 만족이지만, 이건 나의 바램이니 좀 더 까탈스럽게 조건을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

- 나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란 10km 이내이다.

- 너무 가까운 것보단 산책 겸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서관 가는 길이 1~2km 밖이면 더욱 좋겠다. 

2. 클 필요는 없지만, 양서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신간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곳.

- 신간이 들어오는 곳이란 건 책을 빌리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살아있는 도서관이란 이야기다.

3. 도서관 가는 길 혹은 주변에 작은 공원이 있으면 그야말로 최고.

- 춥거나 덥지 않은 날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에 출근하고 공원에서 까먹는 사치를 누리고 싶다.

4. 소박한 구내식당이 있다면 신에게 감사할 일.

- 여행을 다닐 때 그 지역의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구내식당에서 한 끼를 먹는 것은 나의 여행의 큰 기쁨이다.

- 도서관을 찾는 이가 엄청 많지 않기에 운영이 힘들 것은 뻔한 일이고, 그러기에 외부업체에 외주를 주는 곳이 늘어 가격은 비싸고 음식은 개성이 없어져 아쉽다.

- 그 도서관만의 특색 있는 음식이나, 별다른 찬은 없어도 싼 가격에 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게 소중한 한 끼를 주는 식당이 있는 도서관을 만나면 그저 기쁘고 감사하다.


이런 도서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야 말아버리니, 

어쩔 수 없이 도세권은 나의 양보할 수 없는 주거의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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