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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Nov 06. 2024

112. 결이 맞는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오늘의 단어채집


명사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지난 주말에 y를 만났다. y는 글을 쓰는 친구다. 글을 쓰는 일이 어렵기만 하고 지칠 때면 주변의 응원이나 칭찬이 무척 힘이 되곤 한다. y가 그중 한 명이다. 나의 리뷰를 읽고 칭찬해 주고 100일 글쓰기를 했을 때도, 매일 필사를 하는 것도 대단히 여겨주고 응원해 주고 칭찬해 준다. 나는 늘 나의 쓰기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이런 친구가 참 귀하다. y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가끔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서로의 글을 읽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사이.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첫인상에서부터 이미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가 들고 인상이 조금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어릴 때는 꽤 사나운 인상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겐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소심하게 낯을 가리기보다는 뾰족하게 날이 선 상태로 낯을 가렸다.(이런 나를 친구 k는 치와와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친구가 많지 않았고 편해지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래서 SNS의 세계가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익명의 세계에서 나를 드러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먼저 보여주니 마음이 편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면서 뾰족한 마음보다 다정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y와 만나기 전부터 SNS를 통해 글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린 참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우리는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만났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처음의 어색함은 금세 사라지고 말이 끊이지 않았다. 글 쓰며 지내온 외로운 시간과 글쓰기가 막막했던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한 사람인 양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글을 쓰는 게 즐겁기만은 하지 않았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컸고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대단한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 엄격하게 스스로를 검열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했다. 상을 받았을 때도, 주변에서 칭찬을 들었을 때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 스스로 나를 다독이지 못하고 누구보다 먼저 비판의 눈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칭찬이, 상이 더더욱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가 나의 두려움과 부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y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눈가가 슬쩍 촉촉해지기도 했다. 너무나 내 마음과도 같았던 순간을 서로의 눈빛에서 알았다. 특히 y는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었다. 나에 비하면 그 압박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초라하고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하고 바보 같았던 날들이 많았다. y의 마음이 어땠을지 너무나 크게 와닿아 더 많은 말들을 쏟아냈던 것 같다. 나는 말했다. 내가 나를 미워하고 한심하게 여기면서 나 자신을 혐오할 때가 많았다.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도망치려고 하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만 커서 되려 쓰지 못했으니까. 여전히 나는 쓰는 일이 어렵고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를 혐오했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그렇게 지금의 나에 이르렀다고 말이다. y는 생각에 잠기더니 그런 마음 알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길 위에 있다. 무작정 달리기도 했다가 지쳐서 주저앉기도 했다가 다시 일어서 걸어가는 중이다. 도착지점이 어디일지 알 수 없지만 쓰고 싶은 마음만은 달라지지 않으리라. 그 마음을 붙들고 힘차게 달리지는 못해서 뒤돌아 도망치거나 숨지 않고 천천히 걷더라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내 옆에 y와 같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나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 내가 지치고 괴로울 때 손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 책을 읽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필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는 사람. 새벽과 바다와 숲을 좋아하는 사람. 비와 눈과 달을 좋아하는 사람. 단단해 보이지만 마음이 여리고 여려서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 남을 미워하기보다 나를 미워하는 게 더 편했던 사람. 그래서 나약한 게 아니라 안아주고 싶은 사람. 사랑과 영원은 없다고 믿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 그 믿음을 깨트릴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다정함을 원해서 다정해지는 사람. 애정의 결핍을 채우고 싶은 사람. 오롯이 내편을 만들고 싶은 사람. 쓸쓸한 뒷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



당신, 거기 있나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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