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말부터 <홀로 함께>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영문학자 정은귀 교수가 시를 처음 읽는 십 대를 위해 쓴 책인데 동네책방 온라인 필사모임에서 매일 한 편씩 읽고 필사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다 보니 쉽게 읽히는데 그 안에 담긴 사유가 깊어서 매일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요즘 가을 햇살이 좋아서 길었던 여름 내내 멈췄던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산책하면서 매일 한 편씩 읽었던 시를 생각하기도 하고 같이 읽고 있는 책도 생각한다. 하루를 떠올리기도 하고 지난날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올 한 해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마음이 무척 요동치는 시간이었다. 상실의 시간이었고 무력하고 나약했던 시간이었다. 빛이 쏟아져 눈부신 시간과 어둡기만 하던 캄캄한 시간이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불안하고 무력하기만 하던 날들 속에서도 다정하고 애틋했던 시간도 있었다. 돌아보니 그랬다.
빛이 사라진다고 영원히 빛나지 않는 않는 것은 아니고 어둠이 내려앉는다고 영원한 어둠은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 절망 속에 있다한들 그걸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안다. 막막하고 두렵기만 한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하여 빛도 어둠도, 절망도 희망도 전부 사라졌다가도 다시 생겨나는 거라고 믿고 싶다.
이것 하나는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것도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다고요. 내가 노력한 시간, 고민한 흔적, 심지어 관계 안에서 받은 상처조차도 사라지지는 않고 내 안에 새겨집니다. 하지만 내가 헌신하고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듯 여겨지는 일조차도, 어딘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싹을 틔우고 있답니다. 정은귀, 홀로 함께 중에서
어떤 것도 그냥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내가 노력하고 애썼던 시간과 주저앉아 절망 속에 빠져있던 시간. 사랑해서 애틋했으나 사랑해서 도망쳤던 시간과 놓아버린 인연을 후회하며 그리워하는 시간. 사람이 두려워 사람을 피했던 시간과 그럼에도 사람을 찾았던 시간.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 내가 되었다.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것이다. 헐벗은 나의 마음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읽고 쓴다. 추운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게 내가 먼저 나를 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