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제자리걸음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 봉주연

by 하리


나의 자리가 어디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늘 걱정과 근심은 세트처럼 곁에 붙어있었고

행복과 희망은 바람처럼 손에 잡히질 않았거든요.

그렇게 정처 없이 흘러가는 마음자리가

모래성처럼 흩어지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흘러가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곁에 있었던 아닐까 생각해요.

그 어떤 마음도, 자리도, 사람도, 사랑도.

갇혀버린 거였는지도 모르지요.

버리지 못한 기억들이

나를 할퀴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뒷걸음질 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저는 괜찮아요.

그게 나의 자리이겠거니 생각하며

제자리걸음으로 바닥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거라고,

그리하여 그 모든 걸음이 헛된 걸음은 아닐 거라 믿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사랑하게 된 나의 자리,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찾아줘야 하지.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더는 사랑할 수

없는 나의 자리.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 봉주연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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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