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가라앉자, 함께

투고 실패작

by 하리


비가 내리면 더욱 선명해지는 풍경이 있어

물안개로 가득한 숲 너머에

네가 기다리고 있지


이름 모를 새소리

비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쓸쓸한 바람 소리

쏟아지는 빗방울

습기를 머금은 공기


나는 이런 순간마다 너를 생각해

너를 생각하면 이런 풍경이 떠오르는 걸지도 모르지


뒷산 숲길을 걷다가 보았어

길가에 경찰차가 줄지어 서 있어

누굴까, 누가 또 자기 자신을 버렸을까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그곳에서

나는 빙글빙글 어지러웠는데

누군가는 그곳에서 죽어가고 있었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데도

나는 그 길가에 한참을 서있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사람이 있는데

나는 낭만 타령 중이지

허깨비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허정허정 걸으며

미래도 불안도 현실도 걱정도 밀어 두고

아름답구나 이 아름다운 봄을 좀 느껴봐

우리에겐 아직 낭만이 있어


너는 지금 울고 있니 웃고 있니

내 얘기가 우스워?

낭만 같은 헛소리는 그만하라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어떻게 알았지?

제정신이었다면 우리 사랑할 수 있었겠어


우리에게 사랑이 있었을 땐

나비처럼 나풀나풀 나는 것만 같았는데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에겐 추락만이 남았어

날개 없이 추락하는 우리

이보다 더 낭만적인 일이 있을까

너와 함께라면 추락하더라도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대도 낭만적일 텐데


아, 이미 바닥이라고?

너 없이도 잘 살아놓고 웃기지 말라고?

너 없이도 잘 사는 나를 견딜 수가 없어

아니, 잘 살 리가 없잖아

너는 나 없이 잘 사는 거야?


서로를 품에 안고도 불안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자 차라리 우리 둘만의 불안의 바다에


가라앉자

함께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탈락만이 기다리는 나의 시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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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