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낯선 숲에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다
그 집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시간 차를 두고 증축된 듯한 그 건물은 서너채의 집을 아무렇게나 이어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층수로 따지면 3층 정도인데, 집 안에 계단 세 개가 각기 다른 높이인데다 층마다 구조가 다 달라서 머릿속에 설계도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낮은 천정 밑에 미로처럼 이어진 크고 작은 방들 역시 바닥과 벽재, 꾸밈새가 다 달랐다. 화장실과 부엌들이 뜬금없는 골목에서 나타나는가 하면, 선반이나 손잡이, 벽에 타일들도 당연하다는 듯 모양이 다 달랐다.
스무 명이 좀 못 되는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엿새 간 히피 코뮌을 꾸렸다. 거대 설치류의 집에 숨어들어 마음껏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요가하고 섹스하는 염치없는 영장류가 되어.
거기 간 구실은 생일이었다. 동갑내기 단짝 친구 나딘과 에바가 서른살을 맞아 가까운 가족 친지들을 초대해 합동으로 ‘생일 기념 엠티'를 하기로 한 것이다. 서른살 생일을 꽤 특별하게 챙기는 이곳 문화에서도 둘은 유난히 일을 크게 벌였다. 초대 받았다고 휴가내고 찾아온 이들도 그에 못지않게 유난히 정성스러웠고 말이다.
이런 유유자적한 시간이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고, 우리는 협조하고 협동해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인터넷 설문조사 페이지에서 각자 머무는 기간을 미리 적고, 식사 당번, 카풀 차량, 산행 계획, 물품 조달, 비용 분담, 놀이와 공연 프로그램도 꼼꼼히 챙겼다. 돈 대신 ‘넉넉한 시간’과 ‘우애’라는 자원을 활용하는 여행 컨셉으로.
참가자들은 꽤 다양했다. 생일자 두 사람의 부모들은 고급 등산복 차림에 무난한 SUV 차량을 타고 나타나 ‘내 딸이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지’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결코 이래라 저래라 하는 법은 없이 파라솔 밑에서 한가로이 담소를 나눴다.
준비 기간에 단체 메일의 주소를 무단으로 복사해 ‘캠페인 스팸’을 보낸 마티아스라는 사람은 알고보니 나딘의 삼촌이었다.
계곡에서 매일 알몸 수영을 하느라 지독한 물비린내를 풍기던 맨발족 몇몇은 직접 제작한 태양광 수레에 짐을 싣고 나흘간 숙소까지 자전거 여행을 왔다.
한 젊은 연인은 쉐어하우스에서 만나 사귀다가 그대로 아이까지 낳는 바람에 동거인들에게 엄청난 소음피해를 입히고 있는데, 다행히 생일 합숙에선 아기가 별로 안 울었다.
나는 한국에서 온 ‘테디베어,’ 반려견 누룽지와 장발의 미국 히피 애인을 데려가서 해질녘 숲에서 누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모닥불 앞에서 목청껏 불후의 명곡 ‘개똥벌레'를 불렀다. 사람들은 들개들처럼 서로 몸을 포개고 누워 내 노래를 들었다.
채식 뷔페, 어쿠스틱 공연, 계곡 물놀이, 낮잠과 피크닉...보게즌 숲 생활은 내내 즐거웠고 좀 초현실적이기까지 했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따뜻하고 야성적인 시간이 있었다. 바로 우리가 생일 맞은 두 사람을 위해 집 앞뜰에서 ‘참여 연극’을 벌였을 때.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프가 저녁식사 후 사람들을 뜰로 불러모아 내레이션과 지문이 깨알같이 적힌 두 쪽 짜리 '대본'을 나눠 주었는데, 그 때 생일자 두 명은 좀 떨어진 숲으로 유인해 놓았다. 갑자기 연극을 해야 한다니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즉흥극의 묘미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막이 오른다니 모두들 어쨌든 숨을 죽였고, 눈가리개를 한 에바와 나딘이 곧 '안내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더듬더금 걸어왔다. 둘을 우리가 둘러앉아 만든 원 안에 살포시 눕혀졌다.
연극의 내용은 지구별의 형성 과정. ‘생명체가 하나도 없던 메마른 대지에 바람이 불고, 차가운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가 생긴다. 바다 생물들이 암석에 무늬를 새기며 대를 이은 끝에 육지 동물들이 하나 둘 출현해 네 발로 땅을 울린다. 크고 작은 생명들로 강과 숲이 차츰 북적이는 또 다른 긴 세월이 지나고 마지막 순간, 마침내 인류가 첫번째 불을 피운다.’
이 무언 연극을 위해 우리는 얼떨결에 즉흥 배우들이 된 것이다. 어리둥절해 하던 모습들은 다 없어지고 다들 생일자 두 사람의 몸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들에게 입김으로 바람을 불고 얼음을 문지르며 빙하기를 알렸다. 머리카락으로 그녀들의 피부를 쓸며 우우우- 먹이와 짝을 찾는 네 발 동물이 되었다. 인간의 출현은 지구에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인간 역할을 잘할 수 있었고, 그래서 거기가 극의 클라이맥스였다.
“I walk for a day (나는 하루 꼬박 걸어).
I walk for a year (나는 일년 내내 걸어).
I walk for lifetime (나는 평생 동안 걸어)
to find my way home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Home is where my heart is (집은 내 마음이 있는 곳)
Home is where my heart is (집은 내 마음이 있는 곳)
Home is where my heart is (집은 내 마음이 있는 곳),
and my heart is with you (그리고 내 마음은 너와 함께 있어).”
노래가 돌림으로 길게 이어지는 동안, 공중 부양한 두 사람의 눈에서 따뜻한 눈물이 흘렀다. 나의 눈에서도, 다른 많은 이들의 눈에서도. 식상하기 짝이 없는 ‘생일 축하 합니다~’ 노래도 사람들이 합창해주면 울컥하고 마는데, 이토록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태어나줘서 고마워’ 세레모니엔 눈물샘이 넘칠 수 밖에.
어마어마하게 늙고 거대한 이 지구에서 인간 하나쯤은 먼지 한톨처럼 허무하지만, 사랑과 욕망으로 애써 살아가기에 꼭 가볍지만은 않은 존재. 스스로 불을 피우는 그런 존재가 바로 ‘너'라고 온 몸으로 알려주는 세레모니였다.
다음 날 나는 모닝 커피를 마시며 두 사람에게 생일카드를 썼다.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어젯밤을 기억해. 그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거야’ 라고.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독일로 이주한지 이제 8년 차여도 내게 정착의 감각은 아직 없다. 그게 꼭 체류증이 잘 안 나오거나 이사를 열한 번이나 했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탄생일을 함께 열렬히 기념한 시간, 우리는 가족이었다. 서로에게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