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타 Oct 30. 2022

파트타임 보너스 맘

'남의 아들'을 무해한 백인 페미니스트로 키우기로 작정하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식당에서 피자를 먹고 있는데,

익숙한 아메리칸 락앤롤 음악이 연이어 나온다. 옆에 앉은 애인은 곡이름들을 척척 맞춘다. 나는 한없이 늘어나는 모짜렐라 치즈를 접시에 떨구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이런 게 바로 문화 특권이라는 거야. 네 아빠가 어릴 때 듣고 자란 음악이 아직도 어디서나 들리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류라는 게 얼마나 편하겠니? 자신에 대해서 힘들게 설명할 필요 없이 쉽게 이해받고 인정받는다고.”


나는 요점 정리하는 강사처럼 ‘문화 특권’이라는 단어에 특별히 힘 줘 말하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우리 셋 사이에서 익숙한 ‘사회학 5분 강의’.


애인과 나, 애인의 아들, 반려견 누룽지, 이렇게 넷은 몇 달 전 밀라노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이 조합으로는 처음 해보는 시도였는데, 땡볕에 뚜벅이 배낭여행 콘셉트로 다녔어도 아이는 참 좋아했다.

아마 나와 애인이 아이를 어엿한 어른으로 대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밀라노 같은 대도시에 처음 온 아이가 좀 긴장하더라도 대성당 투어에 혼자 보내고, 약속 장소는 달랑 구글맵 링크로 알렸다. 복잡한 길찾기나 코로나 테스트도 다 혼자 하도록 했다. 과보호 스타일인 아이 엄마라면 안 그랬을 테지만. 여행 기획자였던 내게 거듭 고맙다고 인사하고 엄마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관계가 지난 7년 동안 많이 성숙하고 편안해졌음을 실감했다.        


나는 ‘파트타임 보너스 맘’이다.

한 달에 사나흘 정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데, 법적인 양모가 아니고 나이 차이도 적게 나서 막내 이모나 옆집 누나나 젊은 선생님 같은, 하지만 따지고 보면 ‘덤으로 생긴 엄마’에 제일 가까운 역할이다. 아이는 나를 그냥 ‘하리타’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이 역할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나는 비혼에 비출산을 지향했기 때문에 새로 사귄 애인에 '자동으로 딸려온' 아이의 존재가 부당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아직까지 혈통에 집착하고, 정형화된 새엄마 이미지가 흔히 소비되는 한국 문화가 내 안에도 내면화되어 있어선지 괜히 쉬쉬하게 되었다.

괜찮은 ‘계모’ 롤모델도 주변에 없었다. 그래도 거부하거나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당시 10살이었던 아이는 긴 갈색 속눈썹을 들썩이며 선의와 호의로 나를 바라보던 아름다운 존재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를 좋아했다. ‘갑자기 만났는데 금방 잘 지내야 된다’는 스스로 부여한 숙제 때문에 조심스러웠을 뿐...


이것저것 오려 붙이고, 손에 흙을 묻히고, 강아지 털을 깎고 김밥을 말고 팝송을 합주하고,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같이 성장해 나갔다.


아무리 파트타임이어도 쌓이는 시간에 비례해 기억과 이야기는 늘어나고 점점 정이 들었다. 

주말을 좀 불건전하게 보내고 싶다거나 때이른 부모 노릇에 문득 억울함이 고개를 들 때는 그 얼마 안 되는 파트타임조차 땡땡이쳤기 때문에, 내가 ‘고생했다’고는 결코 할 수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건전한 주말 사례. 부모인 친구들을 불러모아 파자마 파티를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꼬꼬마였던 아들. (왼쪽에서 세 번째)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무리가 안 되는 선까지만 한다’는 기준도 세웠다. 그럼에도 타고난 오지랖은 어쩔 수 없어서, 나는 중하위권을 맴도는 아이의 수학 성적에 안달내거나 방학 시간 계획표를 들이 밀었고, 책을 도통 안 읽는 아이가 혹시 난독증이 아닌가 의심했다. 빨래 개는 법까지 가르치려 들었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화들짝 놀랐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스타일인가. 아, 이건 아닌데...’


본인부터가 싫은 일은 절대 하지 않고 아들에게도 인내나 복종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애인과 나 사이에 양육관 차이, 독일과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화 차이는 사사건건 나를 자극시켰다. 때론 치열하게 토론하고, 양보도 하고 실험도 하다가 작년 즈음, 이렇게 중간 결산을 내렸다.

그래, 이 아이는 내 인생에서 딸려온 짐이 아니라 굴러온 복이야...!

애 키우는데 불가피한 온갖 뒤치다꺼리와 소모적인 노동은 거의 안하면서 성장과정을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보고 거기에 감 놔라 배 놔라도 할 수 있다니, 이건 심지어 일종의 특권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나는 요즘 보너스 맘으로서 한층 더 임파워먼트 되고 있다. 3자 부모 구도에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이름하여 ‘무해한 백인 남성 페미니스트 만들기.’ 페미니즘과 퀴어 감수성, 문화 다양성과 반-인종차별주의가 필수 소양이 되어가는 유럽 사회에서 이런 가치들을 탐구하고 전파하는 나의 일에 아이는 갈수록 눈을 빛낸다.


        “그러니까 논 바이너리가 뭐야?” “엄마랑 <세상을 바꾼 변호인> 봤는데, 그거 페미니즘 영화야?”


아이는 내게 질문을 하고 토론을 걸어온다.

먼 곳에서 혼자 이사를 왔고 여러 가지 언어를 할 줄 아는 나, 이국적인 외모와 작은 체구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면 절대 참지 않는 내가 10대 후반이 된 아이에게는 엄청 쿨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이제야...

때때로 나는 ‘법적 권한도 없고 돈도 없고 독일어도 서툰데 내가 무슨 부모?’라며 의기소침하기도 했고, 보통의 가족 규범에서 벗어난 스스로가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나는 내내, 좀 다르고 이상한, 그래서 특별한 존재였던 것은 아닌지.


맞다. 여러모로 평범하지 않지만 이런 것도 부모-자식 관계 중에 하나지. 그리고 나처럼 겨우 이 정도의 밀도와 강도의 엄마 노릇도 이번 생엔 충분하다고 느끼는 여자도 있을 수 있다.

 
아이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본다. 체조하는 셀카가 나온다. 체조는 아이가 오롯이 혼자 계발해낸 특기이다. 혐오 발언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고, 야생동물와 퀴어를 응원하는 글들이 보인다. 이건 아무래도 내 영향을 받지 않았나, 뿌듯하다.


아이에게 대학을 간다면 멀리 딴 도시로 가라고 했다. 언젠가 아이가 혼자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눈물이 좀 날 것 같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멋진 노트를 한 권 사줄 것이다. “여행에선 아날로그가 제 맛이란다.”   

아이의 열네살 생일에는 초코렛 케잌을 만들어줬었다. 수염이 나기 시작했지만 중2병은 없었다! 다정하고 섬세하고 사려깊은 나의 보너스 아들.


이전 03화 이방인을 울린 숲 속의 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