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운전 경력 25년, 이주 여성들의 코치가 되다
지중해성 기후라 많이 습하지는 않은데, 그래선지 에어컨이 드물다. 설치되어 있어도 웬만하면 꺼져있거나 바람이 약하게 나온다. 섭씨 36도의 날씨에 그런 버스나 트램에 오르면...? 유리창을 통해 직사광선을 가득 받은 그 안은...? 더 이상의 묘사는 생략하자.
나의 대책은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바람을 일으키는 인간 선풍기가 될 수 있다. 민소매와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맨살에 바람이 닿으면 한여름에도 꽤 상쾌해진다. 머리칼이 휘날릴 땐 기분도 날아가 따릉따릉, 벨을 울리며 속력을 올려본다. 도로에 차들이 밀려있을 때도 자전거 운전자들은 전용도로를 타고 씽씽 가볍게 빠져나가지. 그래, 바로 이거야. 홀가분함. 상쾌함. 자유.
게다가 자전거는 독일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다. 일단 인구 밀도가 한국의 절반 수준이고 교통·환경 정책이 더 촘촘해서 자전거 타기 훨씬 편하다. 그만큼 문화도 발달해 있다. 개, 아이, 짐을 싣는 자전거용 트레일러(수레)가 다양하게 나와 있고, 누워서 타는 디자인처럼 필요와 취향에 맞춰 만든 단 하나뿐인 자전거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하는 데모도 있다. 만삭의 임산부들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통원시키는 엄마들도 자전거로 많이 다닌다. 나도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월셋집 계약, 은행 계좌 개설, 비자 신청 다음으로 한 것이 중고 자전거 구입이었다.
독일에서 자전거 생활자로 살아가며 내가 종종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 몇 해 전 여름, 여성 이주민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자원 활동을 했다. 바이크 브릿지(Bike Bridge)라는 시민단체의 프로젝트였는데, 자전거를 통해 사회를 움직이고 연결하고, 또 임파워링한다는 목표를 가진 곳이다.
교육 대상자는 ‘자전거를 배우고 싶은 성인 여성 이주민’으로 포괄적이었지만, 실제 참가자들은 거의 대부분 아랍권이나 아프리카 출신 여성들이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여성 이주민들의 출신지는 아시아나 유럽, 중남미 등 다양하지만, 유독 이 두 지역에서 온 이들이 자전거를 아직 못 탄다는 의미. 동아시아의 대도시에 나고 자란 나,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선물 받고 온 동네를 누비며 연습하던 평범한 나의 어린 시절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랍 문화권에서는 젠더 억압이 주된 요인인 것 같다. 심지어 요즘도 여자 아이들이 스포츠를 자유롭게 배우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란에서는 ‘음주가무’를 불경한 것으로 규정해 단속하는데, 특히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춤을 추면 경찰에 체포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의 자동차 운전이 불과 몇 년 전에야 합법화되었을 정도. 게다가 늘상 길게 늘어지는 부르카나 차도르 입고 외출한다면 자전거는 불편해서라도 안 타게 된다.
아프리카 지역에는 자전거 보급률 자체가 낮다. 땅은 넓은데 기반 시설이 촘촘하지 않아서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이 더 유용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 자전거라도 있으면 도움이 된다. 걷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고 짐도 운반할 수 있으니까. 저개발 국가인 레소토 왕국에 갔을 때 나도 직접 보았다. 가난한 시골 지역에는 전기 없는 흙집에 사는 시민들도 많은데 이들도 서구 회사들에게 ‘영업을 당해’ 휴대폰은 다들 하나씩 갖고 있었고, 충전을 하기 위해 매일 왕복 서너 시간씩 걸어 다녔다. 자전거는 ‘사치품’ 같았다.
바이크 브릿지가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것은 한 친구가 알려주었는데, 시야의 사각지대가 확 트이는 느낌이고 설레기도 했다. ‘자전거가 얼마나 편한데! 특히 독일에서는 꼭 탈 줄 알아야지. 내가 재밌게 잘 가르쳐줄 수 있을까?’ 그 때 한창 나는 ‘이주 여성’으로서 또 다른 ‘이주 여성’들을 만나는 일을 열성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주나 피란 경험이 있는 분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무료 요가 수업을 열고, 같이 차를 마시고 근교 여행도 갔다. 그럴 때 늘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도, 뚜벅이인 다른 여성들의 사정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운전면허시험장과 비슷한 시설인데 규모가 작았다. 몇 차례 이론 교육이 있었고, 실습은 그날 처음이라고 했다. 자전거를 한 대씩 지급받은 교육생 열댓 명에 옆에 붙어서 도와주는 자원 활동가들도 많이 와서 야외 교육장이 꽤 북적였다.
뭘 배우고 가르칠 때는 각자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게 마련.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무턱대고 안장에 올랐다. 배운 순서 같은 것은 다 제치고 무조건 출발! 그렇게 비틀비틀 가다 자전거가 기울어지면 비명을 꽥 질렀다. 반면에, 인사를 나눌 때부터 목소리가 작고 수줍어 보였던 한 사람은 안장에서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뒤에서 꼭 붙들겠다 약속하고 하나,둘,셋 끝에 확 밀어줬다.
대부분 독일 여성들인 다른 활동가들은 독일어 교통 용어를 쓰며 말로 가르쳐 주는 듯 했는데, 나는 그러지는 못했다. 나름 급박하고 정신없는 그 현장에서 제 3 외국어인 독일어는 속에서 뒤엉킬 뿐, 대신 몸을 써서 설명하고 안장에 올라 시범을 보였다. 급할 땐 한국어도 막 튀어나오고.
“아니 왼쪽으로!” “브레이크, 브레이크~!!!”
30~40분쯤 지나자 교육생들은 다들 얼추 타긴 탈 수 있게 되었다. 억지로 끌려온 듯 내내 무표정이던 한 중년 여자 분도 그 때쯤엔 환히 웃고 다녀서 못 알아볼 뻔! 즐거워진 것이다. 다들 즐거워보였다. 넘어질 듯 비명을 지르거나 넘어져서 탄식을 할 때도 거기에 웃음기가 배어 있었고, 움직임은 아이들처럼 부드럽고 활력 있어졌다. 엔돌핀이 든 알약이 출시된다면 바로 이 장면을 광고로 쓰면 딱이었다.
7년 전 우간다에서 왔다는 30대 여성 미리암은 내게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출발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앞으로 쫙- 나가면서 출발하는 거요.”
질문을 듣고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자전거 타기는 내게 오래된 ‘근육 기억’이어서 생각이 필요 없으니까.
“아...잠깐만요. 제가 한번 타볼게요.”
그녀에게서 자전거를 받아 출발시키면서야 나는 비로소 의식했다. 출발이란 걸 어떻게 하는지. 나는 한 쪽 발은 페달에 올리고 다른 쪽 발로는 지면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온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이며 자전거에 동력을 실었다. 순간적인 힘,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오로지 자기 몸만으로 바퀴 두 개 달린 장치를 가동시키며 어떠한 오염도 쓰레기도 만들지 않는 행위. 자전거 타기는 이렇게 멋지고 떳떳한 일인데 이제까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네.
“자, 지금 봤죠? 한 쪽 발로 이렇게, 이렇게 바닥을 밀어요. 그러면서 앞으로-”
미리암은 내가 보인 시범의 포인트를 캐치했을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다시 자전거 핸들을 이어받았다. 하나,둘,셋! 자전거가 탄력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미리암의 등 뒤에서 나의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쩨아 굿! 굿 게샤프트! (Sehr gut! Gut geschaft! 아주 잘했어요! 잘 해냈어요!) 유후~~!!!”
독일로 이주해 자전거를 배우기로 마음먹기까지 비록 7년이 걸렸지만, 이후로 미리암의 일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상상해본다. 배차 간격이 큰 버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돌아다니고, 붐비는 트램에 유모차를 싣느라 애먹는 대신 자전거 트레일러에 애들을 태우고 마트에 간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며 생활근육이 붙어 더 강해진다. 늦게 배운 자전거에 맛들여 주말마다 라인강 자전거 트레킹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