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
나는 매일 달린다. 1km~3km 사이를 매일 뛴다. 그래봤자 하루 10~20분 정도 뛰는 것이다.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동기부여를 더 하고 싶기도 해서 제2회 불패마라톤에 참가신청을 했다. 가볍게 10km로 등록.
여의도에서 진행하는 대회라 가깝고 마라톤이 끝나고 더현대서울, IFC몰도 근처에 있으니 놀러 가기도 좋아서 겸사겸사 신청했다.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예전 체력을 되찾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무릎 부상으로 한동안 달리지 못해서 불안함이 컸다. 그래서 다시 뛰기 시작하고 나서 체력이 얼마나 붙었는지 궁금했다.
보통 운동 안 할 때 뛰면 1시간 초반대 기록이 나오곤 했다. 1시간 2분, 1시간 10분 레이스를 뛰었었다. 이번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1시간 10분 컷이 나오게 뛰려고 했다. 1km 7분 페이스가 목표였다.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기도 하고 부담 없이 뛰고 싶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 속에서 기운이 났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도 10km 레이스에 엄마와 함께 뛰러 나온 것을 봤다. 유모차를 끌고 10km를 완주하는 사람들도 둘이나 봤다. 나도 아마 제일 어린아이를 데리고 마라톤 대회에 나온 참가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난 더 늦은 기록 사람들과 뛰고 싶었는데 이게 제일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제일 늦게 출발하는 그룹까지 와서 준비를 했다.
처음 코스는 너무 좁았고, 사람들이 너무 천천히 뛰길래 조금 앞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좀 빠르게 사람들을 제쳤다. 그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5km 정도 지날 때까지 30분 안쪽 페이스가 나왔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한 게 괜찮은 기록이 나올 것 같으니까 욕심이 났다. 그러지 않기로 해놓고선....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런데 결국 6km 지점 정도 오자 예전에 부상당했던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아.. 부상 재발을 막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또 같은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해서 짜증이 났다. 그런데,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can't hurt me라는 네이비 실 대원 이야기였다. 네이비실 지옥주를 3번이나 버텨내고, 정강이뼈가 부러진 상태로 남은 기간을 이겨낸 그의 자서전(?)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많이 받았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보지 않는다는 말을 봤고,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기왕 6km까지 왔는데 남은 4km 한 번 최선을 다해 뛰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러자 힘이 났다. 마지막 구간까지 오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왼쪽 무릎이 좀 신경 쓰이긴 했으나, 관리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결국 57분대로 완주를 했다. 디스크판정을 받고 왼쪽 무릎이 아픈 상태에서 첫 완주 기록이었다. 다음에는 기록보다는 아프지 않고 뛰는데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이러다 또 사람들과 있으면 에너지를 얻어 또 막 달리는 건 아닌지).
다음 달엔 더서울레이스 21k 대회에 하프코스로 나간다. 친동생과 함께 나가고, 동생이 7분~7분 30초 대로 뛰자고 했으니 이번엔 정말 천천히 이야기 나눌 수준으로 뛰려고 한다. 그전까지 왼쪽 무릎 불편함을 최대한 없애고 디스크 관리도 잘하고 나갈 생각이다.
한 가지 고무적이었던 건 그래도 매일 1~3km를 뛰고 출근했던 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거였다. 아침에 뛸 때도 엄청 천천히 뛰긴 하는데 그렇게 천천히 뛰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이번 하프를 완주하고 나서 컨디션을 체크해 본 후, 올해 풀코스 나아가서 울트라까지도 도전해보려고 한다. 올해 안에 힘들다면 내년까지도 염두해서 훈련을 해야겠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각자의 목표, 스토리, 생각들을 가지고 뛴다. 아이와 추억을 만들고 싶은 부모, 부모님을 따라서 나온 뭘 모르는 아이들, 우리 애처럼 그냥 아빠 따라 일찍 일어나 끌려온 아기.
나는 오늘 달리기가 끝나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물려줄 재산이 있는 아빠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지위에 있는 아빠도 아니다. 물려줄 거라곤 경험, 추억뿐이다. 그래도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함께 한계에 도전해서 이겨내는 경험을 쌓고 싶다. 함께 마라톤에 나가고, 국토대장정을 하고, 제주도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설악산을 타고, 울트라 마라톤도 완주하고, 나아가 둘의 체력이 된다면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 등도 나가고 싶다. 이런 아들과의 추억을 많이 쌓고 싶다'
우리 시대 부모님들은 거의 그랬을 것이다. 우리 아빠는 가르침을 거의 말로 하셨다. 항상 내 마음속엔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안 하면서 왜 나한테만 시키지? 이런 불만. 나는 내 아들에게 몸으로 보여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새벽에 일어나서 달리고 맨몸 운동하는 아빠. 매일 30분 이상 책을 읽고 출근하는 아빠. 매일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아빠. 자기 전에 일기를 쓰는 아빠. 일주일에 두 편 이상 글을 쓰고 온라인에 올리는 아빠. 같이 돈을 벌고 같이 뛰고 같이 도전하는 아빠.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