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주변분들의 말류에 불구하시고, 어린 나를 친구분의 손에 맞기시고, 송광사 여름 수련회를 참여하셨다. 연기법이 기구하고, 인연의 끈은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하지만, 그 당시의 서운한 마음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108 번뇌에 늪에서 고통스러워하시는 스님들이 못내 가슴 한켠에 묻희지 않으셨나 보시다. 자상하시던 부정은 채찍의 단호하신 가르침을 택하셨고, 늦잠은 엄동설한 개울에 던져지는 화를 부르기도 하였다. 기차 칸과 버스 속에서도 압록강을 건너시는 독립투사와 같으시게 잠을 자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며, 엄포를 놓으셨다. '월암'인 법명에서 국가의 사명과 소신으로 미래의 험난함을 암시하시며, 명심하길 이르시고자 하신 부정이시기에 추억이 달을 가린다.
낯선 도시로 이주는 적응하지 못 한 아노미의 맹모삼천지교였다. 훌륭한 자식과 후손의 번영을 꿰하시려는 단호하신 결정이셨다. 동생의 입지와 장남으로서의 올곧음은 '쌍암'이란 법명과 함께 부친으로서 애매하신 권한을 지니신 자리였을 것이다.
스님들의 동반한 호흡과 모든 부와 명예를 내던지고 택한 삶은 정유재란 때, 오장치를 차시고 족보만을 드시고서 가문과 국가를 일으키려는 결단과 평행선이었을 것이다. 허깨비인 절간은 맥수지탄이었고, 공양 시에 조차 식탁을 마다하시며, 수치심 가득한 토방가에서 구걸하시듯 소탈하신 행적이셨다.
나이에 비하여, 여린 신체에도 곧잘 따라다니던 학창 시절은 함께 하신 스님들의 덕이란 걸 깨닫는다. 친구이셨고, 선생님이셨으며, 수더분하신 주변분들이셨다. 흰 코끼리의 한은 고비 산맥을 넘으셨고, 울분의 통한을 솔잎 씹는 보릿고개 심정으로 삼키셨다. 혼자 만의 욕심과 부픈 심정은 생일날 콩 타작을 연상시키는 매타작으로 이어졌으며, 새해 용돈을 깨는 경솔함은 지혜로운 삶을 꿰하라는 회초리의 가필을 불렀다.
유쾌한 친구들도 때론 단호한 손지검이 얹어졌으며, 아둔한 몸과 마음은 무던한 심정 속 숨어 우는 작심과 각오의 매 순간이었다. 아픔은 자상하신 부모의 모습을 불러 들렸고, 가끔 꾀병도 부려보게 하는, 당근을 바라는 칭얼거림이었다.
시골에서의 자부심은 정저지와의 충격으로 시절의 모순에 당황하기 일수였다.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 통한으로 울고 넘는 박달재는 왜곡과 날조로 신음하였고, 모든 역사적 사실은 거짓으로 넘실대었다. 아리랑의 서편제는 그렇게 서쪽으로 붉은 저녁놀을 풀어놓고, 기울어 갔다. 시골에서의 그리운 정서는 아픔을 이기는 근원이었지만, 다시금 꾐으로 다가오며 '컨트리 로드'의 팝송을 강요한다.
선생님도 떠나시고, 친구도 잊힌 가운데, 가족마저 소원해질 때, 노고지리가 시절의 괴상망측함을 일깨운다. 부끄러운 행적과 현실과의 타협은 지난날의 단호하신 초심을 잃은 배신의 삶이었고, 누구나 그에 대하여 통감하며 반성하여할 시기다. 서울대에서 선정한 올해의 한자는 부끄러울 치고, 산사의 허전함과 대체할 수 없는 그리움의 향수는 다시 마주하는 맥수지탄에 더한 풍수지탄이다.
치암 한 구석에서 돌을 쪼는 까치는 시에서 일컬어지는 성북동 비둘기를 연상케 하고, 물색없는 산사의 음반 소리는 지난날의 거칠면서도 우렁찬 산통과 진통의 다부짐이 그립게 한다. 진산이란 고향은 모난 놈을 수굿하게 맞아주나, 옛 같지 않은 정서에 발길을 돌리지만, 조상의 혼백께서 발목을 놓지 않으신다. 허름하고 남루해진, 조상의 묘소에 흙 한 줌 더하여, 지키지 못 함은 시절의 혹독함을 일깨운다.
월암에서, 쌍암으로, 다시 치암으로 이르신 아버지의 길은 고향길 대원사의 유래로 망측한 어머니의 족보를 제대로 보전하라고 당부한다. 시절의 의구심이 올바른 길로 인도하길 지난날의 추억과 아픔을 들춰낸다. 우여곡절의 아버지께서는 끝내 고향에 잠드시고 마셨다. 현재를 반어와 역설의 시절로 바보 티브이와 언론인의 양심에 실어 보내는 댓잎배가 동편제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