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록 Feb 06. 2019

'자존감'이라는 이름의 인덱스

“자존감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오”

신화란 그렇다. 그것은 어떤 계급(대부분은 지배 계급)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현상이나 이념을 지극히 당연한 것,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사회적 차원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그 신화들에 맞춰 노력하는 것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노력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맞기도 힘들지만, 그 틀 안에 들어맞는다고 해서 인생에 딱히 더 도움이 되지도, 더 행복해지지도 않는 틀. 그럼에도 우리는 그 틀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다고 가끔은 자책을 한다. 길게 썼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일지 모르겠다. 바로 자존감을 잃어가면서까지 직장 생활을 하지는 말자는 것.

인생의 황혼기에 심장병으로 인해 실업급여를 수령해야만 생활이 가능해진 주인공. 그가 영국의 관료적인 복지 행정 제도와 싸우는 내용을 다룬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사람이 자존감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오.
When you lose your self-respect, you are done for it.
©애끼


영화 자막에는 ‘자존심’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self-respect는 ‘자존감’에 더 가깝다. 그렇다, 자존감. 자존감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월급 따위 성과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는, 회사의 성과보다는 내 인생의 기회비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혼자 아무리 해봤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는, 노력의 무용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잘못을 나 개인의 잘못인 양 생각하며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노력도 가려 가면서 하라는 얘기는, 잘못된 구조에서 노력해봤자 결국 자기만 지치니 힘을 아끼라는 거다. 엄청난 도덕적 이유가 있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상사의 무의미하거나 부당한 지시 등 납득할 수 없는 것까지 수행하다 보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회사 일 따위 별거 아니라고 하는 얘기는, 당신이라는 인간 안에는 회사 일 이외에 또 다른 중요한 것도 많으니 돌아보라는 뜻이다.


자존감이라는 인덱스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정자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노동력도 감가상각이 된다. 재미있는 건 대부분의 고정자산은 최신형이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지만, 인간은 최신형일수록 가치가 낮고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정한 유통기한이 지나면 뒷방 늙은이 신세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감가상각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노동력은 고부가가치를 더하는 지식이나 기술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 근간을 보자면 결국 체력과 멘털(정신력)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가 들면 체력은 떨어지고, 사회생활에 치이다 보면 멘털도 닳는다. 그러니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의 입장에서 마냥 수익률이 좋다고 볼 수만은 없다.

개인 시간을 내기도 힘든 블랙 기업이나 말도 안 되는 업무 지시를 내리는 직장 상사 밑에서 시달리고 있다면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할 테다. 오래오래 써야 할 고정자산을 갉아먹으며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장 매출은 날지 몰라도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마이너스인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을 계량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하나의 인덱스를 정해야 한다면, 그게 바로 자신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자존감’이 아닐까.


자존감을 좀먹는 순간들

운동이 체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수단이라면, 자존감은 멘털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역할을 한다. 신체 장기로 따지면 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독소를 해독하고 면역력을 키워준다. 바로 회사 혹은 사회가 시전하는 신화와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말이다.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자존감 상실’은 그래서 이직이나 퇴사를 위한 적절한 지표가 된다. 사람은 일이 힘들다고 해서,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해서, 연봉이 적다고 해서 쉽게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 끝에는 항상 자존감 문제가 있다.일은 힘든데 의미를 찾을 수 없거나,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다 보니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상사에게 야단을 맞거나,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한 회사의 평가가 낮은 연봉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나. 자존감의 한 축인 자기 효능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다.

그런 결정을 할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항상 그런 순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처음 퇴사할 때는 8년간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존감이 낮아졌다.두 번째 퇴사할 때는 열심히 해온 일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퇴사할 때는 처음 입사할 때 맡기로 한 직무와 너무 동떨어진 일을 하며 허송세월하는 느낌이 들었다. 블랙 기업을 탈출하기 위해 한 네 번째 퇴사는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규모도 작다 보니 더 응축적인 가스라이팅을 견디기 힘들었다.

대부분 직장인이 그럴 것이다.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무언가 비상식적인 업무 지시를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때, 혹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느껴질 때 등등. 그런 순간에 우리는 자존감을 잃게 되고, 알게 모르게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 순간에 마음속에 레드 라이트 하나 정도는 켜볼 필요가 있다.


포기해도 괜찮다

언젠가 하와이까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러 간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주를 못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달린다는 행동이, 걷는다는 행동이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어느 순간 달리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데 그 진정 어린 응원과 격려를 받기가 민망해서라도 계속 달려야 할 거 같던 기분. 어쩌면 그 기분이 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애끼

돌아서 걸어오는데 그제야 사람들이 보였다..애초에 달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는 듯 가방 한가득 짊어지고서 소풍 나온 것처럼 중간중간 간식을 꺼내 나눠 먹으며 걷는 이들, 요정 코스프레를 한 할머니들, 무거운 소방 장구를 다 갖추고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소방관들, 아예 드레스와 턱시도에 하이힐과 정장 슈즈까지 차려입고 탱고 스텝으로 그 먼 길을 한 걸음씩 차근차근 걷는 커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또 보였다.달리느라 보지 못한 길가의 낯선 풍경이, 해변으로 향하는 샛길이, 그 길의 작은 새와 멀리 드리워진 무지개까지…. 그 풍경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레이스를 포기하고 돌아가는데, 오히려 발걸음이 더 가벼웠다. 딱히 실망하지도 않았다. 달리느라 지나쳤던 사람들과 풍경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걷노라니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오히려 더 즐거웠다.


인생은 어쩌면 그런 순간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 때문에 계속하게 된다든가, 관성 때문에 하게 되는 일들. 어떤 일이 어느 순간 더 이상 즐겁지 않은 경우는 이미 스스로 무리해서 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 무리함을 넘어서고,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 원하던 바를 이루어야만 성취감을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참 열심히도 살아간다. 배경음악으로 하루 종일 영화〈록키〉OST를 틀어놓아야 할 것 같은 인생들이다.

그렇게 ‘성과주의’를 체내화해서 살아가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는 건 왠지 루저가 되는 것 같으니까, 당장 이달 카드값이 불안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아등바등 또 출근을 한다. ‘포기’라는 단어를 죄악시하고, ‘퇴사’라는 단어를 터부시한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것도 아닌데 그만두면 왠지 못 버텨서 그러는 것처럼 보일까 봐 신경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힘들면 조금 쉬어도 괜찮다. 즐겁지 않으면 그만두어도 괜찮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고 느껴지면 그만두어도 괜찮다. 실패하더라도, 포기하더라도 더 즐거운 순간도 있다. 빨리 포기하는 만큼 매몰 비용을 줄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을 택해 기회비용을 더 잘 쓸 수도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 꼭 완주해야 한다거나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스스로를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때로는 그렇게 사표를 던져도 괜찮다. 일이 너무 힘드니까, 야근이 너무 많아서 내 인생이 사라진 것 같으니까, 상사가 너무 이상하니까. 그 모든 것은 회사를 그만두기에 충분한 이유다. 그런 순간의 퇴사나 포기는 어쩌면 우리의 무리함에 대한 브레이크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순간이라면, 브레이크를 밟아 줄 필요도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