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업다

by 하루달


*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폭염이 며칠 가는 한여름에도 등이 시려 견딜 수가 없던 나였는데 이제 등이 시리지 않다. 여전히 조끼들을 입고 겨울을 나고 있지만 지금 등이 시리지 않다. 겨우 4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변화가 찾아오다니 내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애도의 시간을 잘 견디고 있나 싶기도 하고 엄마가 잘 떠나고 있는 중인가 안심이 되기도 하다. 여전히 아픔은 남았지만 작은 변화가 온 듯하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All is true> 영화를 보았다.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죽은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말한다. 이제 나의 이야기는 완성이 되었다고. 이제 쉴 수가 있다며 떠난다. 아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진실을 알게 된 아버지, 진실을 숨기고 산 자들을 위한 선택을 한 어머니, 진실을 가슴에 안고 늘 죄책감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누나들 모두 각자의 이야기 속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다. 각자의 몫을 살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가족이 있어 우리는 살 수 있나 보다.


나는 엄마를 4년 동안 업고 있었나 보다. 박서영의 <업어준다는 것> 시처럼 나는 엄마의 숨결을 듣고 엄마의 울음을 나의 몸으로 받아들이며 업고 지냈나 보다. 처음으로 입장이 바뀌어 엄마를 업어준 나는 엄마의 진심을 처음으로 듣고 뒤돌아 엄마와 눈을 맞추고 나와 함께한 엄마의 인생을 정리해주고 있었나 보다. 아니 엄마와 함께 한 나의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나 보다. 그 과정은 숨 쉬기 힘든 고통과 아쉬움 가득한 비통의 시간이었다. 수많은 인연들로 엮인 엄마의 보따리는 무겁고 애잔했다. 그래서 시렸나 보다. 지금 엄마의 보따리가 조금 가벼워진 이유는 나의 슬픔을 지켜봐 준 수많은 고마운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은혜, 세상의 모든 음악, 글, 자연, 동물들 덕분이었다. 이것이 더 이상 등이 시리지 않은 이유인가 보다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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