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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Nov 04. 2024

<입동>을 읽고

꽃매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고 했다. 아내가 뭔가 먼저 하자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난달 어머니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두 사람 다 경황이 없을 테니 당분간 살림을 맡아주겠다는 명분이었다.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냉동실을 정리했다. 아내는 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수신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아내는 좀 아팠다. 한밤중 부엌에서 펑 소리가 났다. 복분자액이 터지고 벽지가 더러워졌다.


 작년 봄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집 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 산 집이지만 앞으로 영우가 어린이집을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기뻤다. 아내는 집 꾸미는 데 반년 이상 공을 들였다. 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아내는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 했다. 


 영우는 빨리 자랐다.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영우의 얼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숨졌다. 아내는 화장터에서 영우에게 '잘 가'않고 '자'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영업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운전사와 보육교사를 해고하고 무얼 더 바라느냐 묻는 태도를 취했다. 내가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근거로 동네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돌았다.


 아내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길 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무슨 반찬을 사나 훔쳐본다고 했다. 이사를 가고 싶지만 집값이 떨어져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소포로 복분자를 보냈다. 잘못 배달된 것이다. 나쁜 평판을 바꾸려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감할 수 있느냐며 화를 냈다. 대형마트에 가서 벽지를 사고 왔다. 아내는 계속 도배 일을 미뤘다. 그런데 오늘 자정 넘어 도배를 하자고 한 것이다. 아내는 도배가 끝나면 다음 주에 보험금을 헐자고 말했다. 오늘은 아내가 일어나는 날이구나 생각을 한다. 아내는 영우가 벽에 자신의 성을 쓴 글자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벽지의 흰 꽃들이 아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벽지를 들고 있는 나도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세치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데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보면 사람에 대한 정이 떨어진다. 아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것이냐고 모 국회의원은 말했다. 어느 부모가 아이를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 규명, 진정한 사과와 위로가 아닌가. 김애란 작가는 꽃매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진정한 위로가 아니면 모두 꽃으로 던지는 매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고인에게 잘 가라는 의미로 꽃을 바친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고귀한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꽃은 축복의 의미도 있지만 이별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으로 공부를 하게 된 스토리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보험금도 자식은 가슴이 아프다.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도 한참 후에 깨닫는다. 하물며 부모가 자식의 보험금을 쓰는 일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보험금을 쓰든 말든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죽음 앞에 보험금이라는 것이 왜 더 이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돈으로 주는 사과는 가해자가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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