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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에스토니아의 새해맞이

불꽃놀이와 노마스크

by 알바트로스

지금까지 이런 새해맞이는 없었다. 매년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새해맞이 명소 뉴욕 타임스퀘어는 텅 비어버렸다. 해마다 광화문에서 열리던 보신각 타종행사가 이제는 온라인에서만 개최된다고 한다. 이게 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 세계를 초토화시켜버린 코로나 팬더믹 때문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시기에 여자 친구와 나는 북유럽의 낯선 나라 에스토니아에서 2020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2021년을 맞이했다. 2020년 한 해를 맞이하는 에스토니아의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놀라움으로 가득했던 현지의 새해맞이 풍경을 함께해보자.


1. 락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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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황이 심각한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확진자 수도 늘어만 가고 있었다. 이에 에스토니아 정부는 2020년 12월 28일부터 2021년 1월 17일까지 3주간 도시 전체를 락다운(봉쇄조치) 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락다운으로 식당, 관광지, 극장, 콘서트 홀을 비롯한 모든 다중이용 시설이 문을 닫았다. 불행중 다행으로 식료품점은 문을 열었지만 레스토랑에서는 포장만 가능했고 관광지는 문을 닫았다. 당연히 공공시설 이용 시에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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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새해맞이 준비로 떠들썩해야 할 탈린 크리스마스 마켓도 올해는 일찍이 문을 닫았다. 탈린 올드타운의 분위기 좋은 맛집과 카페도 모두 문을 닫았다. 예쁘게만 보이던 올드타운의 중세풍 건물들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거리는 드라큘라나 좀비라도 나올 것처럼 썰렁했다. 이렇게 우울하게 2020년이 가버리는 걸까?


2. 불꽃놀이


2020년 12월 31일 새벽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 하루 종일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던 우리는 새해 기분도 내볼 겸 탈린 올드타운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인가 대포소리 비슷한 굉음이 연달아서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가 보았다. 탈린 정부청사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폭죽들이 터지며 아름답게 탈린 시내를 수놓고 있었다. 계단에 올라보니 탈린 시내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듯한 기분에 우리는 한껏 텐션이 올라갔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강도 높은 락다운 조치를 감행했기에 불꽃놀이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탈린 사람들은 절대로 2020년을 그냥 보내주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이곳 사람들은 마치 코로나를 없애버릴 기세로 더욱 강렬하게 새해를 맞이하려고 하고 있었다.


3. 노 마스크와 수많은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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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보다 우리를 더 경악하게 만든 것은 광장에 모여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인파였다. 인구 140만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사람들을 모두 한데 모아놓은 듯한 광경에 우리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샴페인을 터뜨리고 술에 취해 저마다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인만큼 에스토니아어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영어와 러시아어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마스크를 안 끼고 있다. 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현지 경찰들도 새노마스크를 어느 정도 묵인해주는 분위기다. 코로나에 극도로 예민한 한국인들이 봤다면 식겁할만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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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축제와 코로나 확산 방지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어찌 되었든 우리는 마스크를 끼고 인파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불꽃놀이를 즐겼다. 코로나보다는 지금 이 순간 이 낯선 공간에서 만나게 된 뜻밖의 선물을 만끽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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