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인디아

자유를 향해서

by 알바트로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안녕하세요, OO씨 휴대폰 맞나요?”

그 날 오후 나는 언제나처럼 숙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새벽 월드컵 경기를 모두 챙겨보고 술에 취해 잠이들어 다음날 오후가 되도록 침대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네, 그런데요?”


나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귀찮다는듯이 대답했다. 벌써 이러고 지낸지도 몇달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레쥬메와 자기소개서를 고쳐쓰고 면접을 보러다니느라 몸과 마음 모두 녹초가 되었다. 면접을 봤던 몇군데 회사에서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제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매일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셔댔다. 더이상 마음고생 하기 싫었다.


“면접 때 뵈었던oo사 인사담당 oo 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신중하게 검토해본 결과 oo씨와 함께 일하는 방향으로 결정 했습니다.”


“지… 진짜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지원자가 많이 몰려서 선고 프로세스가 길어졌어요. 연봉과 첫 출근일은 …(중략) 오퍼를 수락하시려면 다음주 까지 보내드린 이메일로 답변을 주세요. 그럼 내년 4월 부터는 카스미가세키 오피스에서 뵙겠습니다!”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극장골도 이런 극장골이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어제 본 경기의 골 세레머니 장면을 떠올리며 펄쩍 뛰어올라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고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한참을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 져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갔다. 수십번의 서류전형, 적성검사, 면접을 끝으로 드디어 일하고 싶었던 업계와 회사에서 최종 오퍼를 받은 것이다.


언젠가 이 모든것이 끝나면 어디론가 떠나기로 결심했다. 행선지도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냥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복장도 말투도 행동도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취업에 성공 했지만 아직 나는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었다. 돈을 아끼려고 저가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뒤지다가 ‘티루치팔리’라는 낯선 도시로 향하는 항공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항공편의 반값 이하였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인도의 작은 도시였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나는 망설일 것 없이 티루치라팔리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일단 인도에 입국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도착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기차를 타고 델리, 뭄바이, 아그라 등 유명 관광지가 몰려있는 북부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 해 겨울, 나의 무계획 저예산 인도 배낭여행이 시작 되었다.



웰컴투 인디아


이름도 생소한 '티루치라팔리'는 인도 남부의 작은 도시였다. 구글맵을 통해 본 공항 전경은 공항이라기 보다는 버스 터미널에 가까웠다. 거리뷰에는 소와 개가 웃통을 벗은 사람들과 함께 흙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무지 어디를 가서 어떤 것을 구경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락포트에서 바라본 '티루치라팔리' 전경


관광지는 검색해 보지도 않았다 않았다. 호텔에서 하루만 머물고 날이 밝으면 기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떠날 생각을 굳혔기 때문이다.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를 경유를 했다. 말레이시아 까지 가는 비행기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타고 있었지만, 쿠알라룸프에서 인도 티루치라팔리로 가는 비행기안에는 온통 인도사람 뿐이었다.


같이 비행기에 탄 인도 사람들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특이한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왜 저렇게 고개를 흔들어대는 걸까?' '내가 그렇게 신기하게 생겼나…?'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인도사람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습관적으로 고개를 흔드는 것이 마치 자동차에 붙여놓는 스프링 인형같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우리와는 반대로 인도에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은 '예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도로 가는 동안 번개가 쉴 새 없이 내리쳤고 비행기가 요동쳤다. 창밖에는 세상의 종말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얼마전 크게 보도되었던 말레이시아 비행기 실종 사건이 생각났다. 결국 비행기를 못 찾았다던데 이대로 죽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취준생 신분을 벗어나자마자 비행기 사고로 죽는 기분은 어떤것일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김종욱 찾기에서 비행기가 착륙하고 공유가 "우리 지금 인도에 있어요"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은 허술한 비행기에 사고로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초라한 모습이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항은 사진으로 봤던 것 보다 훨씬 낙후 되어 있었다. 입국 심사대에서 미리 발급받은 여행비자를 보여줬다. “웰컴 투 인디아”라는 말과 함께 이민국 직원이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도장을 찍어줬다. 짐을 찾고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날씨는 12월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후덥지근 했다. 예상대로였다.


공항 밖에 나오니 릭샤꾼들이 공항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잔뜩 경계했다. 여행카페에서 인도에서는 바가지 씌우는 사람들과 사기꾼을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용히 사람들 틈을 빠져 나오다 구석에 있던 릭샤에 올라타서 호텔로 향했다.


릭샤가 달리기 시작하자 시원한 밤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왔다. 드디어 인도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흙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릭샤 옆으로 인도의 초라한 길거리가 펼쳐졌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인데도 인도의 길거리에는 사진에서 봤던 것 처럼 정말로 사람, 소, 개, 닭이 뒤엉켜서 널부러져있었다. 쓰레기를 태우는 매캐한 냄새도 났다. 길거리에는 소똥과 개똥이 가득했다.


난생 처음보는 쇼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 곳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것 같다. 남들이 동물들과 같이 길거리에서 잠을 자든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물들이 길거리에서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조금은 낯설은 그들만의 자연친화적인 자유로움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짜파티, 인도에서 먹은 첫끼


깜깜한 티루치라팔리는 예상대로 정말로 볼 것이 없어 보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렇게 혼자만의 해방감을 만끽하며 호텔까지 질주하는 릭샤에 몸을 맡기고 그 순간을 즐겼다. 호텔에 도착하니 참아왔던 배고픔이 몰려왔다. 나는 호텔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뭐든 좋으니 먹을 것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호텔에서 제공해준 쨔파티로 허기를 달래고 다음날 델리나 뭄바이로 향하는 기차편을 알아보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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