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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블라스 언덕 - 에어아시아와 KL

혜미


‘What? Are you serious? 

뭐라구요? 농담하는 거 아니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느닷없는 통보에 혜미는 어이가 없었다. 


‘I am sorry. I don’t want to do this, but it is a management decision. There is nothing I can do about it. 

나도 미안해요. 하지만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하림은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내렸다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닌게 아니라 하림은 그동안 한국인 승무원들을 잘 대해줬다. 


한류가 동남아시아를 점령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한국인 프리미엄을 느끼고 있었지만 에어 아시아 인사팀에서 외국인 승무원을 담당하는 하림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사람이 착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며 사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출신 크루들을 살뜰히 챙기는 것도 하림이었다. 한국인 승무원들이 돈을 벌 목적보다는 젊어서 이국생활을,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승무원 생활을 꿈꾸며 이곳에 왔다면 이들 국가에서 온 크루 중 상당수는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하며 빠듯하게 살고 있었다.


‘무급휴직이라니 말이 되냐.’


옆에 서있던 리아 언니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 한국말이지만 말투만 들어도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림은 못들은 척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말레이시아에 온 지 6개월이 채 안되는 리아 언니로서는 특히 화를 낼 만 했다. 해외취업이라는 큰 꿈을 이루고 당당하게 쿠알라룸푸르에 입성한 이후로 부지런히 말레이시아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Global Flight Crew’라는 닭살 돋는 대문명을 단 인스타에 업로드하는 것을 큰 낙으로 삼아온 리아였다. 쿠알라룸푸르 생활만 4년 차에 접어들며 이제 더 이상 신기한 것도 새로운 것도 점점 줄어든 혜미지만 리아 언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여기 온 첫 해에 이런 일을 당했으면 진짜 디렉터 찾아가서 따졌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내심 이제 한국에 가서 좀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퇴직이 아니라 휴직이어서 다행이다. 나중에 정말로 돌아올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였다면 나이가 많다고 해도 1년차 햇병아리 승무원이 4년차 선배에게 말을 놓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원한 국적항공사마다 고배를 마시고는 결국 먼 이국 땅에서 꿈을 이루었다고 자위하는 혜미에게 이미 아시아나에서 6년간 승무원 생활을 하고 말레이시아로 넘어온 리아 언니는 마냥 후배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술만 마시면 본인은 원래 한국에서 취업할 생각이 없었노라고 영어를 섞어가며 말하는 리아 언니를 보며 주변의 한국인 승무원들은 다 사연이 있으니 멀쩡히 사무장까지 달고 나서 국적사를 그만두고 말레이시아까지 온 것 아니겠냐며 수근거렸다. 


하지만 혜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아시아나에 다니는 혜미의 친구 지원이를 통해 인스타로 미리 인사까지 하고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사이였다. 그렇게 해서 리아 언니는 자연스레 혜미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에어 아시아는 외국인 승무원들에게 쿠알라룸푸르 근교에 있는 아파트를 제공했다. 쿠알라룸푸르 다운타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푸총 Puchong에 위치한 혜미의 아파트에는 한국인 크루 세 명이 함께 살았다. 3년 전에 이곳에 온 혜미와 재작년에 합류한 채경, 그리고 새로 온 리아 언니였다. 


이제는 쿠알라룸푸르도 슬슬 지겨워지며 주변 도시들 비행가는 낙으로 사는 혜미였지만 이 아파트 만큼은 각별하게 정이 갔다. 


3년 전 인사팀 직원을 따라 처음 이곳에 온 혜미는 단지 안에 들어오자마자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수영장이 딸린 방 3개짜리 아파트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외국인 승무원들에게 주택을 제공한다길래 막연히 원룸 같은 오피스텔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축구장은 과장이고 적어도 농구장 크기는 되는 널찍한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 스타일의 아파트에 입주한 것이다. 집을 보러 간 날에도 아파트 입주민들은 삼삼오오 비치 체어에 누워 선탠을 하거나 그 옆에 있는 그릴에서 고기와 소세지를 구우며 한낮부터 맥주를 곁들인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 몇달간 혜미는 틈만 나면 수영장에 누워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매번 같은 수영복을 올릴 수는 없어 사진을 찍기 위해 산 비키니만 해도 여러 벌이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파빌리온 쇼핑몰이나 레귤러들끼리는 눈인사를 나누는 클럽에는 금방 질려버렸지만 이 집에 대한 애정 만은 식지 않았다. 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수영장에 누워 있는 시간을 혜미는 가장 좋아했다. 


어느 때인가 비행에서 돌아와보니 수영장의 플라스틱 비치 체어가 자연스런 갈색컬러의 라탄 체어로 바뀌어져 있었다. 가뜩이나 싼티 나는 하얀색 플라스틱 체어가 여기 저기 색이 바래고 까지면서 입주민들의 불평이 늘어갔지만 잡은 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아파트 관리인은 그저 알았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가 새로 아파트를 보러 온 고객들이 다 좋은데 비치 체어가 낡았다고 지적을 하자 곧바로 교체를 한 것이다.

 

‘그래도 신경 좀 썼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머지 둘에 비해 유독 집콕을 선호하는 채경은 새로 들어온 체어에 누워 갈색 라탄을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혜미도 그 까끌까끌한 라탄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이른 아침 짧은 퀵턴 비행을 갔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오면 이제는 제법 손에 익은 샹그릴라를 만들어 들고는 곧장 수영장으로 향했다. 비치 체어에 누워서 라탄의 나무매듭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느새 석양이 지곤 했다. 


‘읽지도 않을 책은 왜 들고 나왔냐?’ 


‘그냥 누워있으면 허전하쟎아’ 


리아 언니의 타박에도 혜미는 습관처럼 책 한 권과 이제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게 된 샹그릴라 한 잔을 들고 수영장으로 나왔다. 잠시 몇 글자 읽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라탄을 쓰다듬다 보면 저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는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도 이제는 끝이다. 적어도 1년은 잊어버려야 한다. 에어아시아 글로벌 인사팀 매니저인 하림은 미안해 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외국인 승무원은 1년간 무급휴직에 들어가야 한다고.


‘아 짜증나, 기분도 꿀꿀한데 주크나 가자.’ 


오피스를 빠져나오면서 역시나 리아 언니가 바람을 잡았다. 하긴 이제 얼마 안 남은 이 곳의 밤을 마저 즐기고 싶겠지. 쿠알라룸푸르의 클럽이라면 이제는 플로어 무늬까지 다 외우게 된 혜미지만 못 이기는 척 따라가기로 했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다시 오게 될까? 1년이 2년이 될지 가봐야 알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시 오긴 올까? 그 사이 한국에서 다른 자리를 잡게 될지. 혹은 결혼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니 문득 우진이 생각이 났다. 오빠에게도 알려줘야 할 텐데. 뭐라고 하지? 그러고보니 이번 여름 휴가에는 우진이 말레이시아로 와서 같이 페낭을 가기로 했다. 


에어 아시아 승무원이 된 후 세번째 비행으로 페낭을 다녀온 이래 혜미에게 페낭은 나만이 알고 있는 숨은 보석 같은 여행지가 되었다. 물론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인기 높은 관광지이지만 한국 사람 중에 말레이시아 국내선으로 갈아타면서 페낭까지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간혹 페낭이나 다른 말레이시아 도시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한국사람이 타게 되면 혜미는 꼭 가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익숙해진 외국인들의 ‘앙뇽하새요’가 아닌 본토 발음 ‘안녕하세요’를 듣고 깜짝 놀란 한국 여행객들은 혜미 Hyemi의 이름표를 보고는 ‘아 한국분이세요?’ 라며 신기해 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어 혜미는 말레이시아 국내선을 타는 한국인을 보면 의례히 가서 한국어로 인사를 하곤 했다. 


‘오빠가 아쉬워 하겠는걸.’ 


혜미의 최애지 페낭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우진은 다음 여름휴가로 먼저 페낭행을 제안했다. 


‘그래도 이제 자주 보게 되니 좋아할라나?’


글쎄,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살며 롱디를 하다가 같은 도시에 살게 되면서 결국은 깨어진 장거리 커플 이야기는 너무 흔했다. 


롱디 커플이 합친 후에 깨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몇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면서 상대방의 모습을 내 머리 속에서 상상해온 것이다. 수시로 전화 통화나 톡을 하면서 내 남친은 이런 사람이다, 내 여친은 이런 여자다, 그러니 실제 만나면 나를 이렇게 대해줄 것이라고 상상을 한다. 


일 년에 한 번 만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 년에 한 번, 그 일주일 만큼은 모든 것을 다 바쳐 상대방을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막상 일상을 함께 하게 되면 나 혼자 상상했던 그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이따금 자유를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았는데 말이야.’


숙소에 돌아와 라탄 체어에 눕는 대신 클럽에 가기 위한 꽃단장을 하면서 혜미는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쩔 것이야.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것인데.’


결국 혜미도 리아 언니처럼 이 곳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멋지게 즐기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씨 여긴 또 막혀’ 


잠자코 폰을 만지작거리던 리아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한마디 던지고 기지개를 폈다. 역시나 채경은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 한다며 집에 남았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혜미와 리아 둘이서만 출격을 한 것이다. 


‘아니 이 지지배는 엄마랑 전화를 밤새 한다니. 여길 또 언제 온다고.’ 


두 사람이 사는 푸총에서 주크 Zouk 클럽이 있는 잘란 툰 라작 Jalan Tun Razak까지는 30km 정도 되는 거리였다. 푸총은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으니 우리 식으로 하면 분당사는 친구들이 택시 타고 홍대 클럽에 간다고 보면 된다. 


보통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 이 정상이라는 것은 새벽 시간 대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E5 도시 고속도로 위에서 한 시간 넘게 좁은 차 안에 갇혀 있다 보니 혜미도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드라이버, 에어컨 업업’ 


미국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기사가 차를 세우고 총을 꺼내도 무죄겠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의외로 이런 영어가 잘 통했다. 어차피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모국어가 아니니 미사여구나 의례히 붙이는 수식어는 필요 없다. 그냥 핵심 단어만 딱딱 말해주는 것이 서로 편했다. 


‘언니, 이 아저씨 이름은 자키라니까.’ 


‘알았어, 그래, 자키 에어컨 업, 이빠이 업, 오케이?’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몰두하던 자키는 씨익 웃으면서 에어컨과 K-팝이 나오는 오디오 볼륨을 함께 올렸다. 


자키에게 에어 아시아 외국인 승무원들은 큰 고객이었다. 비교적 신형의 미츠비시 갈란트를 보유한 자키는 쿠알라룸푸르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주고객으로 영업을 하는 택시기사였다. 


국제도시인 쿠알라룸푸르이지만 이 곳에서 깨끗한 택시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보통 한국의 K3보다도 작은 말레이시아 국민차 프로톤이나 토요타 코롤라 같은 일본 소형차를 택시로 쓰는데 외관부터 한국에서라면 폐차를 했을 낡은 차가 대부분이다. 


막상 차를 타 보면 내부도 외관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낡은 소형차 특유의 덜덜거리는 승차감에 더해 때에 찌든 천시트에 앉아 기름 냄새를 맡으며 장거리를 가다 보면 멀미나 두통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곳에 오래 머무는 외국인들은 자키 같이 상태 좋은 중형차를 보유한 기사들의 번호를 저장하고 장거리 갈 때마다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자키는 푸총에 사는 에어 아시아 외국인 승무원들이 단골로 부르는 기사 중 한 명이었는데 특히 한국인 승무원들이 부르면 아무리 먼 거리에 있더라도 기다리라고 하면서 두말없이 달려왔다. 한국인, 그 중에서도 젊고 예쁘장한 한국 여자 고객을 태우는 것은 신나면서도 폼 나는 일이었다. 새로 승무원이 오면 자키는 꼭 선글라스를 끼고 자기 차 앞에서 뉴페이스와 함께 사진을 찍고는 열심히 인스타 팔로우 신청을 했다.  


두 사람은 길에서 두 시간 가까이 허비한 끝에 10시가 넘어 주크에 도착했다. 어차피 막힐 것 감안해서 넉넉히 나온 터였다. 리아 언니는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에 가면 꼭 사입는 하늘하늘한 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왔고, 이미 하늘하늘 원피스에 질린 혜미는 검은 가죽 핫팬츠에 망사 스타킹, 흰 티에 검은 멜빵을 하고 나왔다. 한국에서라면 2세대 걸그룹 컨셉이냐며 비웃음이나 사겠지만 이 곳에서는 아직 이런 게 먹혔다. 


말레이시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외국 클럽에 가면 로버트 패틴슨 같은 꽃미남이나 크리스 햄스워스 같은 등빨들에 둘러싸여 끝도 없이 텐션이 올라갈 줄 알았지만 현실은 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법이다. 혜미는 몇 년 살다보니 그런 기대를 애저녁에 접었지만 아직 뉴비를 벗어나지 못한 리아는 여전히 저스틴 비버 같은 양남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언니, 정신차려. 그런 애들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런 애들은 여기서도 경쟁이 장난 아니야. 저스틴 비버가 아니라 에드 시런 같이 생긴 애들도 지가 양남이라고 목에 힘 딱 주고 있어요.’ 


‘난 그래도 똥남아는 아직 적응이 안돼.’ 


‘말레이 애들 중에도 화교는 잘 보면 좀 귀엽고 돈 많은 애들도 많아. 기다려봐 좀’ 


둘은 타이거 드래프트 맥주를 한 잔씩 시켜 놓고는 바에 앉아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클럽 안에는 EDM 대신 조금씩 텐션을 올려주는 빌리 아일리시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혜미의 눈에 흰색 수트를 입은 말레이 남자 하나가 데킬라 병과 잔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혜미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동남아시아 화교 특유의 통통한 볼에 미소를 띄우며 씨익하고 웃었다. 


‘어머 얘, 넌 쟤가 괜찮아? 쟤들은 왜 빽마이를 입고 다닌다니. 여기선 저게 멋있데?’


‘아, 좀만 있어봐. 첫 타자로 저만하면 낫밷이야’


새초롬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는 리아를 옆에 두고 혜미는 빽마이가 건네주는 데킬라 잔을 받아들었다. 클럽에서 으레히 던지는 추임새를 듣고 있는 혜미의 눈 앞에 오늘 밤 벌어질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 사람은 술 한잔 마시고는 같이 나가자면서 부킷 다만사라 Bukit Damansara에 있는 자기 집이 얼마나 근사한지 자랑을 늘어놓겠지. 


하지만 아직은 너무 일러. 좀 더 두고 봐야 하니 우선은 돌려 보내고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벌어질 거야. 결국 그 중 끈기 있는 몇 명과 함께 새벽 두 세시 쯤에 몽키아라 Mont Kiara에 있는 실내 포차에 해장 겸 2차를 하러 갈테지. 얘들도 여기 클럽에서 한국 여자 만나 한인타운 가서 놀았다는 것이 훈장 같은 거니까. 


그리고는, 그 다음에는, 뭐 늘 하던 대로겠지. 그런데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니까. 나중에 가면 이것도 그리울꺼야. 지나가 버린 한 때의 아쉽고 그리운 추억으로 남겠지.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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