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원픽 경주 로컬 맥주"

[쪽샘살롱 11] 동궁과월지 IPA

by Harry Yang

맥주 팔까, 말까? 애매해...

쪽샘살롱을 시작할 때, 소주와 막걸리는 팔지 않겠다고 했지만 애매한 것이 맥주였다. 술의 영역에서 맥주는 그것대로 엄청난 일가를 이루고 있는 분야이다. 게다가 이제 우리나라에도 전 세계의 좋은 맥주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내가 맥주를 다루지 않으려 했던 제일 큰 이유는 쪽샘살롱 바로 인근에 엄청난 내공의 수입맥주집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위켄드 커먼'이란 작은 공간은 매우 흥미로운 내력이 있는 곳인데, 원래 수도권(?) 쪽에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젊은 사장님 부부가 한 동안 해파랑길에 꽂혀서 주말마다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이르는 동해안 길을 한두 코스씩 걸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주쯤에 아지트를 하나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나? 그래서 자신들이 잘하는 수입맥주 보틀샵을, 황리단이 아니고 당시 경주고등학교 가는 굴다리 옆의 작은 공간에 열었다는 것이다. 운영은 주말, 즉 토일 저녁만 오픈하는 방식으로.


나는 어쩌다 그 얘기를 듣고 한 번 가봐야겠다 해서 갔다가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구하기 힘든 외국 맥주를 잘 갖다 놓았고, 꾸준히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가게는 보틀샵이라 안주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음식을 시켜서 먹거나 안주거리를 사들고 가야 했다. 자리도 좁았지만, 음악 들으며 비좁게 부대끼면서 서로 안주를 나눠먹는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사장님 부부와는 친해져서 계속 교류를 하고 있다. 이 분들은 나중에 시내에 'ㅎㅎㅎ'란 맥주집을 본격적으로 오픈했고, 원래 분야인 음악축제 기획사를 경주로 들고 내려와서 '황남동 페스티벌'이란 행사를 해오고 있다.


괜찮은 맥주를 찾아서

쪽샘살롱을 열기 전에 '주류박람회'를 한 2년간 다녔다. 서울에서 열리는 것을 주로 갔는데, 와인바를 운영하니 바이어 자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로 눈길을 주었던 것은 맥주와 와인. 정말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니, 거기서 좋은 수입사를 발견하면 큰 짐을 더는 것이었다. 시음을 빙자해서 잔뜩 술을 마시려고 오는 이들도 많아서, 박람회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구석에 취해서 자는 사람도 보이고 그렇다. 카트나 트렁크를 끌고 저렴하게 술을 구입하러 오는 이들도 많았다. 바이어로 가는 입장에서는 앞으로 들여놓을 제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보니 원대로 마시고 다닐 수는 없다. 이틀 일정이면 첫날은 전체적으로 둘러보며 좀 더 주목해야 하는 대상 부스를 몇 개 정도로 추려놓고, 다음 날 좀 더 여유 있게 시음도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식으로 접근을 했다. 나는 그렇게 마음에 드는 와인수입사를 하나 만났고, 주요한 맥주 수입 라인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맥주는 와인과 그 역사를 다툴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는 '맥주순수령'을 발동해 보리와 홉, 효모 외에는 다른 것을 넣지 않도록 하는 '독일 전통'과 온갖 다양한 재료로 실험을 해 온 '벨기에 전통' 정도로 나뉜다고 말해도 될까 모르겠다. 저마다 역사를 자랑하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맥주들이 워낙 많다 보니, 계통을 그려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방문하는 지역마다 특유의 맥주를 맛보는 것도 해외여행에서는 매우 즐거운 일이다. 아일랜드의 기네스, 체코의 필스너, 중국의 칭다오, 일본의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북한의 대동강 맥주까지 전 세계의 특정 지역은 그 지역을 척척 떠오르게 만드는 맥주들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는 맥주는 트라피스트(Trappist) 맥주이다. 맥주계의 최고 '프리미엄 리그' 맥주라고 말해도 괜찮을 텐데, 특별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트라피스트 맥주'란 명칭을 쓸 수 있다. 2025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종이 속해있다. 이 맥주는 원래 트라피스트 수도원 내에서 수도사들이 금식기도 기간 중 음식 대용으로 마시거나,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빚었던 것인데,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이 레이블을 붙일 수 있다. 첫째, 트라피스트 수도원 내에서 수도자의 관리 아래 양조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는 맥주 빚던 수도사가 사망하면서 리스트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둘째, 트라피스트 맥주는 상업적 이윤창출과 무관해야 한다. 셋째, 트라피스트 맥주의 사업 방침은 오직 수도원이 결정한다. 넷째, 양조장의 모든 일에서 수도생활이 최우선이고, 상업적 행위는 차선으로 한다. 물론, 지금 전 세계적으로 트라피스트 맥주가 소비되는 양상을 보면 상업적 이어선 안된다거나, 수도원 내에서만 생산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충실히 지켜진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쨌든 이 맥주가 여전히 최정상급 맥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Trappist_Beer_2015-08-15.jpg 2014년 기준 11종이었는데, 2025년 현재는 스펜서와 아헬이 빠지고, 틴트 메도우가 들어와 총 10종이다.

이 맥주들은 두벨(Dubbel), 트리펠(Tripel), 쿼드루펠(Quadrupel)로 구분되는데, 알코올 도수가 대략 6%, 8%, 10% 정도라고 보면 된다. 특이한 것은 이들은 병숙성이라고 해서 병입을 한 이후에도 계속 숙성과정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병에 들어간 이후에도 1-5년 정도의 기간에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이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로슈포르(Rochefort), 베스트말레(Westmalle)를 좋아한다. 이런 맥주들을 들여놓고 싶었지만, 세계적으로 좋다는 맥주를 여러 종 들여다 놓고 경주에서 잘 팔 자신이 없었다.


트라피스트 맥주 말고, 애비 에일(Abbey Ale)이라고 해서 수도원에서 생산한 고급 맥주들이 적지 않다. 기독교와 술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름 아닌 예수께서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기는' 즉 '먹보에 술꾼'이란 비난을 종종 받았고, 그분이 마지막에 제정한 자신을 기념하는 의식이 '(최후의) 만찬'인데, 이는 교회의 예배의식으로 변모되어 '성만찬(Eucharist, Holy Communion)'이 되었다.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그의 살과 피를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그 아내가 빚은 포도주와 맥주를 팔아서 개혁운동의 재정적 지원을 충당하기도 했고, 유명한 말을 많이 남겼다. "맥주는 인간이 만들었고, 와인은 신이 만들었다(Beer is made by men, wine by God.)"거나, "맥주를 마시면 잠이 쉽게 들고, 잠을 많이 자면,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니 맥주를 마시자!(Whoever drinks beer, he is quick to sleep; whoever sleeps long, does not sin; whoever does not sin, enters Heaven! Let's drinks beer!)" 같은 구절은 서양의 펍에 가면 종종 만날 수 있는 문장이다. 수도원에서 맥주나 포도주를 빚게 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성찬을 위한 포도주를 생산할 필요도 있었고, 고난주간 금식기도를 하는 중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대신 저도수로 발효된 약한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품질이 좋은 맥주와 포도주가 수도원을 끼고 만들어지는 이유가 되었다.


경주 맥주를 찾아서

고급한 맥주 취향은 '위켄드커먼'이나 'ㅎㅎㅎ' 가서 풀라고 하고, 쪽샘살롱은 좀 더 대중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하나 국산 맥주를 들여놓으면 선택지가 뻔했고, 소주와 막걸리를 팔지 않기로 한 결정이 별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찾게 된 대안이 로컬 맥주를 팔자는 것. 이미 전국적으로 수제맥주(craft beer) 열풍이 꽤 넓게 확산되었고, 좋은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의 주류 페스티벌에서 시음도 해 보았고, 품질로는 상당히 좋은 수준에 올라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수제맥주의 유통은 대형 주류회사에 비해 콜드체인 유통에 난점이 많을 수밖에 없고, 지역적 특색을 잘 살리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니 경주나 경주 인근의 수제맥주를 찾아보게 되었다.


가까운 울산 쪽에는 트레비어(Travier)가 잘 운영되고 있었고, 경주에는 화수브루어리(Hwasoo Brewery)가 보문단지에 큰 매장을 열어놓고 있다. 화수브루어리는 2003년 울산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경주에 크게 매장을 내고 양조장도 운영하고 있고, '경주맥주'란 브랜드로 제품도 출시했다. 쪽샘살롱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경주별맥'이란 회사의 제품이었는데, 그쪽에서 나오는 라거와 흑맥주 등의 라인업 중 '동궁과월지 IPA'를 갖다 놓았다. 라거로는 '하이네켄', 흑맥주로는 '기네스'를 이미 들여놓았기에, IPA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고른 선택이었다. 예전에도 다른 가게에서 마셔보면서 '이거 물건이다'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생각했다. 오신 손님들도 다 좋아했고, 경주의 특색을 잘 살렸다 생각한다. 쌉쌀하면서도 오렌지 향이 올라오는 매력적인 IPA이다. 일반 유통도 되니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KakaoTalk_20251114_135054923.jpg

아마 앞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술의 종류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도 여러 종류의 막걸리, 소주, 과일주 등이 있고, 경주지역에 있는 대형 주류회사인 경주법주 같은 곳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화랑 같은 술이 나온다. 하나씩 시음을 해가면서 그 특색을 잘 소개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10화“요즘 미국 위스키의 대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