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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Mar 26. 2024

다이빙이 가르쳐준 삶의 비밀 세 가지


여전히 수면 아래 바닷속에서 내뱉은 첫 숨을 기억합니다. 10년도 훌쩍 넘은 일이지만, 그날의 햇빛과 공기와 습도, 바다 빛깔은 여전히 제 맘에서 반짝입니다.


뒤늦게 시작한 잡지사 에디터 일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 때론 적당히 타협하며 살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게 어른이 되는 거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앞에서 방황하던 때였어요. 그렇게 사는 게 어른이라면 도망치고 싶었죠. 할 수만 있다면, 언제고 피터팬처럼 살고 싶었거든요. 자신이 있었나구요? 아니요. 겁 많고 비겁한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열심히 돈 벌고, 그만큼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으로 또 열심히 쓰고, 성실하게 눈치 보며 살았어요. 삶에서 가장 안정적인 순간이라 불리던 때가 알고 보니 수면 아래선 가장 큰 조류로 흔들릴 때였습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말이죠. 


나는 지금 진정 행복한가? 본질을 가리는 반짝이고 의미 없는 것들에 눈이 멀어 스스로 행복하다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미 없이 바쁘고 열심히만 살던 저에겐 이런 질문들도 사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바닷속에서 제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2015년, 그렇게 저는 잘 다니던 패션지에 사표를 내고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 살기 위해 태국 남동부 외딴섬 꼬따오로 캐리어 달랑 두 개 들고 편도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마침내 닿은 나만의 섬에서 저는, 다이빙을 핑계 삼아 바닷속에서 삶의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첫째, 자연과 가까이 살아라


다이빙이 가르쳐준 첫 번째 삶의 비밀은 ‘자연과 가까이 살아라’였어요. 선크림이 무색한 햇빛 가득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저는 덜 욕망하고, 덜 소비하고, 덜 존재하는 삶을 배웠어요. 화려한 메이크업에 가려진 주근깨와 기미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명품 브랜드로 나를 치장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나 다운 모습으로 사는 게 가장 아름답고 건강하다는 것을요.



둘째, 독립적인 삶을 살아라


다이빙을 하며 배운 두 번째 삶의 비밀은 ‘독립적으로 살아라’입니다. 누구나 경제적 의미의 독립을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여기선 삶의 태도를 이야기해요. 스스로 주도해 채워가는 삶을 사는 태도 말이에요. 다이빙 강사로 해외 외딴섬에서 살다 보면 사회가 강제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되죠. 독립적인 삶의 태도를 갖추지 못해 1년도 못 버티고 다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조금씩 매일, 연습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 살던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요. 저는 다이빙을 하면서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셋째, 선 곳을 바꿔 풍경을 바꾸고, 사람을 바꿔라


다이빙을 하며 배운 세 번째 삶의 비밀은 ‘선 곳을 바꿔 풍경을 바꾸고, 사람을 바꿔라’ 예요. 서울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와 똑같이 허황한 욕망과 비교, 질투,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걸 술로 달래고, 소비로 달래고, 폭력과 자학으로 달래고 있었어요. 저는 제 삶을 사랑하기로, 저를 사랑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다이빙을 좋아하는 행복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다른 이들과의 비교와 질투를 멈추고, 피해의식과 자격지심, 끝도 없는 불안감과 조바심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됐어요.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위도와 삶의 속도를 찾게 됐죠. 이제 더 이상 나보다 앞서가는, 빨리 가는 사람들을 보고 조바심 내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꽃은 피고, 봄에 피는 꽃이 있으면, 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는 걸 믿거든요. 다이빙을 통해 ‘직’에 연연하지 않고 ‘업’에 집중하며,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한가에 집중하며 자존감의 근육을 조금씩 키우게 됐습니다. 물론, 몸의 근육도 키워갔고요. 저는 그 누구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위해 다이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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