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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Mar 19. 2024

프롤로그: 바다가 물었습니다, 왜 ‘안’ 되는 거냐고


10년 전, 저는 서울, 그것도 강 남쪽에 사무실을 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패션 잡지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창간한 작은 독립 잡지사 인턴으로 시작한 늦깎이 잡지사 에디터 일을 하다 운 좋게 스카웃을 받아 옮긴, 폼나는 곳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한강의 너비만큼이나 큰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평생 달걀흰자처럼 노른자 서울을 맴돌며 위성도시에서 출퇴근으로만 하루에 왕복 4시간을 보내면서 시시각각 바뀌는 전철 밖 풍경은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한강변을 수놓은 빼곡한 아파트 불빛들은 저에게 욕망과 자격지심을 부추겼고, ‘왜 너는 남들처럼 이 불빛 하나를 얻기 위해 더 열심히 하지 않느냐’ 채근했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서울의 유혹과 욕망을 뿌리칠 용기도, 그렇다고 서울로 들어갈 용기도 없었습니다. 괜히 답답한 정치를 탓해보기도, 가식적인 사회를 탓해보기도, 무표정한 사람들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스스로 무언갈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지도 희망도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심드렁해지기만 했어요. 주말도 휴일도 없이 마감엔 며칠 밤을 꼬박 새야 하는 잡지사 에디터 일 특성상 일주일 휴가를 쓴 만큼 농축된 마감을 각오해야 하기에 출구 없는 우울감과 무기력함은 저도 모르는 사이 겹겹이 쌓여만 갔습니다. 


그러다 떠난 출장길이었어요. 당시 일본 이시가키섬에 있는 리조트 체인의 초청을 받아 다양한 활동을 체험한 후 기사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무얼 해도 심드렁했던 저에게 리조트 측에서 두 가지 액티비티 중 하나를 고르라고 제안했죠. 바로 마운틴 바이크와 스쿠버 다이빙이었어요. 두말 않고 스쿠버 다이빙을 선택했어요. 저는 항상 산보다 바다인 사람이었거든요. 


막상 바닷속에 제 몸이 푹 잠긴다고 생각하니 다이빙에 앞서 책임 면책 동의서에 사인을 하려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자격증 과정이 아닌 ‘체험’ 다이빙이기에 수영을 못 해도 다이브 프로페셔널이 항상 옆에 있어 준다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됐죠. 익숙하지 않은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수면에 잠시 머물 땐 ‘그냥 멈추고 돌아갈까’ 생각도 했어요. 30년 넘게 뭍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가 그저 산에서 흙먼지 뒤집어쓰기 싫다는 이유로 바닷속에 들어가는 게 맞는 건가, 혹시라도 뭔가 잘못되면 어쩌지 등등 그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마련이니까요. 


수면 아래 정수리가 잠기는 순간, 저는 다른 세계로 순간 이동을 한 듯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수면 위 세상의 익숙했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주의를 기울여본 적 없는 제 숨소리만이 들려왔죠. ‘아…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내가 여기, 이렇게 살아 있구나.’ 우주를 떠다니는 기분이 이럴까요. 철저한 고립감이 느껴지지만 외롭지 않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온몸이 바닷속에 그토록 오래 잠겨있는 건 처음이었는데도 편안하고 포근했어요. 나라는 존재를 철저히 외면하는 거대한 바닷속 세상의 무심함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리려, 한강변 작은 불빛 하나를 갖기 위해 온갖 정식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마다하지 않고 아등바등하는데 바닷속에 들어와 보니 그런 건 하나도 의미가 없었어요. 이 무한하고 거대한 우주에서 저는 그저 먼지 한 톨도 안 되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물속에선 인간이 뭍세상에서 체득해 온 감각도 소용이 없어지기에 시간 감각마저 틀어졌어요. 이제 겨우 5분 지난 것 같았는데 30분도 넘게 있었다더군요. 그렇게 첫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저는 제 곁에 있던 다이빙 강사 Ben에게 소리쳤어요. “나, 이렇게 다이빙하면서 살고 싶어!” 


뭍으로 올라오자 저에겐 다시 온갖 ‘안돼’ 병이 도지기 시작했어요. 이 나이에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한다니,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니, 결혼 안 하고 다이빙 강사가 된다니, 스스로 질문하고 지레 겁을 먹고 답을 내렸죠. 저녁을 함께 했던 Ben에게 말했어요. “나도 너처럼 다이빙하며 자연 가까이 살고 싶은데… 안 되겠지? 안 될 거야….”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스무 살 이후부터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이빙 강사로 살아온 그는 저에게 나이를 물었어요. 제 대답을 들은 그는 손뼉을 치며 배를 잡고 웃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말했어요.


“You’re so f**king young! Why not?!”


신기하고 희한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고작 서너 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서울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하는 말과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같은 나이도 여기와 거기가 다르더군요. 출장에서 돌아와 저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동안 ‘안돼’라고 말해온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못 하고, 적당히 사회의 관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개성과 자유를 누리고 싶어 적당히 타협하며 살면 될 줄 알았는데, 바닷속에서 먼지 한 톨만큼의 존재감도 누리지 못한 저는 바로 그 이유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답니다. 


결국, 한 달 내내 열심히 수영을 배워 이시가키섬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스쿠버 다이빙의 입문 과정 코스를 배웠어요. 다시 한번, 인간은 모르는 것을 막연히 두려워만 하니까요. 이후 저는 잘 다니던 패션지를 그만두고 비행기 편도 티켓을 끊어 아주 작고 외딴섬, ‘다이빙의 성지’ ‘다이빙의 메카’ ‘다이버의 무덤’이라 불리는 태국 꼬따오로 갔어요. 그리고 지난 수년간 다이빙 강사로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바닷속 세상으로 안내했어요. 


수면 아래 온몸이 물에 잠기는 순간, 태어나 처음 느낀 자유와 고독, 평온과 고요함은 제 삶을 바다처럼 넓고 관대하고 유연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한강변에 늘어선 아파트 불빛에서 제 가치를 찾지 않아요. 나이트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 위로 빼꼼, 얼굴을 내놓고 둘러보는 육지의 불빛은 언제든 꺼지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영원히 꺼지지 않은 빛을 스스로에게 찾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다이빙을 통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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