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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May 29. 2024

명함이 없는 삶

진짜 나로 살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다.

  



      

자유


“네 꿈은 뭐야?”

     

지난 수년 간 지냈던 태국 남동부 외딴 작은 섬에서 만난 미국 친구 Brian에게 물었습니다.  

   

“내 생에 단 한 번이라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고 싶어.”     


어둠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잔잔한 파도소리가 무한반복되던 해변가에 앉아 그 친구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내놓은 대답은 이후 영영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살면서 수없이 읽고 쓰고 말하던 단어였지만, 그때만큼 ‘자유’라는 단어가 저에게 완벽한 실체로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자유’는 늘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거든요. 우리는 온전한 자유가 두려워 어디엔가 소속되길 원하고 무언가에 관여되길 바랍니다. 어떤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에 대해 생각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죠.      


저에게 ‘자유’란 ‘독립’입니다. 그 어떠한 상태와도 관계없이 스스로 온전히 홀로 서는 것. 온전히 독립된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명함에 잠식된 삶


보통 사람들은 내내 명함을 가지고 삽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직장까지 자신의 소속과 직책을 말해주는 명함 말이에요. 사회 시스템에서 사람의 구실이 어떤 명함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나뉘기도 합니다. 명함 한 장이 그 사람의 배경을 말해주기도 하니까요. 어떤 이의 명함은 명함의 주인이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나타내기도 합니다. 명함 한 장이 그저 작은 종이 한 장이 아닌, 한 권의 책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좋은 명함을 가지려 애를 씁니다. 또 좋은 명함이 생기면 밥을 사고, 자랑도 하고, 축하도 받죠. 어떤 이는 명함에 쓰인 소속과 직책 자체가 너무 거대해 이름이 잠식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 명함의 힘으로 착각에 빠져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도 참 많지요. 사회에서 인정받는 그럴듯한 소속과 직책을 가진 이들에게 명함은 반짝이는 포장지입니다. 그 포장지를 벗겨버리면 그 안이 텅텅 비었다는 걸 들킬까 봐 그 포장지를, 그 명함을 잃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며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수많은 국회의원, 교수, 검사, 의사, 기자들처럼 말이죠.      


명함이라는 게 있고 없고의 차이를, 아니 명함 안에 새겨진 소속과 직책의 분명한 차이를 오랜 사회생활로 절절히 경험했던 저에게도 한동안 명함은 반드시 지켜야 할 무기였습니다. 영세한 독립잡지에서 에디터 생활을 하다 메이저 패션지로 소속을 옮기니 저를 대하는 연예계와 문화예술계 담당자들의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정작 저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 말이죠.      


그때부터였습니다. ‘나는 이 명함에 떳떳한 사람인가?’ ‘이 명함으로 사는 나는 행복한가?’하는 질문이 피어나기 시작했죠. 그리고 명함에 잠식되는 삶이 아닌, 명함으로부터 독립하는 삶을 살 순 없을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방황하며 외로운 도시를 배회해도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의 독립은 꿈도 못 꾸고, 온갖 소셜미디어와 요즘 유행하는 것, ‘트렌드’ ‘대세’ ‘요즘’이라는 단어를 미신처럼 신봉하며, 인간은 원래 늘 어디엔가 속하려 하고 누군가와 연결되려 한다는 명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만 모르고, 나만 뒤처진다는 불안함에 두려움이 생긴다고 믿었거든요. 그러다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가에 집착하다 결국 스스로 바라보는 눈까지 잃었을 때, 불안과 두려움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의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 이유 없고, 갈 곳 없는 분노로 변해, 서울 도시 전체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고 느껴졌을 때 저는 처음으로 제대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점점 나를 좀 먹고 있는 내 삶의 포장지인 명함 없이 ‘내 이름, 세 글자로 사는 것’에 대해 꿈꿨습니다.      



명함이 없는 삶

가족, 친구, 조직,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 이름 세 글자로 사는 인생의 실험을 10여 년 가까이해보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지나치게 예민했고, 그로 인해 불안과 우울을 안고 살던 저는, 명함을 버리고 오롯이 나로 살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던 회사도, 사회도, 대한민국도, 나에 대한 관심을 금세 다른 이에게로 옮겼죠. 사회가 제게 바라는 기대가 없고, 저 역시 사회에 빚 진 게 없으니 여전히 많은 것을 가진 건 아니어도 잃을 것도 없어 자유롭고 당당합니다.      


인간은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 두려워하거나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갈등과 혐오, 폭력, 전쟁이 끊이질 않죠. 저는 잘 모르는 건 일단 경험해 보려고 합니다. 잡지 일을 하며 영화와 음악을 비롯한 각종 예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간접경험을 예찬하며 세상에 알리려 노력했지만, 스스로 그 한계를 넘어 직접경험으로 옮긴 그 시간들은 화려한 명함이 줄 리 없는 벅찬 감동과 지혜와 용기를 제 삶에 선물해 줬습니다.      


우리 모두 각각 저마다의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명함에서 독립된 삶을 한동안 살아봤으면 합니다. 그러면 명함 뒤에 가려진 나란 사람이 얼마나 별 것 없는 사람인지, 그래서 또 얼마나 가능성의 여백이 많은 사람인지, 겸손에 대해, 행복에 대해, 삶의 태도에 대해 독립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니까요. 그래야 그 ‘소속’과 ‘직책’의 의미나 가치 때문에 삶에 부여되는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내 삶에서 더 아름답고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찾으러 모험을 떠날 수 있으니까요.      


발성기관인 목에서 나는 소리와 내 마음의 소리가 같은지 스스로 들을 수 있어야 진정 독립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정직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죠. 그래야 남이 하는 말을 따라 하고 내 것인 양 기만하는 삶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으니까요.


삶에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 않고도 나 자신을 발견하는 데 소비할 수 있는 멋진 시간이 많아요. 또, 그 과정이 고통스럽거나 공허할 필요는 없어요. 스스로를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모험을 떠나고, 친구들과 숲에서 잠들고, 밤에 도시를 돌아다니고, 혼자 커피숍에 앉아 화장실 칸막이에 글을 쓰고, 도서관 책에 메모를 남기고, 자신을 위해 옷을 차려입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많이 웃으세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되, 사랑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삶을 낭만화하지 마세요. 자신을 위해 살고 스스로 행복하세요.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은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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