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해외 다이빙 강사가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무해한 욕심.
저는 2013년 생애 첫 다이빙을 했어요. 한국에서 <F.OUND 매거진>을 거쳐 <아레나옴므플러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고 있을 때였죠. 클럽메드라는 체인에서 아시아권 기자와 에디터를 초청해 리조트를 체험하는 출장이었어요. 일정 마지막 날, 클럽메드 재팬 이시가키에서 기자들에게 체험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언제나 산보다 바다였던 저는 마운틴 바이크와 스쿠버 다이빙 체험 중 주저 없이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난생처음 스쿠버 다이빙을 하게 됐어요. 정식 자격증 코스가 아닌 체험 프로그램이기에 간단한 스킬을 풀장에서 연습하고 강사의 손에 이끌려 바다로 갔는데, 수면 아래로 제 몸이 잠기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처럼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아주 짧은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오자마자 담당 강사에게 소리쳤죠. “나! 너처럼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단지 다이빙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동료 강사들과 맥주 한잔하는데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다이빙 강사로 산다는 건 단지 일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의미하는 거야”라고. 제가 한국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이빙 강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물론 한국에서 다이빙 강사로 살 수 있었고, 직장을 다니며 주말에 다이빙을 가르칠 수도 있었지만, 저는 무엇보다 다이빙 강사가 되어 해외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다 많은 사람을, 보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거든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다이빙을 통해 그 꿈을 이뤄보기로 했죠.
제가 다이빙 강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던 건 2013년이지만 2년여간 한국에서 준비 기간을 가졌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계속 직장에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수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봤죠. 2015년,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고 태국 꼬따오에서 프로페셔널 다이버 과정인 다이브마스터와 강사 과정을 통해 다이빙 강사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다이빙 센터를 정하지 않고 꼬따오에 갔어요. 그리고 섬에서 이름난 다이빙 센터에서 펀 다이빙을 하면서 어떤 곳에서 트레이닝을 하면 좋을지 직접 알아봤어요. 온라인에는 모두 좋은 말만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 말고 다이빙 센터의 분위기나 강사진의 실력은 직접 다이빙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거든요.
저는 서른 전까지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평생 유학은커녕 해외 어학연수 한 번 가본 적이 없어요. 제가 아는 영어는 모두 초중고, 그리고 미드에서 배운 게 전부였죠. 그런 제가 결국 한인샵이 아닌 영미권 다이버들이 있는 다이빙 센터를 선택한 건 한국인 다이빙 커뮤니티와는 다른 그들의 열린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다이빙 강사가 되려 마음먹었을 때가 만으로 서른셋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웨스턴샵에서는 나이와 성별이 다이빙 강사가 되는 데에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어요. 이후 수년간 다이빙 산업계에서 일하면서 그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었습니다.
요즘 저처럼 해외에서 다이빙 강사가 되고 싶다는 상담 메일을 많이 받아요. 대부분 저처럼 한국에서 직장 생활과 조직 생활을 하다 지친 분들인데, 한편으론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라며 스스로 한계선을 그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선을 그은 것도 자신이고, 그 선을 넘느냐 아니냐 선택 또한 스스로 할 일이지만, 저 또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기에 충분히 이해해요. 햇수로 10년 가까이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하며 제가 가졌던 마음가짐에 대한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요.
불안은 실행으로 덮습니다. 시도해 보지 않고, 실행해 보지 않으면 절대 그 결과를 알 수 없어요. 여러분이 다이빙이 좋아 해외에서 일하는 걸 꿈꾸고 시도하고 실행했는데 생각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도 그건 절대 실패가 아니에요. 그 시간 동안 느낀 행복, 성취감, 용기를 얻은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해외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하기 위해 다져야 할 마음
1. 퇴사를 위해 다이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정말 다이빙이 좋아서 퇴사를 하는 게 맞는 순서다
여기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단지 한국이 싫어서, 직장 생활이 싫어서 퇴사하고 ‘다이빙 강사나 해볼까’ 하는 친구들은 1년은 고사하고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기 위해 다이빙을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오래가지 못해요. 해외에서 다이빙 강사로 산다는 건 자신의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낭만적이기만 하지 않아요. 하지만 진정 다이빙을 좋아하고, 다이빙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꾼다면 힘든 고비나 장애물도 잘 넘어갈 수 있어요.
2.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도시에서의 습관을 버려라
다이빙을 가르치며 버는 수입은 도시에서의 그것과 비교하면 실망할 거예요. 특히 해외 관광객과 여행자들이 많은 태국 꼬따오 같은 곳은 전반적으로 다이빙 센터가 책정하는 다이빙 코스 금액에 한계가 있어 자연스럽게 다이빙 강사가 벌 수 있는 금액에도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다이빙 강사로 경험과 실력을 쌓아가며 다이빙 센터와 신뢰 관계를 단단히 만들면, 한 코스에 보다 많은 교육생을 가르칠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수입이 올라갑니다. 또한, 도시와 비교해 수입이 적더라도 생활비 지출이 훨씬 적기 때문에 ‘내가 예전엔 회사에서 얼마를 벌었는데, 지금은 이렇게밖에 못 버네’ 할 거면 다이빙 강사 일을 하지 말아야 해요. 다른 한편으로 다이빙 강사로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유롭고 평화롭게 보내는 하루하루의 일상은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어요. 각자의 도시에서 유능한 펀드 매니저, 사업가, 의사, 변호사 하다 다이빙 강사로 일하며 행복한 일상을 감사히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3. 남과 비교하는 버릇을 멈춰라
처음 몇 달은 좋았습니다. 파라다이스 트로피컬 아일랜드에서 매일 다이빙하며 멋진 사람들과 어울려 삶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면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얼마가 지나든 허니문 시기는 결국 끝납니다. 현실과 마주해야 할 시기가 찾아와요. 도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갑자기 온갖 불안과 초조함이 찾아오기도 해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냉정하게 자문해야 하는 시간도 옵니다. 그런 시간을 흔들리지 않고 잘 넘기려면 본질에 집중해야 해요. 잠시 어디론가의 탈출이 필요해 다이빙 강사가 되었다 해도,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렇다 해도 모든 건 실패가 아닌 경험이니까요.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닷속에 단 한 번도 못 들어가 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요. 스스로 너무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지 마세요.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여러분에 관심이 없습니다. 남들 시선과 평가는 무시하세요. 자신만의 위도를, 자신만의 삶의 방향과 속도를 찾아야 합니다.
4. 도시 살던 버릇 그대로 하면 한 달도 못 버틴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한 서울에서 외딴 시골 섬 꼬따오로 옮기니 처음엔 모든 게 느리고 여유로워 좋았어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 한국이라면 이렇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하더군요. 그때마다 ‘이러려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누구도 저를 등 떠밀지 않았어요. 굳이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이 섬을 선택한 건 바로 저, 자신이었어요. 24시간 배달, 어플 사용 등은 꿈도 못 꾸고, 병원이나 관공서 일은 굉장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작은 시골 섬도 코로나 이후 물류 시스템이 훨씬 나아져서 요즘은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주문하면 빠르면 2-3일 안에 받을 수 있어요. 그전까진 섬사람들은 웬만하면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지 않고, 섬 안에서 중고물품이나 물물교환을 선호했답니다. 어떤 건 주문하면 2주에서 한 달은 기다려야 했거든요. 생각보다 자신이 살아왔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아요. ‘한 달 살기’라면 이 모든 게 재미고 낭만이지만, 그 이상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내죠. 느리게 흘러가는 삶에 익숙해진 저는 오히려 한국의 빠른 시스템이 겁이 납니다.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한 시스템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치러지는 희생과 대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다이빙을 통해 변한 라이프스타일은 결국 저라는 사람 자체를 바꾼 것 같아요.
5. 서울을 빠져나오는 티켓은 굉장히 비싸다
제가 다이빙 강사로 사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해요.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저는 해외에서 다이빙 강사로 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영어 공부도, 다이빙 공부도, 연습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선배 강사들을 쫓아다니며 각각 다른 티칭 스타일과 다이빙 컨트롤 테크닉을 카피했고, 스스로 적용해 보면서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갔죠. 지금은 제가 가르친 다이브마스터, 강사 친구들이 전 세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기나긴 인내심과 겸손한 애티튜드, 순수한 열정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또한, 다이빙을 가르치는 일 역시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에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야 해요. 오픈 마인드로 늘 상대에게 배우려는 태도가 정말 중요해요.
6.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게 아닌 자존감을 길러라
다이빙 자체가 기록을 세우고 순위를 매기는 경쟁 스포츠가 아니기에 때론 아무리 해도 실력이 안 느는 것 같고, 정체기가 찾아올 때도 있고, 그로 인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하지만 다이버 커뮤니티에는 분명 명성 높고 존경할 만한 다이버와 트레이너가 있어요. 훌륭한 다이버는 물속에서 얼핏 봐도 알아요. 다이빙의 전반적인 스킬과 테크닉은 물론 강인한 멘탈 관리와 긍정적이고 겸손한 마인드, 티칭 애티튜드 모두 고루 갖추고 있답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인정받는 게 아닌 다이버로서 자신의 목표와 명분을 확실히 세우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존중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내심을 잃고 외로움에 질 수 있어요.
7. 정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라
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다이빙 센터에서 일하는 대신 코스를 무료로 진행할 순 없냐고. 물론 다이빙 산업계에 그런 식의 인턴십을 진행하는 곳이 있긴 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방식으로 다이빙을 배우는 걸 반대합니다. 공짜로 사람을 부리는 데엔 대부분 이유가 있어요. 그런 곳이 제대로 된 다이빙 코스를 제대로 가르칠 리가 없고요. 여러분이 다이빙 강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공짜로 코스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을까요? 다이빙은 장기적으로 볼 때 어떤 강사에게 어떻게 트레이닝을 받았느냐에 따라 천지차이예요. 자신의 가치를 아는 교육 경험이 풍부하고 교육 철학이 단단한 강사는 절대 무료 코스를 제안하지 않습니다. 다이빙 코스에 대한 비용은 트레이너가 오랜 시간 투자해 온 시간과 경험, 스킬, 테크닉, 노하우를 배우는 대가입니다. 공짜로 배울 생각하지 말고 정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훗날 다이빙 강사가 되면 역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세요.
8. 다른 문화를 존중하라
태국 꼬따오 해외 다이빙 센터에서 수년간 다이빙 강사로 일하면서 미국, 캐나다, 중미, 남미, 영국, 서유럽,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 국가, 인도 등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났어요. 작은 나라 한국에서 그동안 얼마나 아웅다웅하며 살아왔는지, 그러면서 스스로 뭔가를 안다고 까불었던 제가 안타까울 정도였어요. 한국에선 맞는 게 어떤 나라와 문화에선 아닐 수도 있어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다른 관습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을 배워야 해요. 책으로 읽고 영화로 본 것이 아닌, 실제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깨닫고 얻는 건 천지차이입니다. 한국에서 보고 배우고 익숙해졌던 문화를 고집하면 다문화 다이빙 커뮤니티에서 환영받을 수 없어요.
9. 몸으로 하는 노동의 가치를 배워라
저는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제가 얼마나 엉망인 삶을 살았는지 절감했어요. 장비 메고 제대로 서지도 못했던 저는 잃었던 몸의 ‘코어’를 되찾고자 꾸준히 운동하고 명상하며 체력을 키웠어요. 다이빙 강사로 일하려면 탱크 여럿도 너끈히 들어야 해요. 교육생을 도우려면 더 튼튼해야 하고요. 다이빙은 에너지 소모가 굉장한 액티비티이기에 먹기도 잘 먹어야 하고, 감기에라도 걸리면 이퀄라이징이 안 돼 다이빙 자체를 할 수 없으니 늘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해요. 다이빙 커리어를 장기적으로 잘 이어나가는 강사들은 다이빙 끝나고 운동하러 가거나 집에서 잘 챙겨 먹고 쉬어요. 다이빙 끝나고 파티하고 술 마시는 다이빙 강사들은 금방 문제가 생깁니다. 탱크를 나르고 밸브를 여닫느라 손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이곳저곳 멍이 성할 날이 없지만, 몸으로 하는 노동의 가치를 배웁니다. 도시에서 사무실에 앉아 손가락 까딱까딱하며 패스트푸드와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던 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10. 외로움은 배신하지 않는 친구
도시를 떠나 자연에 살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봤을 거예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생각보다 사람은 환경의 변화를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요. ‘파라다이스 디프레션’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꼬따오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도시를 떠나 파라다이스에 가면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변할 거라는 기대감이 크기에 상대적으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어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은 친구가 있어야 해요. 저처럼 글을 쓰는 것도 좋고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객관화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모든 게 더 나아지거든요.
얼마 전 출간한 제 에세이 <서울에서 도망칠 용기>에도 쓴 이야기이지만, 마음이 지옥이면 트로피컬 파라다이스 섬에 살아도 지옥이고, 마음이 천국이면 감옥에 있어도 천국입니다. 자신만의 파라다이스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멋진 삶이 아닐까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다이빙 강사가 되려 하지 말고, 다이빙 강사가 되기 위해 도망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