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성장의 기록, 여행

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1

by 쌀방언니

바디프로필 촬영이 점점 다가오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그때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고생한 나에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그게 다였다.


촬영을 마치고 몇일 뒤 나는 떠났다.

혼자 살아본 경험은 있지만 '혼자 여행'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만 떠난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그 생각은 찰라였다.

지금껏 함께했으니 이번만큼은 혼자이고 싶다. 이정도는 나에게 해줘도 괜찮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바다가 좋다.

어릴적 창문을 통해 저 멀리 건물 사이로 푸른빛을 띄며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 작은 바다를 보는게 좋았다.

바다는 내가 보고자하면 늘 그곳에 있었고, 파도가 치는 수평선 너머의 바다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다의 바다 짠내, 발가락 사이의 모래, 출렁이는 물결, 쓸려내려가는 모래알, 쥐죽은 듯 고요한 밤바다, 코끝을 스치는 겨울바다 냄새, 따뜻한 코코아 한잔, 이 하나하나가 나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바다는 좋은데 그 속에 들어가는 건 공포다.

물에 대한 공포가 있어 '바다는 바다보는 것' 이 바다에 대한 나의 정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다한테선 애정이 쏟아져 넘친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혼자만의 여행도 그래서 바다가 있는 '거제도' 정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비싸지 않은 곳으로 선택했다. 여행 일정은 2박 3일.


촬영이 끝나면 가장 먼저 먹고 싶었던 칼국수, 숨은 맛집이라는 식당을 찾아 예약을 했다. 거의 1년만에 먹는 음식이라 혼자서 5인분도 거뜬하게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레드와인 2병, 읽고 싶은 책 몇권, 노트북 , 여벌 옷만 챙겨서 거제도로 향했다.


여행 계획은 칼국수집 식당을 제외하고는 호텔에서 2박 3일을 보내는 게 전부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갑갑하면 호텔앞 해수욕장에 갔다가 저녁에는 호텔의 루프탑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


지금 생각해보니 그 호텔을 선택한 이유가 바다 말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레스토랑의 레드 와인이 무한리필이란 것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종종 레드 와인 한잔씩을 마셨고, 와인은 의외로 나와 잘 맞았다. 단맛이 나는 와인보단 드라이한 와인이 묵직하고 내 취향이다.


고된 다이어트, 그 후 바디프로필 촬영, 혼자 떠나는 여행, 무엇하나 축하하지 않을 일이 없었기에 내 여행은 축하 여행이 되었고 축하주는 빠질 수 없는 필수템이었다.

그동안 참고 절제했던 욕망이 터져나온 것인지, 와인 2병을 챙기고도 무한리필이란 말에 현혹되었다.


여행의 첫 도착지는 칼국수집이었고 나는 칼국수와 해물파전을 게걸스럽게 앉은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사장님이 여자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다고 하셨지만 나는 1년을 참은 사람이다. 싹싹 비우고 사장님께 싱긋 웃어보였더니 사장님은 멋쩍게 웃으셨다. 그렇게 첫끼를 마쳤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만 내려놓고 바로 바다로 향했다. 한동안 멍하니 바다멍을 하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책을 읽었다.



이른 저녁부터 레스토랑을 찾아 와인과 피자를 천천히 더이상 뱃속에 여유 공간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아주 야무지게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마지막 '축하주' 라며 와인을 또 마셨고, 술과 피로로 지친 피부를 마스크팩으로 달래주었다.

그렇게 첫날이 마무리되어갔다.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하지않은, 그 침묵이 좋았다.



첫날에 신이나서 과식에 과음을 했지만 일출이 보고싶어 일찍 눈을 떴다.

바다향기와 함께 하는 일출은 심장이 아릴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품에 안고 조식을 먹으러갔다.


나는 조식을 2인분 이상 먹었다. 아침에는 입맛이 없다지만 나는 입맛이 돌았다. 조식 시간이 끝날때까지 천천히 몇번을 음식을 가져와 먹었다.




아침을 먹고 바닷길을 산책했다.

중간중간 쉬어가며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걷기를 반복하며 겨울의 찬바람을 기분좋게 맞았다.


그리곤 방으로 돌아와 읽고 싶은 책 여러권을 번갈아가며 읽었다.

책을 읽다 낮잠을 잤고, 일어나면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유튜브를 보다 창밖의 바다를 봤다. 그러다 다시 책을 읽었다. 오후의 시간은 느긋하게 흘러갔다.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 시간을 확인하고 저녁을 먹으러갔다.

어제에 이어 또 다시 와인을 마시고, 글을 끄적거리고, 저녁 식사를 여유롭게 즐겼다.

많은 연인들 사이에 홀로인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늦은 밤이 되자 밤공기가 마시고 싶어졌고, 바다보러 나간 김에 편의점에서 와인을 한병 더 샀다.


마셔도 마셔도 즐겁기만하고 취하지가 않는 기분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몇잔을 더 마시고 잠이 들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는 밤새 숙취에 시달렸다. 그렇게 두번째 날이 흘러갔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창가에서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연보라빛. 그 빛이 점점 짙어지면서 분홍빛으로, 다시 주황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 일출처럼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있구나.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모든 순간이 나에게 축복이구나,
오늘도 새로운 성장을 기록하는 하루가 내 앞에 펼쳐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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