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사랑했던 첫사랑, 청년기에 뜨거웠던 그 여름 그해,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주부로 살아온 지 9년째, 얼마 전 결혼 9주년을 맞이했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결혼기념일을 아주 새카 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날은 어느 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냥 평범한 하루였다.
어느 하루의 날과 똑같이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고 아침은 헬스장을 가서 운동을 2시간을 하고 그리고는 집에 와서 제대로 청소를 하고 오후즈음에는 가족의 저녁반찬을 했다.
그 어느 날과 다른 거라면 남편이 출장을 가서 저녁 늦게서야 온다는 연락을 받은 것.
아 그럼 남편의 반찬은 굳이 안 해도 되겠구나 하며 살짝 안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결혼한 지 9년이 된 지금 나는 남편과 그때보다는 덜 로맨스적으로 그때보다는 덜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 결혼 한 날을 기념해야 되는지 별로 중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기념일을 딱히 챙기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게도 남편이 챙겨주지 않고 넘어가면 그건 또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날 늦은 저녁, 남편은 웬 케이크와 함께 꽃다발을 가지고 퇴근했다.
평소에 케이크를 좋아하는 나와 내 둘찌 아들을 위해 웬일로 사 온 것인가 했다.
남편이 '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이야'라고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 무슨 일이야! 난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어"
"그럴 줄 알았다~ 네가 알았으면 아침부터 얘기했을 터인데"
나는 웃음이 나왔다. 며칠 전 나에게 소소하게 잘못한 일을 덮으려는 귀여운 수작임을 눈치챘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결혼기념일을 챙긴 남편이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상한 만감이 교차했다.
더욱이 나는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 후에도 남편과의 로맨스를 유지해야지 다짐했던 사람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되나. 결혼하고 나서는 사실 덜 로맨스 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연애와 결혼까지가 그렇게 로맨스 영화 같았지만 말이다.
(저자의 브런치 북 연하남이 들어왔다 는 나와 남편의 실제 이야기다)
그렇지만 진짜 결혼기념일까지 잊고 살고 있다니 내가 많이 건조 해졌구나 싶었다.
"남편 고마워. 늦게 오는데 케이크까지 사다 들고 오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엄마아빠의 오랜만의 행복한 얼굴을 봐서 그런지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그저 케이크에 초를 끈다는 이벤트로도 즐거웠겠지만 말이다.
큰 아들이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을 테니 엄마아빠 뽀뽀를 하라고 한다.
"에이~~~ 뭘 뽀뽀야~~" 하면서 즐거운 듯 볼에다 뽀뽀를 해대는 남편. 아저씨 그래도 우리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지요? 덜 뜨겁고 덜 로맨스 하면 어때요.
행복이 별거 입니까
이렇게 사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