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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Nov 17. 2023

첫 느낌

3. 눈길이 가는 데로







재욱이 서있는 호텔 프런트에서는 로비의 광경이 다 보였다.

저녁을 먹고 나온 유정이 호텔 로비로 나와 털썩하고 앉았다.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기분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재욱은 내심 안심이 되었다 할까.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양볼이 발개져 나른한 얼굴을 한 유정에게 계속 시선이 갔다.


'괜찮은 건가?'


유정은 옆에 앉아있는 어린아이 동반의 가족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빙그레 웃기도 하고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아이가 유정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한다.

유정은 그런 아이가 귀엽다는 듯이 똑같이 손을 흔들며 인사해 준다.

그때 아이가 로비에 있는 동화책을 들어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달려왔다.


"엄마!이거요!"


아이가 유정의 앞에서 넘어져 무릎에 작은상처가 났다.


"우엥~~~~"

유정은 깜짝 놀라 우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앗! 스미마셍!  "


아이의 엄마는 유정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유정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했지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엄마를 보고

이해를 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유정은 의아하다는 듯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아이를 안쓰럽게 보다가 유정이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아이엄마를 보며 잠깐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유정이 작은 파우치에서 밴드를 하나 꺼냈다.

귀여운 곰돌이 모양의 밴드를 종이를 떼어내어 아이의 무릎에 붙여주고는

호~ 하고 불어주었다.


그리고 유정은 아이에게 싱긋 웃어주며  “괜찮아” 하고 작게 말을 해준다.

아이의 엄마가 다시금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유정은 민망한 느낌이 들었는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하하.."


말이 통하지 않으니 유정은 답답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친구를 찾으세요'


문득 유정은 재욱의 메모가 생각이 났다. 불현듯 스친 인연일 텐데 자꾸 생각이 났다.

유정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첫 혼자 여행에서 만난 사람이 한국사람이라 반가운 마음일 거라 여겼다.


'아마도 그렇겠지..'




재욱은 프런트에서 일을 하다가도 유정이 로비로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유정은 방에 잘 있지 않고 곧잘 로비에 와서 앉아있었는데 책을 본다던가..  일본인 손님들

특히 가족끼리 와있는 사람들을 곧잘 구경하곤 했다.

커피를 마시며 놓여있는 과자를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짓기도 하며..

재욱은 그런 유정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일본을 오기 전 약 3년 전쯤 일어난 일 이후로 특히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일본에 온 것은 아버지에 대한 작은 반항심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시점에서 재욱은 그저 피하고 다니는 건지도 모른다.

유정이 어린아이 가족을 보며 흐뭇하게 보고 있는 걸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저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재욱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인기가 많은 타입의 재욱이지만 먼저 다가선다던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여자에게 말이다. 그녀를 향한 마음은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감정을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느껴서 그런 걸까.


“왜요?”


재욱의 눈앞에 갑자기 유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재욱은 깜짝 놀라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으앗, 언제 앞에 있었어요?”


“언제 앞에 있냐니.. 아까부터 나 쳐다보고 있었잖아요?”


재욱은 머쓱한 나머지 고장이 났다.

괜스레 프런트에 있는 모니터를 보는 척 더듬거렸다.


“아.. 아닌데?”


“아닌데? 그건 반말인데?”


“아.. 죄송… 아니 그건 아니고..

근데.. 왜 놀러 와서는 사람구경만 하고 있어요?"


"몰랐어요? 사람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는데?

 그건 그렇고 그쪽... 몇 살이에요? "


“아 저 스물.. 다. 어 근데 왜 반말이지?”


“반말은 그쪽이 먼저 하셨고.. 친구 하자며?”


“씁.. 뭐지? 반말인 듯 아닌 듯 한?

 저 스물다섯이에요. 그쪽은요?"


“안 가르켜 줄래요”


“엥.. 뭐야..?!”


“ 알 필요 있나? 또 볼사람도 아닌데~~ 그리고... 그쪽이 먼저 친구하쟀잖아요”

 유정이 장난치듯 말을 이어갔다.


"아... 아니 그건 그런 말이 아닌데... 친구를 찾아달라는 건 우리 호텔에서 쓰는 인사말이라고요 하.....

이.. 이봐요 듣고 있어요?! 여..여기 여기에 적혀있잖아요!"

일본어로 '무슨일이 있다면 친구(스텝)를 찾아주세요" 라고 적혀있었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유정이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유정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로비밖을 이미 나서려고 있었다.


“하... 뭐지?”


재욱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친구를 찾아달라는 말은 호텔에서 쓰는 인사말 같은 거였는데

그걸 또 그렇게 친구 하자는 말로 알아듣다니.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아님 이 여자가 천진난만한 건가.

하지만 그건 그걸로도 재미가 있고 유정을 조금 알기에도 충분했다.

이상하게도 재욱은 유정을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지는 걸 느꼈다.


"어디 나가시게요?"


"알아서 뭐 하시게요?"


"아니.. 뭐 가볼 만한 곳은 알려줄 수 있어요"


"다음에요."


"다.. 다음?"


"네 다음에요. 다음에 왔을 때 알려주세요"


"아..?!  네..."


'또 올 생각인가..? 다음이라..... 난 여기 없을 텐데..

아! 아까 분명 또 볼 사람이 아니라고했는데... 또 보자는 말인가?!'








설원이 가득한 산 아래 중턱에서 사내가 서있다.

재욱이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하얗게 눈이 다 덮인 그곳에서 얼마나 추운 건지 하얀 입김이 후 하고 연신 나온다.

얼마쯤 지났을까. 카메라 셔터를 찰칵 거리는 그 사이에 낮 익은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들어왔다.


유정이었다.

유정이 눈을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재욱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재욱은 그런 유정을 다시 카메라를 통해 봤다. 카메라 속에 비친 그녀가 마치 신기루처럼 보였다.


'응? 뭐지?'


신기루처럼 보이는 유정이 자신의 발자국을 쳐다보면서 걷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재욱을 발견하고 반갑다는 듯 두 팔을 벌려 손을 흔든다.

재욱은 깜짝 놀라 카메라를 급하게 내렸다.

혹시나 카메라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들키진 않았는지 괜히 가슴이 떨렸다.

그녀가 천천히 재욱에게로 다가왔다.

걸어오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재욱은 잘 들리진 않았다.

바디랭귀지를 하는 유정의 모습을 보고 대충 감을 잡 았다는 듯 오케이라고 손을 들었다.


유정은 ‘그쪽으로 가도 돼요?’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재욱은 카메라앵글을 통해 유정을 보았다.

시선이 그렇게 그녀에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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