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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Nov 24. 2023

첫 느낌

4. 시선이 멈춘 곳



한참이 지나 재욱의 시야에 드디어 유정이 들어왔다.

유정은 깊게 숨을 몰아 쉬고는 이내  말했다.


“와.. 가까운 것처럼 보였는데 은근히 멀었네.. ”


볼이 다 빨그래진 유정을 보니 재욱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첫날, 유정이 호텔로 찾아온 날이 생각났다. 눈보라를 헤치고 겨우겨우 호텔을 찾아 종소리를 

울리며 들어온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반가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던 그때.

재욱은 그때처럼 자신을 향해 한참을 걸어온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반가움

그리고 고마움까지. 왠지 모를 연민까지 느껴졌다.

유정의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괜스레 재욱의 가슴도 뛰었다.

재욱은 반가움 마음을 조금 억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 알고 온 거예요?"


"왜요? 여기 유명한 곳이에요?"

유정은 그의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그다지 유명하진 않은데.. 그냥 현지인들이 아는 곳?"


"아.. 현지인들한테 유명한 곳...이구나.. 난 그냥 걷다 보니까 멀리서 그쪽이 보이길래 

그쪽 보면서 온 거예요"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유정이 보였다.


“ 근데.. 뭐 사진 찍는 거예요? 오늘은 일 안 하나 봐요?”


“아.. 오늘은 오프라서.”

자신이 보여서... 그러니까 유정이 재욱을 보고 그를 향해 걸어왔다는 것.. 생각해 보니 

괜스레 실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점점 커지더니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진짜.. 경치가 이렇게 좋다니... 그래서 유명한 거예요?”


“이런 곳이 흔치는 않죠. 음.. 그래서 난 여길 오는 거고”


“와… "

 유정은 계속 감탄하며 한 곳을 응시했다.


눈앞에는 넓은 호수가 꽁꽁 얼어있고 멋들어진 소나무들이 드리워져

눈은 하염없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설원 위에 둘만 놓여 있었고 주위는 조용했으며

그저 눈이 내리는 소리만 조용히 들릴 뿐이었다.

작고 맑은 눈송이가... 차가운 그것이 두 사람의 뺨을 간지럽혔다.


“아! 그거 생각난다. 오겡끼~~ 데스까~~”


유정은 갑자기 호수를 향해 소리쳤다


“이거 몰라요? 와타시와 겡끼데스~~~~!”


재욱은 웃기다는 듯 유정을 쳐다봤다.


“어 이거 되게 명작인데... 러브레터영화.. 진짜 몰라요?”


“알죠~그 여주인공 ~ 완전 제 이상형이었는데”


유정은 그 말을 듣고 새침하게 받아친다.


“아 그런 스타일 좋아하는구나~ 흐음~~”


“씁… 뭐지? 질투하는 느낌인데?”


“내 가요?! 아니 내가 왜? 하! 진짜 웃긴다”


괜스레 멋쩍어 재욱은 호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 이상한 적막을 먼저 깨트린건 재욱이었다.


"흠.. 근데 그 영화 여주인공 빼고는 결말이 별로라"


"음? 해피엔딩 아니었나?"


"아닐걸요?"


퉁명스럽게 재욱이 대답했지만 .. 별 의미없는 듯한 이런 대화도 이상하리만큼 재미있다고 느끼는 둘이었다.

재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쪽으로 서볼래요? 사진 찍어줄게요”


유정은 갑작스러운 재욱의 제안에 내심 당황하지 않은 척을 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유정은  이내 포즈를 취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요?”


귀여운 표정을 짓고 두 팔을 벌려 만세를 하거나 메롱을 하기도 했다.

어색하게 손으로 하트를 그려보기도 했다.


“(웃음) 아뇨 그냥.. 자연스럽게 호수 보고 있어 볼래요? 내가 알아서 찍을게요”


찰칼 찰칵. 적막 속에서 울리는 카메라 셔터 음. 사박사박 눈을 밟는 소리마저 은은하게 퍼지는 음악소리처럼 들렸을까.

유정은 두 팔을 벌리고 한 마리의 백조처럼 발레 포즈를 취했다.

재욱은 카메라를 통해 유정의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 그 속에 비친 유정은 정말 예뻤다.


"아..."


재욱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발레 포즈가 멋있었기도 했고..

초롱초롱하며 장난기가 있지만 맑게 빛나는 눈

오뚝하게 올라온 코

가녀린 팔다리이지만 발레를 해서인지 발란스가 좋아보였다.

그리고 앙 다문 입술.


재욱은 ‘ 아 내가 무슨 생각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카메라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만지작 거렸다.


“ 뭐해요? 찍었어요? 예쁘게 나왔어요?”


유정은 해맑게 웃으며 재욱에게로 다가왔다.

재욱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왠지 들킬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떤 생각을 한건 아니지만... 말이다.

예쁜 그녀를 보고 넋이 나갔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유정은 갑자기 재욱의 코앞까지 왔다. 적막이 흘렀고 유정과 재욱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재욱의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유정이 새침하게 재욱을 향해 말했다.

그러는 바람에 재욱도 한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 뭐가? 내가 뭘 어떻게 봤다고?"

오히려 재욱이 자신의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당당하게 되받아 쳤다.


그랬더니 유정이 또 한 번 새침하게 대답했다.


"위험하게요"


'위험하게?'

재욱은 그 말을 듣고 한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얼굴이 붉어져서는 유정에게 쏘았다.


"아.. 아니 내가 뭐 뭘! 위험하게 응? 했다고? 나.. 난 사진 찍은 건데 그냥!"


"뭐래.."


꼬르륵……


마침 그때 유정의 배에서 꼬르륵하고 울렸다.

유정은 멋쩍은 표정으로


“앗… 시간이 벌써... 헤헷..."


“ 뭐야...?”


유정은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재욱을 다시 보고말했다.


"혹시 근처에 맛집 같은 거 없어요?"


재욱은 자신의 말을 그냥 물 흐르듯 넘기려는 그녀가 얄미웠지만 천진난만한 그녀를 보니 

흥분했던 마음이 이내 눈 녹듯 사르르 녹았다.


"나름..이동네 맛집이라고 할수있는 곳은 알죠. 우동 좋아해요?"


“그럼요!! 완전!!”


"맛있는 곳 있는데.. 같이 갈래요?”


“오~ 로컬맛집~~~! 좋아요!”


신이 나는 듯 유정은 재욱을  앞세워  

얼른 가자고 재촉했다.


재욱은 유정과 눈이 마주치고 자신의 마음이 순간 들키지 않았을까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이 하필 그녀의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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