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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01. 2020

엄마의 고향을 떠나며

10대에 아버지의 자서전을 썼다. 고1 문학시간에 제출할 수행평가 과제였다. 부모님을 취재하고 그의 자서전을 대신 쓰라는 과제는 무척이나 황당하고도 귀찮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당시의 나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여느 10대들과 같이 부모님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던 수행평가가 아버지를 처음으로 마주 보게 된 계기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께서 다시 아프시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단지 피곤하신 것 같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얼마나 무리를 하셨는지 얼굴부터 시작해서 성한 부분이 없었다. 어머니께 부탁을 해서 링거를 맞으시면 서도 나와 동생 걱정을 하시던 아버지. 나는 그렇게 아프신 아버지께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 한 문단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자서전에는 태어나서 겨우 목숨을 건진 일화부터 내가 태어나기까지 굴곡진 삶이 지금도 생생히 녹아있다. 어머니와의 결혼을 하며 "3년 후 꽃이 피는 봄날에 꽃과 같은 딸아이를 낳아서 예쁘게 기르자"라고 약속했다는 아버지의 말에 잊고 있던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사랑받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언제, 어디에 있건 변하지 않는다.


엄마와의 귀향생활을 기록으로 남기자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간,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글로 담고 싶었다. 짧은 귀향생활에 짧은 글이지만 진심을 담았다. 10대 시절만큼이나 있는 그대로를 쏟아내지는 못했을 지라도. 엄마와 처음 맞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잊지 않으려 한 자, 또 한 자 썼다. 아버지의 자서전이 그러하듯 언젠가 이 글들이 엄마와 내게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엄마의 고향을 떠나며 나의 바람은 단 하나다. 부디 지금처럼 엄마와 함께 할 수 있길. 이 곳에서의 추억들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한바탕 웃어젖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나 역시도 엄마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엄마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엄마의 엄마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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