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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에 Aug 13. 2022

8. 김실장

이사무와 김실장이 서로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된 건 아니었다. 둘은 강남에 있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에서 만났다. 같은 나이의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각자 사귀던 사람이 있었다. 원래 김실장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라 이사무도 한 번씩 인사만 하며 지내곤 했다.

그러다 둘이 친해지게 된 것은 4~5세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는 유년부 교사를 같이 하면서부터였다. 매주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리다보니 끝나고 나면 여러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가끔 친한 사람들이 오지 않아 단둘이 밥을 먹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 모든 것이 어색한 이사무와 달리 김실장은 유아교육을 전공하여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고 있었기에 이사무는 김실장에게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이사무는 김실장이 첫인상과 달리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김실장이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이사무는 그때만 해도 김실장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교회형에게 김실장을 소개해 주었다. 천만다행으로 소개팅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만약 그때 그 형과 김실장이 잘되었다면 지금 둘의 인생은 전혀 다른 삶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작가와 이스타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 후 이사무도 교회에 다니지 않아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여자 친구와 이별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사무와 김실장이 급격히 가까워지게 된 건 이사무가 6급 승진심사에서 한번 누락되면서 심리적으로 힘들어할 때였다. 직장 동기들은 승진심사로 인해 어색해졌고 친한 친구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으로 김실장이 떠올랐다.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응. 늦게 끝나진 않을 거야"

"내가 회사에서 좀 우울한 일이 생겨서 그런데 저녁같이 먹을래?"

"그래. 좋아"

이사무와 김실장은 잠실에 있는 롯데백화점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인근의 석촌호수를 걸었다. 밤이 되자 야외에 있는 어드벤처의 놀이기구가 멋진 조명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놀이기구 잘 타?" 이사무가 김실장에게 물었다.

"응. 좋아하지"

"우리 저거 타볼까?"

"지금?"

순간 이사무는 김실장에게 평소 같으면 할 수 없었을 제안을 하였다. 아마도 그날은 심리적으로 우울하여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타보자. 재밌겠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김실장이 대답했다.

그렇게 둘은 평일 밤에 사람이 많지 않은 어드벤처에 들어가서 놀이기구를 타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서로 말하지 못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었다. 작은 배를 타고 아래로 떨어지는 후룸라이드를 탈 때였다. 김실장이 앞에 타고 이사무가 뒤에 앉았는데 직원이 앞사람의 어깨를 잡으라고 해서 이사무가 김실장의 팔을 잡았다. 그런데 순간 김실장이 움찔하며 놀라는 게 느껴졌다. 이사무는 김실장이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어색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훗날 들어보니 김실장이 마른 편이나 유독 팔 부위에 살이 좀 있어서 그게 콤플렉스였는데 이사무가 갑자기 그곳을 잡아서 매우 놀라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어쨌든 김실장과 놀이기구를 타며 즐겁게 웃던 이사무는 어느새 기분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김실장은 같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참 편하게 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고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한 것은 딱 신혼여행 때까지였다. 막상 결혼을 해서 한집에 살아보니 이사무와 김실장은 서로 다른 점이 너무도 많았다. 치킨을 먹으면 이사무는 다리를 먹고 김실장은 가슴살을 먹었다. 김실장은 매운 음식을 즐겼지만 이사무는 조금만 매워도 기침을 했다. 그중 가장 다른 것은 자라온 가정환경에 따른 경제적 가치관의 차이였다.

김실장은 이사무와 달리 어려서부터 경제적 어려움 없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하다가 나오셔서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를 운영하셨는데 매출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실장은 넓은 집에 살면서 대학입시를 위한 고액과외도 받을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바로 자동차를 사서 직접 운전하며 학교에 다녔고 옷과 신발 등은 압구정동에 있는 명품관에서 사곤 했다.

이사무가 어릴 때부터 겪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어떻게든 돈을 쓰지 않고 아껴서 재테크를 하려고 하는 반면 김실장은 나이가 들면 어차피 몸이 안 좋아져서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혼초 맞벌이를 할 때는 그래도 각자 알아서 쓰는 부분이 있어서 크게 마찰이 없었으나 김실장이 첫째를 임신하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공무원 임대아파트에서 살게 되면서 당장 집에 크게 돈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다만 공무원 월급인 이사무의 200여만 원으로 매달 살려다 보니 김실장에게 최소한의 현금만 주고 이사무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도록 부탁했다. 그런데 김실장이 결혼 전부터 해왔던 패턴으로 돈을 쓰다 보니 신용카드 값만으로도 이사무의 월급을 초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사무는 김실장이 카드를 쓸 때마다 이사무에게 승인 문자가 오도록 하였고 그때마다 그 물건을 꼭 사야만 했는지 그렇게 비싼 커피를 꼭 마셔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 간섭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고깃집에서 김실장이 좋아하는 사이다를 다 마셔서 더 시키려고 하는데 이사무가 사이다가 조금 남아있는 컵에 물을 섞어 마시라고 해서 큰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실장은 그렇게까지 돈을 아끼는 이사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사무도 할 말이 많았다. 김실장에게만 그런 절약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무는 결혼 후 본인에게 쓰는 돈을 최소화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친구들은 만나지 않았고 원래 술 담배는 하지 않았으며 개인 취미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출장으로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는 늘 가장 저렴한 식당을 찾아 김밥이나 라면으로 때웠다. 그리고 구내식당 밥값보다 비싼 커피전문점의 커피는 절대 마시지 않았다. 옷도 결혼 전에 사놓은 정장과 셔츠로만 입고 다른 캐주얼 옷은 일절 사지 않았다. 웬만한 거리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 다니곤 했다.

직장동료들이나 친구들이 항상 이사무에게 물었던 질문이 있다.

"이사무는 술도 안 마시고 취미활동도 안 하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

"그냥 뭐 교회 가서 기도하죠. 하하"

농담으로 답을 대신하였지만 사실 이사무는 돈을 쓰지 않아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가난했던 기억이 이사무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그럴 것이다.

가족을 위해 스스로도 그렇게 희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김실장에게도 대출을 받지 않고 월급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절약을 요구한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가치관도 많이 달랐다. 이사무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다를 것이기에 무리하게 사교육을 시키기보다는 부부의 노후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학원수가 많아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김실장은 생각이 달랐다. 어차피 특별히 타고난 능력이 없다면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통해 준비를 해야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았다면 부모로서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아이가 원하는 학원만 보내는 쪽으로 합의를 봤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다툼이 있었다.

그렇게 10년여를 함께 살아오면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바꿔서 맞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어느덧 40대 초가 되면서 김실장의 건강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40대가 되면서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남자는 50대가 되면서 빠르게 늙게 된다는 말은 들었었다. 그런데 김실장은 식도염과 위염, 어깨와 무릎 염증, 어지럼증 등으로 거의 일주일 내내 병원에 다녀야 했다.

어느 날 이사무는 즐겨 듣던 한 경제방송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이사무와 비슷한 연령대 부부의 사연이었는데 한 투자자의 아내가 부동산 투자 강의를 하는 그 방송의 전문가에게 보낸 하소연이었다. 남편이 그분의 강의를 듣고 주말마다 부동산 투자를 위한 지방 임장을 다녀서 아내 혼자 힘들게 육아와 살림을 도맡았다. 그리고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에게 이온음료 하나를 사 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돈을 아껴야 한다며 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전문가는 너무도 억울해하면서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소연을 했다. 본인도 젊을 때 그렇게 돈을 아껴서 투자하느라 아내와 많이 다투고 힘들게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월급이나 투자소득의 10%는 따로 떼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쓰고 돈이 부족하면 투자자 본인이 더 절약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사무는 그 사연을 들으면서 마치 이사무와 김실장의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사무도 조금이나마 돈에 대한 집착과 트라우마를 내려놓고 김실장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김실장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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