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무는 사실 집을 사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신혼이었던 시점이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정부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고 권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동료 중 한 명이 부동산 투자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한번은 그 직원이 고양시에 25평 아파트를 공공분양으로 받아 1억 이상이 오른 시세를 직접 보여주었다. 실제 주변의 성공 사례를 보니 이사무도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근무를 하고 있는 이사무에게 그 직원이 소식 하나를 알려주었다. 경기도 신도시의 공공분양 아파트에 남은 물량이 생겨 다음날 아침 무작위로 현장 추첨해서 입주자를 선정할 예정이니 가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첫째 아이만 태어난 상황으로 가점이 낮아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계속 떨어지던 이사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아침 일찍 동료 한 명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너무 일찍 가는 게 아닐까 하고 오전 7시쯤 현장에 가보니 선착순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사무와 동료도 맨뒤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9시쯤 되자 LH 직원들이 나와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 2~3개 단지의 잔여 350세대에 대해 무작위 추첨을 하고 11시쯤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긴장되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공고문이 붙었다.
이사무는 250번대 번호를 받았고 같이 간 동료는 340번대 번호를 받았다. 일단 둘 다 원하면 한세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당일 계약금을 완납하는 조건이었다. 이사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인생 최초로 2억 원 정도 되는 큰 금액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잘못하면 김실장과 아이까지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목돈을 모아놓은 것이 없었기에 대부분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사무는 일단 점심을 먹으면서 건설업에 종사하셨던 아버지에게 지역 입지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거기는 위치가 좋지. 교통도 좋고 서울이랑도 가까워서 앞으로 많이 발전할 거 같은데"
"그럼 계약하는 게 좋을까요?"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어"
"네. 감사합니다"
일단 입지의 우수성은 검증을 했고 다음은 대출까지 받아서 계약을 해도 될지에 대해 김실장과 상의했다.
"분양받으려면 1억 원 넘게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내가 우리 친척 어른들이 부동산으로 돈 버는걸 많이 봐서 아는데 원래 부동산은 사서 안 팔고 계속 가지고 있으면 오르게 되어 있어"
"근데 대출이자가 부담될까 봐 걱정이 되네"
"그렇긴 한데 대출을 안 받으면 우리가 집을 살 수 있을까?"
"그래. 알겠어. 계약 잘하고 갈게"
이사무는 전화를 끊고 바로 주거래 은행으로 가서 계약금 전체에 대한 신용대출 신청을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당일 바로 대출 실행이 가능하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분양현장으로 가서 순번대로 진행하는 동호수 결정을 기다렸다. 2시간이 넘게 기다려서 드디어 이사무 차례가 되었다. 앞쪽에 있는 아파트 그림판에 남아 있는 세대 중 원하는 동호수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이면 끝이었다. 이사무는 뒤쪽에서 기다릴 때 봐 두었던 곳에 스티커를 붙였다.
전체 신도시에서는 외곽 쪽이었지만 주변 교통과 자연환경이 좋고 무엇보다 11층으로 로열층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동호수 선택이 끝나고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같이 간 동료도 다른 단지에 스티커를 붙이고 나왔으나 직접 건설현장에 가서 동간 간격을 보고는 너무 가까운 거 같다며 계약은 하지 않았다. 이사무도 중간중간 마음이 흔들렸으나 다시 되돌리긴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이후 약 2년여의 공사기간이 지나는 동안 이사무는 중도금을 무이자 집단대출로 받았고 공사가 끝나고 나서는 입주를 위한 잔금을 주택담보대출로 받았다. 그 시기까지도 부동산 상승기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2%대 고정금리로 20년 상환기간을 설정했다. 그리고 당장 원금까지 상환할 자신이 없어서 일단 이자만 내는 조건으로 대출을 실행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입주시점이 되었다. 이사무는 김실장과 함께 신축 아파트의 하자점검을 하고 단지 내 산책로를 걸었다. 조경도 잘 되어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단지 내에 3개나 조성되어 있었다. 1980년대에 지은 임대아파트에 살다가 내 집인 신축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입주 후에 장모님과 처제가 집을 보러 왔는데 김실장과 함께 축하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사무도 너무 행복했지만 밤이 되면 대출의 무게감에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혹시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이사무를 괴롭혔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부린이의 첫 경험이 끝나고 수년 동안 저금리와 부동산 폭등의 시대가 왔다. 그동안 이사무도 책과 경제방송을 통해 투자 공부를 하면서 무조건 모든 대출을 빨리 상환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충분한 자금이 있다면 바로 대출을 상환하고 다른 투자를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고 이사무처럼 3% 이하 고정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이라면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대출금리 이상의 수익을 낼 수 투자를 꾸준히 병행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무는 대출이자 이상의 수익을 얻기 위한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이사무가 살고 있는 25평의 아파트는 방 3개, 화장실 2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작은방 하나를 이사무가 혼자 책을 읽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는데 이작가와 이스타가 크면서 각자 방을 하나씩 내어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25평 아파트에 이사무만의 공간은 없다. 아이들의 방에서 책을 읽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집이 너무 좁으니 이사를 가자는 이스타의 압박에 시달리곤 한다. 이사무도 가끔 작은방에 들어가 보면 커가는 아이들에 비해 방이 좁다는 생각이 들어 중고등학생이 되면 이사를 가야 하나 하는 새로운 고민을 하는 중이다. 설사 이사를 간다 해도 방 3개 집일 테니 그때도 이사무만의 공간은 집안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