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외식을 하지 않는다. 집밥만 먹는다. 올해 들어서도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다. 배달 음식도 가공식품도 없이 손수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린다. 일에 치여 살 때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좋아하던 요리도 마냥 귀찮았다. 그런데 자연식물식을 시작하자 집밥을 해먹는 일도 '밥 먹듯이' 쉬운 일이 되었다.
처음엔 내가 먹는 음식은 내가 만들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배달음식을 줄이기로 마음먹고 집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자연식물식을 하게 되었다. 음식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자, 내가 먹을 음식을 내 손으로 준비하는 일이 더는 수고롭지 않아졌다. 이젠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집밥만 먹는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 집밥이, 밥을 해 먹는 행위가 어려워진 걸까? 칼질을 하지 않아도 다양한 식재료와 조미료가 없어도 충분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만약 내가 밖에서 사 먹는 요리를 흉내 내고자 했다면 금방 지쳤을지 모른다. 매일 먹는 음식이 매번 근사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음식을 원하지 않는다. 집밥은 자고로 쉬워야 한다. 하루의 에너지를 뺏길 만큼 복잡한 요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요리는 일상의 근간을 이루는 창조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한껏 멋을 내어 장식한 요리에 대해서는 감흥이 식었다. 그 수고로움과 정성은 인정하지만, 식재료를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본연의 맛과 영양을 살린 자연스러운 요리가 최고의 요리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슐랭, 오마카세, 코스 요리 같은 고급 요리란 내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게 맞는 고급 요리는 집 밖이 아닌 안에 있다. 이미 내 손끝에서 매일 탄생하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는 맞춤 요리가 최고급 요리 아니겠는가? 비싼 돈을 지불한 요리가 부족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일도, 그 말을 꺼내어 요리를 대접한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일도 없다. 그 음식을 먹지 못해 속상할 일도 없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손수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원하는 레시피를 추가할 수도 있다. 모든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물론 예외는 있다. 결혼식 같은 행사에 참석했을 때 식사를 해야 한다면 과일이나 샐러드를 먹는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먹지 않는다. 한 끼 안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으니. 외부에서 일정이 있다면 도시락을 준비한다. 가장 쉬운 건 과일 도시락. 깨끗하게 씻어서 담기만 하면 된다. 고구마, 감자 같은 음식도 밖에서 먹기 편하다. 도시락이 없다면 역시 한두 끼 정도는 가볍게 건너뛴다. 공복이 몸에도 휴식을 가져다줄 터. 급하게 끼니를 때우는 것보다 집에 돌아가서 여유 있게 식사를 하는 편이 더 좋다.
불필요한 회식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으며, 식사 약속은 잡지 않는다. 지인들과는 카페에서 만난다. 사전에 정중하게 동의를 구한다. 꼭 식사를 통해서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만남 자체에 목적이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야만 유지되는 관계, 맛집 탐방을 위한 만남은 맺지 않는다. 그 시간에 얼굴을 보기만 해도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기쁨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식사 자리에서 얼마나 대화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가? 식사에도 대화에도 집중하기 어렵다. 오히려 조용한 곳에서 차 한 잔을 하며 나누는 대화가 서로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 무슨 음식을 먹을지가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안부가 더 궁금하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보다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게 바쁜 일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서로에게 의지되는 일이 아닐까?
3년 가까이 외식 없는 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여전히 먹는 것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음식의 맛에만 진심이었다면 이제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 그리고 나에게 맞는 음식 찾기에 진심이다. 무엇보다 오늘도 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그래서 근사한 곳에 앉아 값비싼 요리를 먹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 매일매일 나를 대접하고 있는데 무엇이 부러울까? 내 손으로 내 입과 몸과 정신을 만족시킬 음식을 찾았다. 이 사소한 행복이 하루하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원하는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나는 그저 내가 먹을 음식을 손수 지어 먹는 일상을 살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내 밥을 지어 먹을 정도의 힘은 남겨 두고 싶다. 그런 힘마저 빼앗을 일이라면 하지 않겠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일하느냐고 매 순간 나를 멈춰 서게 하는 일, 먹고사는 일에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갈 생각이다. 음식이란 나를 이루는 것이자, 밥 한 끼 차려 먹을 정도의 여유란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복의 단위이니까.
이건 배부른 소리다. 유유자적한 이야기다. 그런데 적어도 '먹고' 사는 데 큰돈과 수고가 들지 않는다면, 그래서 '먹고' 사는 일이 그것으로 이미 해결되었다면, 부러 욕심내어 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그저 이 소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매 순간 감사하다. 오늘 먹는 집밥이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그러니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를 자세히 서술하지 않은 이유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생활의 기본인 음식에 대한 자세가 변화했고 그 변화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자연식물식 집밥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이 글을 덧붙입니다.
내가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49. 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