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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12. 2023

한 달 동안 소금만 먹었습니다

푸드 미니멀라이프


한 달 동안 오로지 소금으로 간을 한 음식만 먹었다. 된장, 고추장이 떨어진 건 이미 오래전 일.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간장도 10월이 되자 바닥을 보였다. 이따금 간장, 된장, 고추장이 떨어지면 소금에 무친 무생채나 나물로만 밥을 먹었다. 이번에 제대로 '소금 하나로 살기'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소금 하나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특별히 다른 양념이나 음식이 당기지도 않았다.


한 달 내내 거의 같은 음식만 먹었다. 주로 먹은 건 밥과 단감김치. 제철 맞은 단감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린 단감김치는 바로 먹기 좋은 간단한 무침이다. 과일을 밥반찬으로 먹는 게 생소했는데 한 입 먹자마자 반해 버렸다. 샐러드처럼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밥 한술과 곁들이면 더욱 맛있다. 한 달 가까이 단감김치만 먹다가 10월 말이 되어서야 무생채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역시 조미료는 소금, 혹은 고춧가루를 더해 맛을 냈다.


양념의 기본은 소금이다. 소금이 빚어주는 맛은 실로 놀랍다. 소금 하나만 넣고 가볍게 무쳤을 뿐인데 간단하고 맛있는 반찬이 완성된다. 매번 먹을 때마다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식이나 끼니로 고구마를 소금에 찍어 먹기도 했다. 그동안 감자만 소금에 찍어 먹어 봤을 뿐, 고구마는 도통 소금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구마도 소금에 찍어 먹으니 별미다. 칼륨이 많이 들어간 고구마에 소금의 나트륨이 전해질 균형까지 맞춰 준다.


이렇게 먹고 사는 건 순수한 입맛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이 한 달 가까이 같은 음식만 먹으면 질릴 만도 하지 않은가?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는 것이 매번 놀라울 뿐이다.


음식은 단순할수록 맛있다는 걸 반복적으로 깨닫는다. 반찬이 두세 개 있을 때보다 하나일 때가 더 맛있다. 가짓수가 적을수록 음식 고유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단순할수록 만족감이 배가 된다. 채소 반찬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채소가 없으면 밥 한 공기에 간장이나 김만 있어도 충분하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국 한 그릇만 있어도 충분하다. 갖가지 반찬은 필요 없다.


'아무리 그래도 간장, 된장, 고추장은 있어야지.' 한 달간 소금만 먹고 보니 가벼워진 입맛만큼이나 이 생각도 무게가 가벼워졌다. 먹고 싶은 걸 부러 참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간장이 떨어졌다고 부지런을 떨지는 않을 것 같다. 다양한 맛을 내는 양념 없이도 소금 하나면 충분히 맛있게 먹고 살 수 있으리라. 내가 거기에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올가을 찾아온 귀한 선물이다.


이제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조만간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든 오랜만에 된장을 사서 배추를 송송 썰어 넣은 배춧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된장국 하나면 밥 한 그릇은 거뜬히 비운다. 나는 계속 이렇게 단순하게 먹고 살 것이다. 애써 채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매 순간 느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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