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미니멀리즘
누군가를 미워하면 누가 가장 손해를 볼까? 미움받는 사람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마음이다. 미워하는 순간 고통을 받는다. 미워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미워했다는 죄책감까지 떠안는다. 때로는 미움이 커져서 화가 쌓이고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모든 감정 소모는 미워하는 그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돌아오는 몫이다.
10대에 썼던 일기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날의 일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까지도. 그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나는 글로 화를 꾹꾹 담아 놓았다. 그 응어리가 어른이 되어 그 일기를 펼쳐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잊힌 기억이 되살아났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찌른다는 것을 배웠다.
누군가를 향해 마음이 날을 세울 때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어떤 모진 말과 무례한 행동도 결코 나를 해칠 수 없다고. 미움이야말로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마음이라고. 내 인생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감정이라고. 너를 위해서 비워야 하는 마음이라고. 나를 토닥인다. 완전히 도려내진 못해도 비울수록 비워지는 게 미움이라는 마음인 듯하다.
살다 보면 죽도록 미워했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 용서가 되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이름 하나 가져와서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 되어 버린다. 혹여 죽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미워하지 않기로 하자. 그것이 나를 짓누르는 족쇄가 되어 내 삶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나를 위해서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친구랑 문자를 주고받다가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는 얘기를 나눴다.
“왜? 환경 보호?”
“그냥, 심플하고 좋잖아.”
대답처럼 단순한 이유였다. 하지만 솔직한 답변은 아니었다. 실은 환경 보호를 생각한 일이 맞다. 씻는 것도 간편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도 줄이고 물을 오염시키는 것도 줄일 수 있으니까. 나와 환경을 위해서, 결국은 우리를 위해서 하는 작은 노력이다. 그런데 매번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 채식 등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치우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이해받지 못할까 봐. 결국은 미움받을까 봐. 내 얘기마저도 감춘다. 내 목소리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나는 자꾸만 경계에 서 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노라' 생각했건만 나의 본능은 자꾸만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인간이란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서 어쩔 수 없는 걸까.
책 《0원으로 사는 삶》에서 저자가 프란이라는 사람에게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사랑받는 것(To be loved).”
간결한 그의 답이 내 마음에서도 쉽게 떠나지 않았다. 내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 살면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사랑받고자 함이라고, 미움받고 싶지 않은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는 진동이 자꾸만 가슴을 건드렸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매 순간 노력하면서 나는 왜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 보여 주지 못할까. 왜 솔직하지 못할까.
솔직해지자. 미움받을 용기를 한 번 가져 보자. 내가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이라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가 사랑을 나눠야 하는 존재라면. 그 사랑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사랑하는 고귀함일 테니까. 그 사랑 앞에서 조금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미워하는 마음이 해가 되듯 때로는 미움받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도 해가 된다. 미움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미움받기 싫어서 눈치를 보고 살아간다. 밉보이는 행동으로 보일까 봐, 사람들의 둘레에서 벗어날까 봐, 작은 행동에도 제약이 걸린다. 때로는 미워하지 않을 용기만큼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가리키는 선택에 주저하지 않을 용기가.
없이 살기 82. 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