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편의점을 자신의 몸처럼 느끼고 즉각 반응합니다. 편의점의 상태, 소리, 냄새 등. 그리고 편의점에서만이 자신이 세계의 일부로, 쓸모있는 존재로 기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쭉 편의점에서만 일한 것은 모든 일에 매뉴얼이 있는 편의점에서밖에 일할 수 없어서인데, 왜 제대로 된 직장을 찾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몸이 약해서, 가정 사정 때문에 등 그럴 듯한 이유를 고민하며 사는 모습이 남 같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안 하고 연애도 해본 적이 없으며 성 경험도 없는 게이코에게 정상가족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은 충고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간섭하고 훈계합니다.
게이코는 학교에서 모두가 경악할 만한 행동을 충동적으로 했고, 사회에서도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자연스러운지 알지 못해서 조언을 들은 매뉴얼대로 행동합니다.
소설 속 묘사에 비하면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렸을 때 죽은 새를 보고 구워먹으려고 하고, 싸움을 말리라는 선생님 말씀에 싸우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삽으로 내리치고.. 나머지 한 예화는 소설을 읽는 재미를 위해 남겨둡니다.
ADHD나 아스퍼거가 있는 걸로 보는 게 꽤 설득력 있는 추측인 것 같습니다. (이 둘의 구분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소설 속에는 게이코가 사회적인 약속이나 말의 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본심과 달리 공감능력이 발휘되지 않는 면이 묘사되어 있어서 두 장애 모두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농땡이를 피우며 심드렁하게 행동하는 신입 시라하는 모두에게 미움받습니다. 하지만 후루쿠라 게이코는 시라하의 행동을 보면서도 반감을 갖지 않습니다. 게이코에게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라하가 잘리는 것을 보며 자신도 이물질임을 들킬까 불안해합니다.
태생부터 사람들과 달라 '가짜'임을 들키지 않고 세상에 속하려 애쓰지만 겉도는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두 인간의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의 현대판을 읽은 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이 소설은 무겁지 않습니다. 일부러 웃기는 부분이 없는데 웃겨요. 인물들의 대사가 대부분 어처구니 없으면서 직설적이고 뼈가 있습니다.
이 책이 일본문화의 최고 권위라는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것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번역은 좀 불편했습니다. 특히 '발이 넓다'를 일본어 표현 그대로 '얼굴이 넓다'로 직역한 것은... (이렇게 아는 척이라도 해야 발뻗고 자는 새럼)
하지만 재미있고 분량도 많지 않습니다.
추천 드립니다.
스무살 때와 30대 때를 합쳐 지금까지 편의점에서 3년을 일했습니다. 저에게도 편의점은 가장 편안하고 적성에 맞는 일터입니다. 이유도 게이코와 같습니다. 모든 일에 매뉴얼이 있고, 매뉴얼을 따르기만 하면 쓸모 있는 인간으로 잘 기능하는 기분이 듭니다. 편의점 일은 자잘한 많은 일로 자잘한 많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신적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습니다. 일은 매일같고, 그래서 안전감을 줍니다.
물론 변수도 있습니다. 한 달 전에는 한 단골 여자분이 찾아와서 자신의 딸이 중학생인데 소주를 팔았다고 저를 심하게 혼냈습니다. 제가 팔았기 때문에 그저 90도로 계속 허리를 접으며 사과했어요. 나중에 CCTV를 보니 엄마 옷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리고 사간 손님이었습니다.(뭔가 어색해서 외국인인가 보다 생각했던 손님입니다. 사장님은 그렇게 맘먹고 변장을 하고 오면 당신께서도 팔았겠다면서 제 편을 들어주셨고, 나중에 CCTV를 본 그 어머님도 사과를 하고 가셨다고 합니다.)
중학생인데 나이들어 보여서 계속 담배를 사러 오기도 하고, 제가 택배를 잘못 분류해서 발송이 일주일 넘게 미뤄지기도 하고. 손님이 규격 사이즈를 넘는 택배를 부치는데 거르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버리기도 합니다. 일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쭉 정신차리고 있으려고 해도 이런 변수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98%의 일들은 문제없이 지나가기 때문에 그 2%의 문제들을 잘 넘기면 됩니다.
편의점에는 다양한 사람이 옵니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물건을 마음대로 뜯고 헤쳐놓는 사람도 있고, 올 때마다 결제수단을 복잡하게 쪼개고 물건을 환불하는 걸로 보아 강박증으로 추측되는 사람도 있고, 친절하게 인사한 것만으로 외로운 마음을 저한테 투영하며 접근하는 아저씨도 있고, 멀쩡해 보여도 사정을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오갑니다. 사장님은 '저 사람 좀 이상하다'는 표현을 잘 쓰지만, 저는 편의점에 있으면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험을 더 자주 합니다. 굳이 딱지를 붙이자면 모두 비정상인데 정상인 척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 때가 많아요.
앞으로 15년 후에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그럼 연 나이로 55세. 그래도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저는 계속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지만 글을 쓰는 게 삶의 이유인 가난한 예술가'의 이미지로 주변의 간섭을 차단하며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핑계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앞으로도 계속 이유가 필요한 세상일까요?
현재를 살아가는 건 모두 같은데 그 방식의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 무라타 사야카처럼 편의점에서 일하며 글을 쓰고(작가는 실제로 편의점에서 18년간 일했다고 합니다) 아쿠타가와상까진 아니라도 나다운 결과물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편의점에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졌네요. 빨리 글을 올리고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책에서
"후루쿠라 씨도 좀 더 자각하는 편이 좋아요. 분명히 말하면 당신도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고, 이제 자궁도 노화되었을 테고, 성욕 처리에 쓸 만한 외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남자 못지않게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기는커녕 정식 사원도 아닌 알바생. 분명히 말해서 무리가 보기에는 짐일 뿐이에요. 인간쓰레기죠."
"그렇군요. 하지만 나는 편의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일할 수 없어요. 일단 해보려고 한 적은 있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가면밖에 쓸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불평을 하면 곤란해요."
*
육체노동자는 몸이 망가지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성실해도, 분발하여 열심히 노력해도, 몸이 나이를 먹으면 나도 이 편의점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될지도 모른다.
*
"사귄 남자라든가.... 그러고 보니 게이코한테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그래, 없어."
반사적으로 솔직하게 대답하자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서로 눈짓을 하고 있다. 아, 맞다. 이럴 때는 "좋은 느낌이 든 적은 있지만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하고 매애하게 대답해서, 남자를 제대로 사귄 경험은 없지만 불륜 같은 무슨 사정이 있는 연애 경험은 있고 육체관계를 가진 적도 있는 듯한 분위기로 대답하는 편이 좋다고, 전에 여동생이 가르쳐주었다. "사적인 질문은 애매하게 대답하면 상대가 멋대로 해석해주니까" 하는 조언을 들었는데, 실수했구나 싶었다.
*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게에서 쫓겨난 시라하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은 내 차례일까?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
"나를 숨겨줘요."
"네?"
"나를 세상으로부터 숨겨달라고요. 내 존재를 이용하여, 입으로는 얼마든지 퍼뜨리고 선전해도 괜찮습니다. 나 자신은 계속 여기에 숨어있고 싶습니다. 생판 남한테 간섭받는 건 이제 진저리가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