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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Jul 25. 2023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는 법

자폐와 ADHD를 가진 과학자의 인생 TIP(3)

카밀라 팡의《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챕터별로 정리하며 후기를 적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1편을 봐 주세요.

https://brunch.co.kr/@harukauranusian/200


CHAPTER3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는 법


열역학, 질서와 무질서



자폐와 ADHD를 가진 저자 카밀라 팡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간에 질서를 세우는 데 집착합니다. 접시에 음식을 담는 방식이나 방 커튼의 위치, 책상 위 물건들의 정확한 배치 등. 하지만 사방에 흩어져 있는 책과 논문, 바닥에 쌓인 옷 무더기는 그저 물건을 빨리 찾을 수 있는 편리하고 자연스러운 배치로 여기고 생활합니다. 이런 모순 때문에 저자는 불안을 느낍니다. 질서를 향한 자신의 욕구가 질서에 대한 엄마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저자는 물리화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질서를 대하는 태도를 설명합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창조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과정은 열역학적으로 선호(부가적인 에너지가 사용되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 얼음이 녹는 과정을 예로 들 수 있다)되지 않는다."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은 삶의 무질서를 증가시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는 생성되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오직 위치와 형태만 바꿀 수 있다고 명시'하고, '열역학 제2법칙은 계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항상 무질서하고 생산성이 낮은 상태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주는 엔트로피, 즉 무질서가 낮은 상태에서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로 흘러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질서가 흐트러지는 건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저 분자물리학의 운명'이고, 질서는 이런 '우주적 충동에 단정하고 정돈된 상태를 향한 인간의 욕구가 맞서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질서를 세우는 건 외부 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연 상태를 거스르는 일이고, 그러니 힘든 게 당연하다는 것이죠. '방 정리가 힘든 것은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정된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결정해야 합니다. 어떤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열역학은 '완벽주의의 적'입니다. '질서 감각이 더 완벽할수록 당신이 올라야 할 언덕은 더 높고 가팔라지며 열역학적으로 선호도가 더 낮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기까지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우리는 자신과도 타협해야 하고, 타인의 질서 감각과도 타협해야 합니다.


우정이나 관계에서는 자신의 질서 감각을 상대방의 질서 감각과 잘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 타협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종종 그보다 복잡해지기도 한다. 개인의 질서 감각은 단순하지도 모호하지도 않고, 쉽게 흔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험, 선호도, 뿌리 깊은 습관이라는 여러 층에서 진화한 섬세한 걸작으로, 깨졌을 때만 목소리를 내면서 무언의 기대감을 드러낸다. 이를 붓질 한번으로 덮으려고 하면 당신은 곧바로 문제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83쪽)


최적의 상태로 존재하고 또 살아가는 방식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개인적이다. 주변 사람들과 타협하고, 그들의 욕구가 내 욕구처럼 개인적이며 깊이 새겨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한편, 나 자신의 주체성도 지켜야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디에 에너지를 쏟을지를 타인이 결정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100-101쪽)

열역학에서 우리 주변의 질서와 무질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또다른 개념은 '평형'입니다. 평형은 우리가 어떻게 걷고, 자발적으로 숨 쉬고, 책을 잡을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뜨거운 물체를 차가운 물체 옆에 두면 두 물체가 같은 온도가 되면서 평형을 이룹니다. 평형은 '화학반응의 정반응과 역반응이 같은 속도로 일어나서 계의 전체 상태가 더 변화하지 않는 균형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저자는 주변의 여러 물체가 영향을 주고받는 열평형의 상태가 자연이 추구하는 안정된 상태이듯 "삶은 당신의 선택과 당신의 통제를 벗어난 환경 및 결정에서 나오는 입력값으로 정교하게 균형을 이룬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관련된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일시에 전체적으로 평형을 이루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삶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질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열역학적인 면에서 당신이 내리는 결정 중에 온전히 독립적이거나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에너지를 사용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시소 위에 올려진 다른 모든 것들을 다루는 당신의 능력에 영향을 줄 것이다.(104쪽)


그런 것들을 모두 해결한 뒤에는 어떤 질서를 어떻게 창조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첫 단계는 자신과 타협하는 것이다. (중략) 모든 것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지만, 가장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시간이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아 할 수 없는 일에 미련을 두지 않도록 자신을 설득하는 편이 낫다. 
자신과 타협하고 나면 이제 다른 사람들과 타협할 차례다. (중략) 모두의 의견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모두를 이해시키고 고려할 수는 있다. 간단하게 들리지만, 여기에 에너지가 얼마나 필요할지를 평가하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일은, 그리고 이것이 열역학의 기본 원칙에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즉시 해내야 한다거나 모두를 만족시키고 모든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해로운 억측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105쪽)



제가 이해한 바는 이렇습니다. 우주는 무질서를 추구하고, 에너지는 많은 요소에 영향을 받아 흩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영향을 모두 통제하려는 생각은 비효율적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합니다. 대신 완벽함을 추구하는 데 쓸 에너지를 질서를 세우는 일 중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가려내는 데 집중할 수 있다면 효율적일 것입니다. 


사실 이건 ADHD가 있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면에서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ADHD를 가진 사람 중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또 자신을 믿지 못해서 완벽주의적 강박이 몸에 밴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전두엽에서 도파민 기능의 이상으로 일의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고려하기보다는 순간순간의 흥미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하는 방식이 ADHD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운용하는가가 다를 뿐이라는 점을 좀더 '현실적으로' 인지하는 데에 이렇게 자연과학을 이용한 설명은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운용하는 것'의 중요도를 뚜렷하게 인식한 뒤에야 내가 가진 오늘의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습관을 몸에 익힐 수 있으니까요. 


열이 평형상태로 균형을 이루듯,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반드시 비용을 치러 균형을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오늘 약속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선택한다면, 더위를 피하고 책을 더 읽고 이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경험이나 인간관계를 통해 새로 찾아올 지 모르는 계기를 포기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건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공간에 있다면 나의 질서 감각만을 100프로 추구하면서 타인과 문제 없이 생활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집안의 질서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에 있어 동거인과 안정된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저의 질서 감각과 상대방의 질서 감각이 너무 다른 데서 오는 일종의 충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몰랐지만 저도 모르게 저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강요한 면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질서 감각만큼 타인의 질서 감각도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해했다면, 관계에서 감정적인 소모나 상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타협과 항상성의 유지는 자연계의 열평형만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시소가 어떤 원리로 균형을 맞춘 것인지에 관심을 갖는다면 안정적인 상태에 이르기가 더 쉬울 것이라는 게 이 책이 말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열역학적으로 선호되는 방식으로 산다는 것은 올바른 타협에 관한 문제다. 자신만의 질서 감각을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뒤에 거기서 기꺼이 벗어나야 한다. 타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공감해야 하며, 당신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은 채 타협해야 한다. 또한 무질서를 수용해야 하며, 이는 무질서에 항복하는 것이 아니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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